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이는눈 Dec 12. 2023

그녀 : 반짝이는 눈을 가진

동남아의 한 아름다운 휴양지 섬

아름다운 일몰로 유명한 이 섬은 그녀가 태어난 곳은 아니다


본토에서 태어난 그녀는 지금의 애인을 따라 이 섬에서 사업을 위해 정착했다

그녀의 애인은 한국에서 친척을 따라 사업을 하러 온 한국남자였다


영민의 친척은 돈냄새를 잘 맡는 위인인데 요즘 돈이 좀 된다는 이 섬에 터를 잡았다

부산에서 모텔사업을 하던 사람이라고 했다

부모가 물려준 모텔 3개를 인수받아 운영하다가 불법적인 일에 얽혀

가끔 골프나 치러오던 이곳으로 도피성 이민을 왔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의 친척인 영민은 한국 중소기업에 전전하던 변변치 않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친척의 권유로 섬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순풍가도를 달렸다

섬에 관광하러 온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사지사업이었는데

매년 그 섬이 더더욱 유명해지면서 영민을 도와 같이 사업을 하는 후엔도 바빠졌다


그다음이야기를 하기 전에,

어떻게 그녀가 영민을 만났는지를 먼저 말해야겠다

그녀는 참 이쁜 여자였다 평생 이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가는 허리의 소유자였다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어딜 가나 이쁜 애로 통했다

그녀 자신도 본인이 이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시절, 그녀의 얼굴에는 항상 자신감이 넘쳤고

눈빛은 반짝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꿈에 도전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던 즈음에,


같이 어울리던 동네 친구가 좋은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며 제안을 해왔다


한국에 골프를 치러오는 아저씨, 말 그대로 아저씨들이었다

아저씨들과 같이 다니면서 라운딩도 돌고 술도 마시고 뭐 그런 일자리였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배불뚝나온 아저씨들을 상대하는 게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며칠 비위를 좀 맞춰주고 나면 한 달 월급을 벌었다


사실 아저씨들이 원하는 더 깊은 요구를 들어주면 더 큰돈을 만질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못생기고 냄새나는 아저씨들이 자신의 몸을 슬쩍 만지는 것조차 진절머리 나기도 했고

자신의 꿈인 연예인만 되면 그 정도 돈쯤이야 얼마든지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돈이 필요하면 가끔 골프알바를 했고

연예계종사자들이 즐겨 찾는다는 클럽엘 다녔다


그리고 종종

오디션을 보았다

동네에서는 모든 남자들의 시선을 받는 제일 미녀였지만 이상하게도,

오디션에는 번번이 떨어졌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관계자들이 자신을 몰라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오디션을 준비하던 친구 핌타는 어디서나

만나볼 만한

적당히 귀여운 외모에 소유자였는데 다니학교와

사는 동네는 달랐지만


둘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공통분모로 친해졌다


어느 날, 핌타는 그녀에게

같이 연기학원에 다니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그녀는 자신은 그런 트레이닝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클럽을 다니면서 인맥을 만들어 그럴듯한 광고를 찍고 나면 뜨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인맥유지를 위해 클럽도 다녀야 하고 알바도 나가야 하는데 연기학원이라니.. 탐탁지 않았다


그녀가 망설이니 핌타는  테스트라도 받아보자며

손목을 잡아끌었다


억지로 끌려간 연기학원에서는 재미없는 것만 가르치려고 했다 발성부터 잘못됐다면서 그녀의 연기를 본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그 학원을 등록하지 않았다


조금 더 자주 골프알바를 나갔고 그 보다 자주 아니 어쩌면 거의 매주 클럽에 다녔다

그녀가 클럽에 가기만 하면 온갖 남자들이 그녀에게 추파를 던졌다 회려한 클럽 조명아래에서 관심을 받고 있으면

오디션에 떨어진 초라한 자신을 잊을 수 있었다


가끔 만난 연예계 인맥이 자리를 제안해 주기도 했지만

성에 차지 않는 단역들뿐이었다. 그녀는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 제안마저 끊길 때쯤 그녀는 언제나처럼 찾은 클럽에서 영민을 만났다

