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면서 점점 더 확실히 알게 된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나는 점점 더 모르겠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순간들은 불쑥 찾아온다. 그럴 땐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일종의 정지 상태가 된다.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최선의 선택을 하려 하고, 더 나은 결과를 좇으며 끝끝내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결국 후회를 낳기도 한다.
나는 항상 사람들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질 때, 마지막에는 이렇게 대답하게 된다. “모르겠어.”
많은 생각 끝에 도달하는 건 언제나 ‘모르겠다’는 결론.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정답 없는 문제를 푸는 중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럴 땐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 매우 고통스럽고, 빠져나오고 싶어 안간힘을 쓰지만, 나는 그럴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의지를 갖지 않는다. 그저 나를 그 정지 상태에 놓아둔다. 그러다 보면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 그 늪에서 빠져나와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안다. 그 정지 상태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고. 그건 단지 다음 작동을 위한 잠시의 멈춤, 쉼의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멈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평일 한가운데 정지되기라도 하면, 하루는 온통 비난과 걱정으로 채워진다. 도대체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건 누가 정한 기준일까. 정말, 나는 모르겠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냐”고. 나는 대답한다. “나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행복하게 살 거야.” 그럼 또 이렇게 말한다. “이기적이야.”
그러면 나는 되묻는다. “그렇게 말하는 것 또한, 이기적이라 생각하지 않나?”
싸우고 싶은 게 아니다.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그리고 내 대답 역시 진심이다. “모르겠어.”
출구 없는 미로
생각에 빠진다. 결론은 언제나 같다. “모르겠다.”
철학이라는 이름의 끝없는 사유 속에서 올바른 길도, 완벽한 해답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나는 미로를 헤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 미로에는 애초에 출구가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말로 옮길 수 없는 생각들이 내 안을 메웠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미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우리는 왜 미로를 만든 후 길을 찾으려 하는가
우리는 미로에 갇힌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든 미로에 스스로 들어간 것이다. 그 안에서 출구를 찾으려 발버둥 친다.
처음부터 세계는 단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그 세계는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왜 살아야 하지?” “나는 누구지?” “어떻게 살아야 옳을까?”
이 질문 하나하나가 벽이 되고, 갈림길이 되고, 출구를 잃게 만드는 구조가 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왜 우리는 평탄한 길을 거부하고, 복잡한 미로를 만들며 안심하려 하는 걸까?
인간은 혼란 속에서 의미를 만든다. 정답이 정해진 삶에서는 ‘살아간다’는 감각이 사라진다. 그건 그냥,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로를 만든다. 일부러 길을 잃고, 스스로 길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사실은 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발견했을 뿐인데도.
미로는 내가 만든 세계였다
나는 늘 길을 찾고 있었다.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덜 후회할지, 어떤 선택이 진짜 나다운 길일지.
그러나 결국 알게 된다. ‘정답’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나는 그저 내가 만든 관념, 가치, 질문들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그 미로는 내 안에 쌓인 믿음, 상처, 기대, 두려움 — 그리고 ‘나’라는 생각이 만든 구조물이었다.
벽은 남이 세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만든 판단과 고정관념이었고, 출구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내가 외면한 그 자리에 있었다.
생각할수록 아이러니하다. 나는 자유롭기 위해 미로를 만들었고, 의미를 찾기 위해 혼란을 설계했고, 나를 찾기 위해 나를 잃었다.
그리고 질문은 남는다. 정말, 우리는 미로에서 빠져나와야 할까? 아니면, 내가 만든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까?
폭포
생각은 끊임없이 흘러 떨어진다. 그 물줄기는 어느덧 큰 호수를 만든다. 그 호수는 맑고 깨끗하다.
물의 공급이 끊기면 호수는 썩는다. 그래서 인간도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문제는 생각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생각들로 또 다른 미로를 만드는 순간부터가 문제다.
하지만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 미로 속에서 더 많이 배우고, 더 깊이 자신을 알게 된다면, 나는 찬성한다. 그렇게 하라고 말할 것이다.
모르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이 넘쳐흐를 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생각과 감정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올 때, 처음엔 깜짝 놀라 흠칫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물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일부로 삼게 된다. 그게 인간이다.
잔잔한 호수
나는 마음이 요동칠 때, 잔잔한 호수가 되기로 했다.
그런 마음을 먹는다고 마법처럼 평온해지는 건 아니다. 호수가 되기 위해 애쓴 것이 아니라, 힘들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을 뿐이다. 그러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건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음식을 한 번 먹으면 그 맛을 기억하듯, 한 번 마음먹은 것도 무의식 속에 남는다.” 그리고 필요할 때, 그 마음이 다시 떠오른다.
마음을 너무 세게 먹으려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럴수록 집착이 되고, 부담이 된다.
나는 잔잔한 호수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이 그저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허무함이나 무기력과는 달랐다. 깨달음에 가까운 고요함이었다.
그 고요는 모든 풍파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하리만큼 강한 힘이었다.
인생은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때의 그 느낌, 그 잔잔한 호수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호수 속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다.
에필로그 - 모르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아이러니한 진실이다.
모른다는 것, 그 불확실함과 두려움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 불확실함은 조금 익숙해지고, 두려움은 조금 누그러진다.
모르는 것을 안다는 것은, 사실은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알지 못함을 인정할 때, 우리는 닫힌 답을 좇는 대신, 끝없는 질문의 길 위에 설 수 있다.
길을 잃을지라도, 그 길이 나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생각 속에 맑은 호수가 숨 쉬고 있음을 기억한다.
모르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그 무게 위에 서서 한 걸음 내딛는다.
그것이 내가 아는, 모르는 것을 아는 자의 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한다. “모르겠어.” 그 말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며, 가장 솔직한 나의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