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환 Jan 01. 2019

9# 우월한 자본주의

청년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모두의 정치'

 진보정부가 들어서면 보편적 복지와 강한 조세정책이 뒤따르곤 한다. 많은 복지를 하려면 세수가 확보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강한 조세정책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과 정부는 냉랭한 분위기가 연출되며, 이 기회를 놓칠 새라 보수진영은 진보정부에 ‘사회주의 경제 실험’이라는 프레임을 뒤집어 씌워 정부를 공격한다. 


 사회주의란 표현만으로 우리에겐 강한 거부감을 갖게 한다. 사회주의 경제 실험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사회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경제를 확연히 비교할 수 있는 실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의 곡식 창고’라 불리며 전 세계로 식량을 수출해 아프리카에서도 부유한 나라로 꼽혔다. 하지만 현재는 생산인구의 80%가 실업자로 허덕이는 상황으로 전락했다.


 37년간 짐바브웨를 통치했던 무가베 대통령은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폈다. 무가베 대통령이 개인의 사유재산을 제한하자 돈 있는 사업가들은 짐바브웨를 떠났고, 사업가들이 떠나가자 무역량이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외환보유액도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가뭄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무가베 대통령은 정책을 선회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존 정책을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토지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백인들이 가지고 있던 토지를 한 푼의 보상금도 없이 몰수하여 흑인들에게 나눠주었다. 하지만 무가베는 이것도 모자라 외국 자본이 보유한 짐바브웨 기업 주식의 절반을 강제로 국가에 넘기라고 명령했다. 만약 거부하면 체포해 버리는 강경책을 썼고 이로 인해 외국투자자본은 짐바브웨로부터 빠르게 빠져나갔다.


 결국 기업들의 폐업이 속출하자 국민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백인 농장이 사라지면서 농업 기반도 사라져 기아에 허덕이게 되었다. 투자자본이 사라지고 국가살림을 위한 국고도 바닥나자 무가베 대통령은 화폐를 마구 발행했다. 계속해서 찍어낸 화폐의 양이 증가하자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가치가 폭락한 짐바브웨 지폐는 0이 무려 14개 더 붙는 지경에 이르렀다.  


 2008년 한 해 동안 짐바브웨의 물가상승률은 2억% 가 넘었다. 이는 100원이었던 물건이 1년 사이 2억 원이 넘었다는 의미다. 경제학적으로 물가 상승이 통제를 벗어난 상태가 된 것으로 이른바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것이다. 


 결국 2009년 짐바브웨 정부는 스스로 통화를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국 통화를 폐기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미국 달러, 유로, 중국 위안, 일본 엔, 인도 루피 등을 법정 화폐로 지정했다. 짐바브웨의 은행에서는 짐바브웨 달러를 다른 통화로 바꿀 수 있는데, 미국 돈 1달러는 35,000,000,000,000,000 짐바브웨 달러이다. 


 짐바브웨 정부는 2016년 6월, 화폐 신설 계획 정책을 내놓았고 자국 통화를 부활시켜 경제를 부흥시키려고 하지만 과연 물가를 안정시키고 통화를 재정비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중국은 사회주의 정치 환경과 자본주의적 경제정책이 공존하는 특수한 모델로 현재 세계 경제 2위 대국으로 우뚝선 것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중국은 어떻게 사회주의 안에서 자본주의 경제정책을 녹일 수 있었을까. 


 1949년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으로 중국은 공산주의 경제 이론에 기반을 둔 계획경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치우쳤던 계획경제는 대약진 운동, 문화 대혁명을 거치면서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계획경제의 실패와 이에 대한 경제정책 수정의 결과로 1979년 이후 개혁개방 정책이 등장했다.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 동안 중국은 유례없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2010년 국민총생산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개혁개방 이전 중국 내 계획경제의 실패는 정치적 실패와 공산주의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생산성 약화에서 기인했다. 이후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화궈 평이 권력을 계승하면서 주장한 ‘사회주의 정권에서도 계속적인 혁명이 필요하다’는 마오쩌둥의 '계속 혁명론(不斷革命論)'에 경제주의 실용 노선을 결합하는 경제정책을 입안했다. 


 정치는 유지하되 경제 분야에서 서양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여 생산성을 크게 도약시키려 는 것으로 이른바 '양약진(洋躍進)'으로 불리 운다. 그러나 권력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급진적 정책을 시행하였기에 양약진 시기의 경제정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그 정신은 계속 유지되어 1979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개혁개방은 계속되고 있다. 먼저 중국은 농민들의 생산 욕구를 증대시키기 위해 농업을 개혁했다. 기존의 자급자족 형식의 생산 구조를 전문화되고 상품화된 생산 구조로 변화시켰다. 농가 생산 책임제로 발생한 잉여 노동은 농촌의 소규모 기업인 향진기업(鄕鎭企業)이 흡수함으로써 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농촌공업화의 길을 열었다.


 이어서 중국은 도시 상공업도 개혁했다. 1984년에 단행된 개혁의 주요 내용은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 분리, 가격체제 조정, 자영업의 허가 등이다. 이는 기업 경영능력이 없는 국가가 전문 경영인에게 기업경영을 맡겨 전문화했고, 시장 가격체제를 도입하여 생산성을 끌어올렸으며, 자영업의 장려로 실업해소와 개개인의 욕구를 시장으로 적극 끌어들이기 위한 개혁정책이었다. 이를 통해 중국은 국민소득의 증가, 농촌 경제의 번영 및 대외무역의 확대 등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1992년 1월 덩샤오핑은 남부지역을 시찰하면서 개혁개방의 심화와 확대를 독려하는 '남순강화'를 발표한다. 이 담화는 거의 모든 내용이 공산당 14차 대표대회의 보고서에 그대로 삽입되었으며, 이에 따라 오늘날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이 더욱 가시화되었다. 또한 중국은 2001년 세계 무역기구(WTO)에 가입하여 세계경제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편입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중국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만의 경제모델로 개혁개방 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우월함이다. 짐바브웨는 자본주의적 경제모델을 버리고 공산주의에 가까운 경제정책을 폈기에 실패했고, 중국은 공산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적 경제정책을 도입하여 성공한 사례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성장의 동력이 되기에 우월한 체제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경제모델로 성공한 중국도 자본주의가 가진 고질적 문제인 부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2018년 중국은 ‘폴링스타챌린지’라는 놀이가 유행했다. 일부러 넘어지는 상황을 연출해 SNS에 인증숏을 올리는 놀이로 핵심은 사진 속 주인공이 넘어지면서 쏟아낸 고가의 물건들이다. 비싼 물건들을 사고인 척 바닥에 쏟아내 부를 과시하는 것이다. 이에 상대적 빈곤에 있는 사람들의 풍자도 이슈화 되었다. 자동차 수리공이나 미화원, 공무원들이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부품이나 청소 도구 등을 쏟아놓은 채 넘어져 있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것이다. 

 최초 러시아에서 시작된 이 놀이는 부유함을 뽐내고 싶어 하는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중국 언론은 이 놀이가 중국 사회에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스위스 UBS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빠른 경제성장 덕분에 매주 2명꼴로 자산 10억 달러 이상의 억만장자가 탄생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반면 부의 불평등 또한 갈수록 심각해져 2017년 중국의 불평등 지수는 0.465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8# 민주주의를 성장시키는 동력 '갈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