사업을 하는 친척을 만나러 베트남에 온 영민은 관광차 클럽에 들렀다. 선남선녀인 둘은 자연이 정해준 수순처럼 서로에게 끌렸다


키가 크고 젊은 한국남자인 영민과 다니면 그녀는

전보다 더 사람들의 질투와 시샘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는 그 시선이 싫지 않았다


돈도 못 벌고 키도 작은 그녀의 또래 남자친구들보다

영민은 잘생기고 돈도 많았다

그리고 골프아저씨들처럼 냄새가 나지도

손길이 거북하거나 불쾌하지도 않았다


영민이 한국에서의 직장을 그만두고 친척을 따라  섬에서 사업을 준비하게 되면서  동업을 제안해 왔다

한국말이 서툰 영민에게 그녀는 훌륭한 사업파트너였다

영민을 따라 그녀도 본토에서 섬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녀는 전보다 더 오디션을 볼 수 없었다

한번 오디션을 보러 가려면 본토로 가야 했고

시간을 뺄 수가 없었다

사업이  날로 바빠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주로 카운터를 지켰고 영민은 고객과 마사지사 관리를 했다 친척이 만들어놓은 사업 커넥션 덕분에  사업은 스무스하게 자리를 잡았다


2호점을 내고 영민이 사업을 확장하고 나자

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업은 바빠졌는데

영민은 한 번씩  한국에 갔다가

꼬박 일주일 있다 돌아왔다


횟수가 잦아지고 그녀의 불만이 극에 치달았다

한국에 있어도 전화로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은 오롯이 그녀 몫이 되었다


다음번 영민의 한국행 때는 본인도 따라가야겠다고

다짐을 하던 중,

그녀는 자신이 생리를 하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영민이 한국에 가있을 때 임신테스트기로

두줄을 확인하고서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아이를 낳고

영민과 가정을 꾸리면 사모님 소리를 들으면서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고민하는 그녀의 뇌리에 영민의 한국인 여자친구 얼굴이 스쳤다

한국에 사는 그 여자는 별로 이쁘지도 않은 허여멀겋기만 한 얼굴에 통통한 몸매를 하고선

번번이 휴가를 내고 섬에 와서

영민의 주위에 얼쩡거렸다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니 묘한 승리감마저 들었다


그녀는 반짝반짝 빛나는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되는

배우의 꿈은 접어두고

영민의 그늘아래에서 섬마을 모두의 부러움을 받는 삶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무대만 다를 뿐 주목받는 삶은

언제나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돌아온 영민에게

임신사실을 알렸을 때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의 아이를 책임질 수 없다고 했다


영민은 곧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잘 돼 가는 사업은 친척의 지인이 인수하기로 했다고 했다

갑자기 말하게 되어 미안하다는 진솔한 고백을 이어나갔다


여기를 떠나, 허여멀겋기만 하고 통통한 그 여자와

한국에서 같이 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마사지샵이 아닌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음식점을 오픈할 거라 했다

친척의 그늘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성공해서 능력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말과 함께


너도 배우라는 꿈이 있지 않았냐고

그녀의 가슴을 철렁하게까지 했다  


사실을 빨리 털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가게 일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고도 털어놓았다

적당한 보상 금액과 정도를 고민 중이었다고 했다


아이는 어떻게 할 건지  물으니


망설이던 영민은 그 아이가 내 아이가 맞냐는 물음을 던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네가 골프아르바이트했다는 걸 알고 있다고도 했다

자기가 한국에 가있을 때 거짓말하고 클럽에 다니는 것도 다 알고 있다고도 했다


그녀는 영민의 친척이  친구들을 여기에 초대해 골프여행을 자주 다녔던 것을 떠올렸다

마사지샵에 영민을 흠모하고 추종하는 마사지사들이 많다는 것도,

좁은 섬동네에서 그녀가 클럽에서 노는 걸 수많은 눈이 보았을 거라는 사실도 떠올렸다


그러다 그녀의 회상은

영민이 그녀와 관계를 가질 때마다 철저하게 피임을 하려 한 수많은 날들로까지  이르렀다


영민이 너무 술에 취해서 피임을 하지 못한 단 하루를 제외하고.


