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의 여행
대구에만 오면 찾아뵙는 엄마 같은 박 선생님이 계신다.
1935년생이다.
쉰둘에 돌아가신 울 엄마는 1934년생.
울 엄마가 못살아본 세월을 사시는 박 선생님을 엄마 대신으로 자주 찾아뵙고 친구를 해드리고 있다.
벌써 삼십수년이 넘었으니...
나는 금요일 홍성에서 대구에 왔다.
홍성에서 챙겨 온 반찬과 햇반을 데워 점심을 먹고 박 선생님한테 전화를 드리니 오늘 어딜 좀 같이 가줄 수 있냐고 해서 약속을 하고 시내로 나갔더니 버스정류장 벤치에 곱게 차려입은 박 선생님이 앉아계신다.
몇 년 만에 혼자 처음으로 시내버스를 타보셨다고 하신다.
버스정류장에서부터 박 선생님의 팔짱을 끼고 교동시장으로 걸어간다.
교동시장으로 가는 길에 박 선생님은 옛날에 다니던 길을 걸으며 여긴 어디였고 또 여긴 어디였고 그 주인은 어땠고 그러며 추억여행을 하신다.
그리고 그리 변하지 않은 깡통시장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신다.
속옷을 사시겠다고 하셨다.
젊을 때부터 입으셨다는 옷이 다 낡아서 새로 구입하고 싶다셨다.
한 가게에서 소매가 달린 러닝셔츠를 들고 가격을 묻는다.
러닝 한 장 가격이 125000원이란다.
난 입이 떡 벌어졌다.
12500원이라고 해도 난 비싸다고 안 살 거 같았다.
몇 군데에서 가격을 둘러보고 조금은 저렴하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기엔 너무나 비싼 가격인 러닝과 아래 내복을 몇 벌 사셨다.
가게 주인이 박 선생님 보고 참 곱다고 하며 나는 며느리라 생각하는 거 같았다.
난 박 선생님이 속옷을 고를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만 서있었으니 딸은 아니라 생각했을 거 같다.
박 선생님은 가게 주인에게 나를 소개하고 그녀에게 자신이 왜 비싼 속옷을 사는지를 이야기하신다.
이제 90이 넘은 할머니가 갈 곳은 병원이나 요양원 밖에 없는데 그곳에선 가끔 주사를 맞을 테고 그때마다 속옷이 보일 텐데 구차해 보이기 싫고 소매가 조금 붙어있는 옷을 입으면 늙은 겨드랑이 같은걸 남에게 보이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준비하는 것이라고...
그때서야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난 솔직히 그 연세에 이렇게 비싼 속옷을 몇 벌이나 왜 살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병원이나 요양원에 가서도 이쁜 모습으로 대접받고 싶은 것이었다.
마음이 복잡하고 아프기도 했다.
깡통시장에서 박선생님댁까지는 버스로 두 정류장인데 살살 걸어보자며 선생님의 팔짱을 끼고 걸어서 깡통시장을 나왔다.
쉬며 걸으며 선생님댁에 모셔다 드리고 잠시 선생님의 옛날이야기를 또 듣는다.
삼십수년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더 들었던 옛날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 때의 이야기다.
화장실을 핑계로 일어선김에 집에 간다고 하고 인사를 하고 나온다.
나는 선생님 살아계실 때 한번 더 찾아뵐 것이고 돌아가셨다면 안 올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는 위아래로 스무 살 정도 차이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엄마 같은 박 선생님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