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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환 Jan 02. 2019

10# 어느 착한 기업이야기

청년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모두의 정치'

 유한양행은 국내에서도 유명한 제약회사다. 버드나무 이미지의 기업 로고로도 국민에게 잘 알려져 있는 유한양행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유일한 박사가 설립한 회사다. 유 박사는 기업의 이윤은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명으로 회사를 운영해왔고 사회적으로 해가 되는 일은 회사에 아무리 큰 이익이 되더라도 주저 없이 거절했는데 이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만주에서는 헤로인, 모르핀, 아편 등 마약류 거래가 많이 성행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한 영업 담당자가 유 박사에게 유한양행도 마약류를 팔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유 박사는 민족에 해가 될 것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해당 직원은 해고될 뻔했지만 유 박사의 아량으로 해고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유일한 박사


 유 박사는 광복 이후 미국에서 돌아와 유한양행을 재정비한 후 성장을 거듭해 우수 약품 생산 업체로서의 자리를 견고히 했다. 자신의 이익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앞장서는 모범 경영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처럼 자신만의 확고한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나라의 밝은 미래를 위해 힘쓰며 한편으로는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한 유 박사는 1969년 노환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아들인 유일선이 아닌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조권순 전무에게 회사 경영권을 승계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혈연이 아닌 인물, 즉 전문경영인 제도를 최초로 실시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일가친척들을 모조리 유한양행에서 해고하고 주식도 처분해 유한양행 경영에 전혀 간섭하지 못하게 했는데, ‘경영 대물림’을 사전에 방지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렇게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가족들 또한 유 박사 못지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들 유일선과 동생 유특한은 유일한 박사를 상대로 ‘퇴직금 반환 소송’을 했다. 본인들이 회사로부터 받은 퇴직금이 너무 많다는 게 소송의 이유였다. 이에 소송을 맡은 담당 판사는 ‘세상에 이런 집안이 어디 있나’라고 말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이와 같은 유 박사와 그 일가족이 보여준 소신과 원칙은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재벌 갑질’등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자괴감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가족경영승계와 부의 되물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질적 병폐로 꼽히는 것들이다. 기업은 어느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하면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게 된다. 기업 하나에 수만 명의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누가 되었든 경영을 잘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가족 승계 경영은 이를 보장하지 못한다. ‘성군이 나오면 다행이지만 폭군이 나오면 민생이 위태롭다’고 말한 조선 건국공신 정도전의 말처럼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가족이 기업경영을 맡게 되면 수만 명의 생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기업의 경영과 소유는 분리될 수 있다. 기업의 실질적인 소유는 재벌일가가 가질 순 있어도 경영권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소유의 되 물림 만으로도 재벌일가는 충분히 여유롭다. 기업경영은 재벌일가의 문제만이 아닌 국민적 대사이므로 경영권 가족 승계는 우리가 곱씹어 봐야 할 문제이다. 

 진보진영이 말하는 ‘재벌해체’는 기업의 가족경영승계를 막자는 취지다. 재벌일가의 갑질과 부의 되물림에 자괴감을 느끼는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한 주장이기도 하다. 정치적 발언이긴 하지만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 강제하기보다는 재벌의 자발적 행동을 유도하면 어떨까. 바로 유한양행처럼 말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경영철학을 강조하는 사회분위기는 2, 3세대 재벌들에게 충분히 긴장감을 줄 수 있다. 기업의 사회기부와 복지사업 정도를 지역사회에서 끊임없이 알려 지역민들이 우리 지역에 어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가를 알게 하면 구매운동으로 기업을 움직일 수 있다. 또한 이는 정부의 강제가 아닌 기업의 인식 변화로 인한 자발적 환원의 모습을 띄게 되므로 재벌에 대한 국민적 불신도 개선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사례가 있다. 


 오뚜기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과 선행을 통해 갓뚜기라는 국민적 칭호를 받고 있는 식품제조 기업이다. 오뚜기 함영준 회장은 초대회장인 故함태호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 대한 1,500억 원대에 달하는 상속세를 5년간 성실히 분납하기로 했다. 또 오뚜기는 1992년부터 한국 심장재단과 함께 심장병 어린이를 후원하고, 2012년부터는 사회복지법인 밀알 복지재단의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2008년 이후로 10년 가까이 대표상품인 진라면의 가격을 동결하면서 소비자들의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다. 오뚜기의 이러한 사회적 평가는 경영상황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라면 업계에서 난공불락의 존재로 여겨지던 신라면을 오뚜기의 진라면이 턱밑까지 추격하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기업의 자발적 선행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경영 성장을 이룬 좋은 사례다. 


 반면 불신을 계기로 기업의 개선을 이끌어낸 사례도 있다.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강제 납품 갑질’로 큰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본사의 물량을 대리점에게 강매하고 이 과정에서 젊은 영업사원이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주에게 폭언과 욕설을 한 녹취록이 공개되자 이에 분개한 국민들이 남양유업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응징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양유업은 대리점 강제 납품에 대한 개선조치를 했고 대국민 사과를 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기업윤리에 대한 국민적 갈망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다. 


 오뚜기와 남양유업의 사례는 결과적으로 정부의 강제 없이 기업의 자발 행동으로 귀결되었지만 그 과정은 전혀 다르다. 선행과 후행의 차이다. 오뚜기는 선행으로 국민적 신망을 얻었고 남양유업은 후행으로 개선한 사례다. 기업의 선행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위 두 기업과 같은 사례가 널리 알려져야 한다. 정부와 언론이 적극적 캠페인을 하고 국민들이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기업의 병폐를 막고 선행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을 알리면 나쁜 기업들은 굳이 정부가 나서 강제하지 않아도 자발적 선행을 하게 된다. 


 이 같은 흐름은 정부는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고도 기업의 협조를 얻을 수 있으므로 ‘기업 때리기로 경제를 망치려 한다.’는 정치공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또 국민들은 기업의 자발적 선행으로 친기업적 사회분위기를 느끼게 되며 이러한 선순환 구조는 내수경제 활성뿐 아니라 정치적 이슈도 무마하여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기부와 선행 그리고 상속은 기업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8년 10월 25일 고려대학교에 어느 한 노부부가 찾아와 400억 원을 기부한 일이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무일푼으로 시작해 과일장사를 하며 평생을 모은 큰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기부한 이유에 대해 묻자 노부부는 이렇게 답했다. 


‘자식에게 상속? 자기가 힘들여 벌지 않으면 의미 없어! 내가 죽더라도 고생한 보람이 남으니 기부가 상속보다 더 기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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