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방울로 새긴 삶의 정체(正體)

수필

by 산들강바람

새벽 네 시 반, 포항의 바다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짙은 해무(海霧)를 토해내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 소금기 머금은 서늘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박혔다. 평소라면 서재에 앉아 정적 속에서 자판을 두드리거나 책장을 넘겼을 시간이었으나, 오늘은 펜 대신 투박한 면장갑을 챙겨 집을 나섰다. 안락(安樂)한 일상과 활자(活字)의 세계에 길들여진 나 자신을 날 선 현실의 모서리에 직접 부딪쳐보려는 일종의 자발적 고행(苦行)이었다.


인력사무소의 낮은 천장 아래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삶의 지문(指紋)이 깊게 패어 있었다. 그 거친 숨소리들 틈에서 나 또한 이름 없는 숫자가 되어 현장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공사 현장은 아수라(阿修羅)와 같은 소음과 분진으로 가득했다. 안전모를 깊게 눌러쓰고 무거운 자재를 나르기 시작했을 때, 내가 마주한 첫 번째 진실은 나의 초라한 체력(體力)이었다.


마음은 여전히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을 것처럼 당당했으나, 육신(肉身)은 몇 번의 반복적인 중노동만으로도 금세 비명을 질렀다. 무릎은 삐걱거렸고, 폐부는 타들어 가는 듯한 열기로 가득 찼다. 세월의 흐름을 지식(知識)으로 아는 것과, 휘청거리는 다리의 떨림으로 실감(實感)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땀이 눈가로 흘러들어 시야를 가릴 때마다 나는 장갑 낀 손등으로 대충 훔쳐내며 생각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손쉽게 지불하고 누리는 그 수많은 '돈'의 이면(裏面)에는 이토록 처절한 육체의 소모가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타인(他人)의 주머니에 담긴 결실을 나의 일당(日當)으로 옮겨오는 과정은 결코 고결한 문장이나 유려한 말솜씨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철저하게 중력(重力)에 저항하는 근육의 비명과, 흙먼지를 들이마시는 인내(忍耐)의 산물이었다. 남의 돈을 쉽게 가질 수 없다는 그 지극히 평범하고도 위대한 진리가 욱신거리는 허리 통증을 타고 뇌리(腦裏)에 깊게 각인(刻印)되었다. 작가로서의 자존심이나 지식인으로서의 허영(虛榮)은 땀방울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흙먼지 속에 섞여 들었다.


오후가 되자 해는 머리 위에서 자비 없이 내리쬐었고, 피로는 층층이 쌓여 발목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몸이 무거워질수록 정신은 투명할 정도로 맑아졌다. 평소 나를 괴롭히던 복잡한 사회적 관계나 창작의 고뇌(苦臥),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不安) 따위는 거친 숨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오직 '지금 눈앞의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는 본질적(本質的)인 생존의 리듬만이 남았다. 단순해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祝福)인가. 육체의 고난이 정신의 잡음(雜音)을 잠재우는 그 역설(逆說)적인 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인간이 땅을 딛고 살아간다는 것의 엄중(嚴重)함을 배웠다.


현장의 동료들은 묵묵했다. 그들은 거창한 철학을 설파하지 않았으나, 그들이 내뿜는 땀 냄새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경전(經典)이었다. 요행(僥倖)을 바라지 않고 자신의 근력을 다해 하루의 몫을 살아내는 그 투박한 손마디들이야말로 이 세상을 지탱하는 진정한 기동(機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틈에서 나 또한 한 사람의 이름 없는 노동자(勞動者)로서 섞여 들어간 시간은, 글을 쓰는 서재에서의 고독(孤獨)과는 또 다른 종류의 뜨거운 유대감(憐帶感)을 선물해 주었다.


작업이 끝나고 퇴근길에 올랐을 때, 저 멀리 포스코의 굴뚝 너머로 서쪽 하늘이 붉은 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온몸의 근육은 마디마디 끊어질 듯 아팠고 걸음걸이는 부자연스러웠지만, 마음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충만함이 차올랐다. 오늘 하루 내가 흘린 땀은 거짓이 없었고, 내가 받아 든 일당은 나의 생(生)을 깎아 만든 정직한 결정체(結晶體)였다. 편의점에 들러 탄산수 한 병을 사 마시며 느끼는 해갈(解渴)의 기쁨은, 수만 개의 단어를 조합해 완성한 원고 한 권의 성취감(成就感) 보다 더욱 즉각적이고 강렬했다.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며, 오늘 하루 내가 배운 것들을 복기(復記) 해 본다. 체력의 한계는 나를 겸허(謙虛)하게 만들었고, 노동의 가치는 나를 경건(敬虔)하게 만들었다. 세상에는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일보다 몸으로 부딪쳐야만 깨닫게 되는 진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나는 이 나이에 다시금 배운다. 비록 내일 아침이면 온몸에 찾아올 근육통(筋肉痛)이 두렵기도 하지만, 오늘 밤은 그 고통조차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훈장(勳章)처럼 여겨질 것 같다.


현장을 나오며 느꼈던 그 짧은 보람(報覽)은 단순한 자기만족이 아니었다. 그것은 타인의 수고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의 눈을 다시 떴다는 기쁨이었고, 남의 돈의 무게를 알게 됨으로써 내 삶의 모든 것들을 더욱 정중(鄭重)하게 대하게 되었다는 성찰(省察)의 결과였다. 비록 고된 하루였으나,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정직하게 소모되고 정직하게 채워진, 참으로 보람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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