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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 Feb 13. 2024

딱, 나의 숨만큼만!

<엄마는 해녀입니다, 고희영 (지은이), 에바 알머슨 (그림), 난다>


몇 년 전, 번아웃이 왔던 적이 있었다.

열의가 넘치던 교장 선생님은 온갖 공모 사업에 관심이 많으셨다. 100대 교육과정, 연구학교, 시범학교 등등 공문이 내려올 때마다 해당 사업에 대한 계획서를 준비해서 공모에 참여하기를 바라셨다. 학교의 부장들은 모두 T/F팀으로 구성되어 역할을 나누고 계획서를 쓰느라 밤낮없이 업무에 시달렸다.

딱히 내 업무도 아니었건만, 많은 시간 공모 계획서를 쓰느라 잦은 회의와 퇴근 후 과로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자리에 누웠는데, 심장 박동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귀를 울릴 만큼 빠른 속도로 “쿵쿵쿵” 뛰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순간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고, 온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진정이 되어, 잠깐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부랴부랴 학교로 향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방학이 되자,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꽤 오랫동안 남편과 아이들도 뒷전인 채 무기력했다. 다행스럽게도 엄마가 보내주신 보약을 먹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내 역량에 넘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코로나가 찾아왔다.

처음 맞는 온라인 수업! 교육부의 방침에 따라 교육과정을 짜고, 재구성하고 또 수정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등교수업과 온라인 수업이 뒤바뀌기도 하고, 코로나 확진자 접촉으로 하루 만에 등교 결정이 번복되어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한 치 앞을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새로운 온라인 학습 도구를 익히고 활용하고, 자료를 찾느라 매일 매일 정신없이 바빴다. 학습 안내를 위해 프로그램을 짜고 줌을 배우고, PPT와 동영상을 제작, 편집하는 나날들! 미리 캔버스와 팅커벨, 패들렛, 티처메이드 등등 낯설었던 블랜디드 러닝 수업 도구들은 일상이 되고, 방과 후에는 학생 개인별 학습 피드백과 보충학습 지도가 이어졌다.


도대체, 이 코로나가 언제쯤 끝날까? 

 ‘아,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어!’  

모든 걸 내려놓고 기진맥진이 되는 순간, 방학이 찾아왔다. 


그렇게 방학을 맞으면 또다시 한동안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축 늘어진 시금치처럼, 혹은 좀비처럼 며칠을 보내다가 서서히 다시 기운을 찾아 회복할 때쯤이면 개학이 찾아오는 게 당연한 수순이 되었다.


때로는 ‘이것이 교사의 삶이구나.’ 싶기도 하다. 그게 싫은 거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역량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라서, 남들이 2~3가지 일을 해낼 때 겨우 하나를 해낼 때도 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고, 교사로서 내 직업에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산다.

다만, 학교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번아웃과 무기력함에 대해서는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소진되면 어느 순간 꿈과 열정도 함께 사라진다. 그렇게 모든 에너지가 바닥날 때 우리는 무기력 해질 수밖에 없다. 적당히 일과 건강의 균형을 지키며, 에너지를 고갈시키지 않는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의 고희영 감독이 글을 쓰고,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이 그림을 그린 <엄마는 해녀입니다>는 해녀 삼대의 이야기가 한 편의 시처럼 담겨 있는 그림책이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해녀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짙푸른 바다의 모습이 마음을 울린다.

에바 알머슨의 밝고 사랑스러운 그림 속에서 “호오이~ 호오이~”하는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내내 들리는 것만 같다.

바다가 싫어 육지로 떠났지만, 결국 그리운 바다로 다시 돌아온 엄마는 깊은 바닷속 전복을 주우려다가 숨을 놓칠 뻔한다. 엄마를 끌어올린 할머니는 말한다.


“바다는 절대로 인간의 욕심을 허락하지 않는단다.”


바다의 꽃밭에서 자기 숨만큼 머물면서, 바다가 주는 만큼만 가져오는 것이 해녀들만의 약속이라는 할머니! 내일도 엄마와 할머니는 바다에 나갈 것이고, 할머니는 잊지않고 엄마에게 말할 것이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딱 너의 숨만큼만! 이 말에 우리 삶의 또 다른 비밀이 숨겨있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나는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너무 애쓰지도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딱 내 숨만큼 살아야 한다. 바다가 내 숨 이상의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사는 이 세상도 인간의 과도한 욕심을 허락할 리 없다. 바다의 꽃밭에서 해녀들이 자신의 숨만큼 머물면서 바다가 주는 만큼만 가져오듯, 나 역시 아름다운 삶의 꽃밭에서 내 숨만큼 머물면서 세상이 주는 만큼만 가져와야 한다.


나를 위해서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위해서든, 내 숨을 넘어서는 모든 것은 욕심에 불과하다. 그 숨을 넘어서게 되면, 결국 꿈과 열정, 에너지도 모두 소진되어 무기력해진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묘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때때로 습관처럼 정신없이 일하다가 지칠 때면, 나는 이 책을 떠올린다. 그리고 혼자 마음 속으로 되뇌인다.

‘그래,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자. 딱 내 숨만큼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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