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깊은 사고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마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알고 있다고 믿던 것이 흔들린 순간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신이 설명해 주던 세계가 침묵했을 때, 본능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았을 때,
인간은 생각하기 시작했다기보다 멈춰 섰다.
과연 깊은 사고는 정말 깊을까?
‘깊다’는 말은 언제나 공간의 은유다. 그러나 사고는 아래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같은 자리를 오래 맴도는 것일지도 모른다.
깊은 사고는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지 않고 한 생각 곁에 오래 머무는 시간일 수 있다.
그렇다면 깊은 사고란 무엇일까?
더 많은 개념을 쌓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않는 태도.
답을 갖는 능력이 아니라 답이 없는 상태를 견디는 힘.
어쩌면 깊은 사고란 ‘이해’보다 ‘불편함’에 가까운 상태다.
깊은 사고는 얕은 사고보다 나은 것일까?
우리는 쉽게 ‘깊음 = 우월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얕은 사고는 빠르게 움직이고, 깊은 사고는 자주 멈춘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언제나 깊음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사고의 밀도일지도 모른다.
때로 얕은 사고는 생존을 돕고, 깊은 사고는 우리를 흔든다.
그러니 깊은 사고는 더 나은 사고라기보다
더 감당하기 어려운 사고일 뿐이다.
나는 깊이 생각하려고 한 적이 없다.
다만 생각이 쉽게 끝나지 않았을 뿐이다.
사람들은 하루를 지나가며 많은 생각을 흘려보내지만, 나는 그중 몇 개에 자꾸 발이 걸린다.
왜 그런지, 어디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번 멈춘 생각은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주 어둡다.
우울해서라기보다, 빛보다 그늘의 모양이 더 또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지나치는 질문 앞에서 나는 괜히 멈춰 서서 오래 바라본다.
“이건 왜 이렇게 느껴질까.”
“정말 다들 괜찮은 걸까.”
“나는 왜 여기서 멈춰 있지.”
사람들은 나에게 생각이 많다고 말하고, 복잡하다고 말하고, 가끔은 피곤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내 생각을 점점 말하지 않게 되었다.
말로 꺼내는 순간, 이 깊이가 오해로 바뀔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혼자만의 깊이는 곧 고립이 된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우물은 언젠가 스스로도 바닥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써본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이 문장 어딘가에서
“아,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라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다만 질문을 오래 안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나를 어둡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나를 나답게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것만은 확실하다.
이 생각들이 사라진다면
나는 조금 가벼워질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