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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환 Jan 01. 2019

8# 민주주의를 성장시키는 동력 '갈등'

청년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모두의 정치'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해당 집단에서는 늘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한다. 이에 구성원들은 대화로서 해결해보려 하지만 대화로 타협이 되지 않는 근본 원인은 힘의 불균형에 있다. 교실에서 두 학생이 갈등으로 인해 싸움이 붙었다고 가정해보면 당연히 힘이 센 학생에 의해 싸움은 일방적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당사자 간 힘의 서열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을 사적 갈등 해결이라 한다. 그런데 힘이 약한 학생이 너무나도 억울한 마음에 이 상황을 담임선생님에게 알린다. 선생님은 두 학생 사이에서 학칙에 따라 공정하게 상황을 처리한다. 여기서 선생님은 정부나 정치권력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정부와 정치권력이 갈등에 적극 개입하고 해결하는 모습을 공적 갈등 해결이라고 한다. 


 이 사회에 갈등은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항상 이해관계에 놓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필연적인 것이나 갈등 당사자 간에는 늘 힘의 차이가 존재하며 그 힘의 차이란 다수와 소수, 빈부의 차이, 물리적인 힘의 차이 등이 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힘이 센 개인이나 집단은 갈등을 사적으로 해결하고 싶어 한다. 손쉬운 방법이자 자신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약한 개인이나 집단은 사적 갈등 해결보다는 공적 해결을 원한다. 공권력에 의지해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며 이때 갈등을 해소하는 공권력의 형태와 성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정치다.  

   

 한국사회의 갈등 종류는 다양하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노사갈등, 지역갈등, 다수와 소수의 갈등이다. 노사갈등은 기업 내 사용자와 노동자 간에 발생하는 갈등을 말하며 그 핵심은 임금과 근무환경이다. 기업은 낮은 임금을 주고 많은 일을 시키고 싶어 하며 노동자는 높은 임금을 받고 쾌적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기업과 노동자가 갈등의 당사자이지만 양측은 힘의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 언뜻 생각할 땐 그토록 회사의 처우가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 그냥 그 회사를 그만두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회사에 팔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고 어느 회사를 가든 같은 일은 반복되므로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되지 못한다.


 반면 기업은 얼마든지 노동력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기에 아쉬울 것이 없으므로 결국 노사갈등에서의 약자는 노동자다. 그래서 노사갈등이 심화되면 노동자들은 파업 등의 단체행동으로 회사에 맞서지만 파업이 장기화되면 생계의 곤란을 겪고 어려워지는 것은 노동자들이므로 끝내는 자신들의 입장을 정부에 알려 공권력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그런데 정부가 어떤 정치이념과 성향을 가졌는가에 따라 노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도 반대로 귀를 닫을 수도 있으며 정부의 중재로 타협이 되더라도 그 결과가 기업에 유리하거나 또는 노동자들에게 유리해지기도 한다.   

 

 한국은 지역갈등도 심각하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 자신이 속한 지역 출신의 정치인을 지지하여 지역이익을 추구한다. 지역의 이익을 생각하는 마음이야 이해가 되지만 타 지역 사람을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맹목적으로 비난하고 헐뜯는 행태는 보기 불편하다. 특히 극우보수 성향을 가진 이들은 전라도와 그 지역 출신들을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한다. 사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지역을 보고 사람을 지례 평가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다수와 소수가 겪는 갈등도 많다. 성소수자에 대한 비난, 한국으로 삶의 터전을 찾으러 온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배척 등은 심각한 사회갈등 요소이며 특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박해는 다문화가정의 안착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이며 이민자 배척은 해외동포의 이주 안착에도 불안의 여파를 미치며 고령화로 인해 갈수록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국내 상황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치인은 이렇게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선거에 적극 이용한다.   

  

 모든 갈등에는 모든 이들이 당사자이며 유권자인 시민은 정치인들이 이슈화 하는 갈등 사안을 자신의 이익과 결부하여 판단한다. 정치인 한 사람으로는 여러 갈등 사안을 모두 이슈화하기는 어려우므로 정치인들은 정당이라는 무리를 만든다. 그리고 사회갈등 요소를 이슈화한 묶음 상품을 유권자에게 내놓으며 유권자인 시민은 투표를 통해 이를 구매한다. 따라서 정당들은 많은 유권자를 포섭할 수 있는 사회갈등을 찾아 이슈화 하려 하는데 이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이슈여야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에는 당연히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므로 경제에 관한 이슈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대척 관계다. 자본주의에서 강자는 고용과 공급을 쥐고 있는 기업, 즉 자본가다. 자본주의 안에서 노동자는 자본가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이용하면 자본가를 상대할 수 있게 된다. 민주주의는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정치권력을 배출한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가가 강자 일지 몰라도 다수의 의사가 중요한 민주주의에서는 자본가보단 노동자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즉 다수인 노동자들이 투표를 통해 정치권력을 배출하고 이를 이용해 자본가를 견제하는 것이다. 정치인과 정당들도 집권하기 위해선 다수표가 필요하므로 다수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주요 갈등인 경제정책을 이슈화 하여 표심을 얻는다.     