이쯤 되니

둘 사이에 항상 사업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던 불편한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자신의 못다 이룬 꿈애대한 부채의식으로

불투명한 그들의 미래에 대해 재촉하지 않았다

그런 점이 영민을 그녀의 곁에 오래 머물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식의 결말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홀몸이 아니었고 영민이 주는 달콤하고도 풍요로운 그늘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이제 막 그 그늘에 온몸을 던지려던 참이었다


격한 말싸움이 오고 간 끝에

그들은 잠시 휴전 시간을 가졌다


영민은 곧 모든 걸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아이를 꼭 낳아야겠으면 매달 양육비를 보내준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나 없이 알아서 해보란 심정으로

가게 나가지 않았다


며칠 후,

영민은 짐을 챙겨 같이 동거하던 집을 나갔다


텅 빈 집이 너무 조용한 나머지,

티브이를 틀었는데 인기배우가 나오는 새로운 드라마 조연이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3년 전 자신을 연기학원에 억지로 데려간 핌타였다

티브이 속 핌타의 발성은 연기학원 선생님이 보여준 시범처럼  정확했다

 

여자주인공의 친구라는 보잘것없는

역할이었지만 잠깐 아주잠깐,

조명 덕분에 그녀의 눈이 참 반짝이게 보이는 듯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배가 나오지 않아서 짧은 옷을 입고 클럽에 나갔다

그녀가 임신했는지 모르는 친구들은 자연스레 술을 권했다

 

그러면 안 됐는데

그녀는 너무 답답한 마음에 술을 마셨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너무 취해서 친구랑 담배를 피웠는지 안 피웠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희미하게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게 꿈이었는지 실제인지 영 알 수가 없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침대에서 못 일어나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영민이다

못 챙긴 짐을 가지러 왔다고 했다

숙취에 찌든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얼핏 경멸감이 읽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영민이 구한 집이었는데

곧 방을 뺄 거라고 했다


그녀는 영민에게 목돈을 요구했다

영민은 순순히 돈을 마련해 주겠노라고 했다

그녀는 짐 짓 놀랐지만 태연한 척하며 일주일 내로 돈을 넣으라고 기한까지 설정했다


일주일 후,

어두운집에 홀로 누워 속절없이 돌아가는 실링팬을 한참 들여다본다

영민의 이름으로 약속한 목돈이 입금되었다


그제야 그녀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모든 게 끝났다

부자남편의 그늘아래서 사모님 놀이를 하는 것도

그리고 영민과의 관계도

인정하기 싫었지만 어쩌면 그녀는 영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목돈을 요구하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그가 떠나지 않을 줄 알았다.

실은 아이를 방패막이로 삼아서라도

영민을 잡아두고 싶었다


음식점은 한국에서 그 여자가 아니라 나랑 같이 차려도 되지 않냐고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이 떠난 그를 잡는 것은

차마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통장에 입금된 돈과 함께

영민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녀는 이로서 모든 것이 끝났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달리방법이 없었다


곧 이 작은 섬에 소문이 돌 것이다


영민이 사업을 넘기고 한국에 돌아가면

그녀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다

섬에 남아있는 영민의 친척은 임신사실과 그녀가 목돈을 요구한 사실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본토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이를 지웠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해서 혼자 병원을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실제로 그랬으므로)

세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집 안에서만 머물렀는데 거울을 보다가


문득 섬으로 떠난 삼 년 전과

삼 년이 지난 지금,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여전히 배우지망생이었다


몸을 추스르고 다음날,

그녀는 예전 연기학원을 다시 찾았다


학원등록을 하기 위해  이름과 생일을 적는 란에

그녀는 자신의 이름과 생일이 아닌

마음속으로 지어준 아이의 이름과

아이를 떠나보낸 날을 적어냈다


아이의 이름으로 연기활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참이었다


오디션은 단역이든 조연이든 가리지 않았다

연기를 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다니고 배우러 다녔다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핌타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녀가  잡지와 티브이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과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섬에서 한국인 유부남 사업가와 살림을 차렸다.

유부남에게 거액을 받고 아이를 낙태했다는 진실과 소문의 그 중간쯤으로 변질된 이야기가 세간을 떠돌았다


그녀는 연기자로서 보다 더러운 추문의 주인공으로

사람들에게 먼저 각인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숨지 않았다.

유명한 잡지사를 골라, 인터뷰를 했다

거짓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했다

떠나보낸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아이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꿈을 위해 살겠다고도 약속했다


진솔한 이야기를 막 끝낸 그녀의 눈이 카메라 플래시와 함께  반짝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