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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버니 Sep 17. 2023

로드트립과 연애사 (5)

웨스트버지니아 - Morgantown

PRT 트랙

모건타운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Farmer's Market이 열리는데, 아침 일찍부터 친구 부부와 함께 구경을 하러 나섰다. 모건타운에는 아주 특이한 대중교통 시스템이 있다. PRT (Personal Rapid Transit)라는 시스템으로, 역에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하면 4명 정도 탈 수 있는 아주 작은 트램이 도착하여 그 역까지 직행으로 데려다주는 시스템이다. 1970년대에 일본의 한 엔지니어가 여러 미국 도시에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는데, 그중 모건타운이 승낙하여 이 시스템을 건설했다고 한다. 운전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친구 부부가 꼭 PRT를 체험해야 한다고 해서 PRT를 타고 Farmer's Market에 가기로 했다. PRT는 생각보다 빨랐는데, 어린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짱잼)


꿀벌도 좋아하는 도넛이용

더운 남부에서 벗어난 모건타운의 날씨는 너무나 화창했다. 걸어 다니기 딱 좋은 날씨였다. 친구의 남편은 엄청난 미식가인데, Farmer's Market의 도넛이 정말 맛있다며 추천해서 도넛을 아침식사로 먹었다. 나는 혼자 있으면 주로 저녁 한 끼를 먹고 아침식사를 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다. 뉴욕에서 오래 살면서 든 나쁜 생활 습관 중 하나인데, 가끔 건강하게 살아보겠다고 마음먹고 꼬박꼬박 세끼를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세끼를 챙겨 먹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을 먹고 돌아서면 점심시간이 오고, 점심을 먹고 정리 후 어느새 저녁이 되어 밥을 챙겨 먹느라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건강하게 살아보자는 시도는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 하며 다시 한 끼 식사의 패턴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나마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생활을 하게 되면 따라서 식사를 꼬박꼬박 하게 된다.


박사 과정을 마치면 대개 주립 대학교의 소도시 캠퍼스에서 교수로 임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친구는 박사 과정을 시작할 때부터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악기 연주를 매우 뛰어나게 하는 친구여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자로서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겠지만, 남을 가르치는 것에서 큰 보람을 느끼는 친구는 박사 과정을 마친 직후부터 미국 전역의 교수직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사실 교수직을 잡는 것도 요새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 친구가 이렇게 빨리 자리를 잡은 것은 엄청난 업적이라 볼 수 있다. 주변에서 열을 내서 교수직을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뭔가 나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작년에는 아주 고민이 많았다. 나 역시 지난 3년 동안은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10년가량 개인 레슨을 해 왔지만, 교수직을 잡게 되면 업무량이 꽤 커서 특히 학기 중에는 티칭에만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이 있듯, 작년에는 나 역시 가끔 교수직 포스팅을 찾아보곤 했다. 긴 고민 끝 교수직을 잡는 대신 스스로에게 2년 정도의 시간을 부여하여 프리랜서 작곡가로서의 커리어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2년 정도의 커미션 스케줄이 계획되어 있어서 작곡가로서의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다.


세상과의 타협은 나중에 할게요

아직 교수직을 잡고 싶지 않은 것도, 소도시로 이사를 가고 싶지 않은 것도, 이렇게 누구를 만나지 않고 혼자 지내보는 것도 사실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나의 태도 때문이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고, 무언가에 목메지 않아도 되는 이런 자유로운 삶을 포기하기엔 아직 철이 덜 든 건가보다.


모건타운은 미국의 전형적인 작은 캠퍼스 도시였다. 대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도시에서는 결코 살 수 없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모건타운에 와 보니 사람들이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너무 복잡하지 않고 조용해서 살기에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소도시에 살면 몇 가지 불편한 점들이 있다. 그중에는 한국음식을 살 수 있는 슈퍼마켓이 없다는 건데, 한국계 미국인인 친구 남편은 내가 휴스턴에서 출발하기 전 부침가루, 튀김가루, 냉면 밀키트 등 그곳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들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세상은 생각보다 좁다. 이 외딴 모건타운에도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내 친구 부부 외에도 있었다. 나보다 몇 년 일찍 우리 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 작곡가도 여기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일하고 있었고, 몇 년 전에 내가 작곡한 곡을 연주한 바순연주자 역시 여기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서로 다 잘 아는 사이였기에, 같이 모여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시내에 있는 브루어리에 갔다. 요즘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는 재정 문제로 교수들을 대거 해고하고 있는데, 이 소식이 우리의 주요 대화 주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참, 인생은 예측 불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세 명 다 상대적으로 빨리 교수직을 얻고 안정된 삶을 보장받은 것처럼 보였지만, 대학교의 재정 문제로 내년의 상황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무엇이든 영원한 건 없는 게 우리의 삶이다. 변화는 예기치 않게 찾아올 때가 많고, 삶은 계속되기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창조해 나가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어마어마한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일찍 자는 친구 부부라 먼저 자러 갔고, 나는 잠들기 전 한참을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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