 계급배반 투표란 노동자 신분의 시민이 친자본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인이나 정당에게 표를 던지는 현상을 말한다. 외국의 경우는 이러한 계급배반 투표 현상이 실제로는 없다는 통계 결과 있지만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에서는 계급배반 투표 현상이 있다. 박근혜와 문재인,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인물이 충돌했던 제18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 2040 초반 연령대까지는 진보후보인 문재인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40 후반부터 50 초반 연령대에선 양 진영을 5:5로 지지했다. 그리고 50 후반 이후는 보수 후보인 박근혜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다.


 당시 2040 초반 세대는 1998년 IMF를 겪으면서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겪은 비정규직 세대로 따라서 노동자 중심 정책을 펼친 진보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40 중반에서 50 중반 세대는 7, 8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임금인상과 평생직장을 경험한 세대이자 87년 6월 항쟁 등을 주도한 민주화세대다. 따라서 각자가 생각한 바에 따라 경제성장을 이끈 보수와 민주화를 이끈 진보를 5:5로 지지했다. 50 후반 이후의 세대는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로 임금통제와 평생직장을 경험했으며 비록 자신은 노동자이나 경제성장의 기초를 닦았다는 자부심에서 이를 함께 이룬 보수에 대한 충성과 향수로 계급배반 투표를 한 세대다. 또 이 세대는 한국전쟁 직후의 베이비붐 세대로 인구가 많은 만큼 유권자도 많아 보수의 콘크리트 지지기반이 되었다.

    

 정부가 사회갈등을 관리하는 방법에는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권위정부는 정부 권력이 갈등 당사자의 입장을 듣지 않고 정부의 목표만을 내세우며 공권력을 남용하여 갈등을 억누르고 억압하는 형태이며, 민주정부는 갈등을 들어내고 해결하려는 노력 의지를 갖는 형태다. 민주주의가 정상 작동하는 사회는 선거를 통해 스스로를 통제해줄 권력을 집적 선출하므로 그 자체로 자구책이 되며 사회갈등이 증폭될 염려가 없는데 반해 권위주의는 독재와 억압을 기반으로 하므로 내전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며 5.18 광주운동과 6월 항쟁과 같은 시민저항으로 표출된다. 사회갈등은 시대에 따라 그 양상도 바뀐다. 80년대가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민주화와 권위주의를 내세운 반민주화의 갈등이었다면 90년대는 호남과 비호남으로 갈려진 지역갈등의 시대였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 시대다. 보수는 80년대엔 권위주의 세력이었고 90년대에는 비호남 세력이었으며 진보는 80년대엔 민주주의 세력이었고 90년대엔 호남세력이었다.


 현재 보수와 진보의 주요 갈등 양상은 경제이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조세제도가 있으며 이는 누구에게서 얼마를 거두어 누구에게 다시 배분할 것인가를 논하는 문제다. 가진 자는 조세개혁에 부정적이며 못 가진 자는 조세제도의 개혁을 원한다. 보수는 조세개혁을 반대하고 진보는 조세개혁을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주체가 된 이익 결사체가 모여 갈등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제도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투표를 통해 유권자인 시민의 의사가 관철되는 정치제도다. 유권자의 성향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한다. 누구에게나 삶과 죽음이 있고 각자가 겪은 시대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2010년대까지는 보수가 장악하고 있던 대한민국이었고 그 기반은 너무나 단단하여 깨지지 않던 6070의 콘크리트 지지층이었다. 이제 그들이 세월이 지나 저물고 손자 세대인 현재의 청소년들이 성장하면 유권자의 성향 구조도 변할 것이며 새로운 갈등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갈등을 없애는 원초적인 방법은 자유를 없애거나 모두 동일한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이는 불가함으로 갈등은 슬기롭게 조정해야 한다. 


 갈등의 범위를 넓히면 이해관계가 얽힌 많은 정파가 형성되고 빠짐없이 모든 갈등을 다룰 수 있게 되므로 소외집단이 없어지며 단일한 이슈로 형성된 다수파가 상대 소수집단의 이익을 침해하는 시도도 자연히 줄게 된다. 따라서 갈등은 숨길 필요 없이 모두 들어내야 하며 서로의 의사를 끊임없이 교환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이고 상대의 생각을 듣는 것에서 시작하여 합의점을 찾는 것이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갈등 해소를 위한 민주주의 본연의 모습이며 갈등은 곧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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