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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Sep 13. 2021

잘 걷고 잘 넘어져요 [시와 산책]



시와 산책 _ 한정원



읽는 내내 행복해서 울고 싶었다. 너무 기뻐서 마음이 어딘가 찌르르하고 울려댔다. 밑줄을 긋고 책갈피를 끼우는 대신 온전히 사색에 잠겨 문장 속을 거닐었다. 이런 책은 귀하다. '이래서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거야!' 찬란한 문장을 꼭꼭 씹어 삼키며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해도 된다는 확신을 갖는다. 이 문장을 만나기 위해 넘긴 수많은 페이지들이 쓸모로 변하는 순간이다.









사랑하는 것을 잃었을 때, 사람의 마음은 가장 커진다. 너무 커서 거기에는 바다도 있고 벼랑도 있고 낮과 밤이 동시에 있다. _12p



봄의 마음으로 겨울을 보면, 겨울은 춥고 비참하고 공허하며 어서 사라져야 할 계절이다. 그러나 조급 해한들, 겨울은 겨울의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한동안 떠날 것이다. 고통이 그런 것처럼. _19p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내가 귀하게 여기는 한 구절이다. 노인을 경외하는 것은, 내가 힘겨워하는 내 앞의 남은 시간을 그는 다 살아냈기 때문이다. _68p






우산 끝으로 도르륵 굴러가는 빗방울 소리, 목욕탕에서 갓 나와 발그레 한 두 볼, 형광등에 비쳐보던 카메라 필름, 자판기 흰 우유, 혼자 남은 교실에서 바라본 하늘.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된 순간들. 느리게 숨 쉬어야 보이는 것들이다. 다정한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 그들로 일상을 채운다면 나는 조금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만의 고유함을, 부드럽고 담백한 사유를 나누고 싶어 서투른 마음을 표현해본다. 이런 책을 또 만날 수 있다면, 나는 건너온 페이지만큼 다시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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