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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Miami Jun 28. 2024

또 배워야 한다

 

배움을 계속하는 동안 성장해 왔다.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관심과 잠재력을 알아보고 키워갈 수 있었다. 나의 엄마는 짧았던 배움을 안타까워하셨다. 고등학교를 다녔으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하셨다. 그녀의 배움에 대한 한을 풀기라도 할 것같이 나는 의무 교육을 끝내고, 고등학교, 대학과 대학원을 마쳤다. 그 여정에서 수많은 경험을 했고 교양을 쌓았다. 정규 교육으로 내 인생에 단단한 주춧돌을  놓았고 그 위에 여러 기둥을 세울 수 있었다. 교육은 최고의 투자였다.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지식을 습득하고 기술을 배우고 능력을 향상해 한 독립된 인간으로 설 수 있었다. 그 뒤, 바쁜 탓에 정체되었다. 나 자신을 찾고 새롭게 하는 것에 소홀했다. 이제, 제2의 인생을 살 내 집을 튼튼하고 멋지게 보수하려 한다. 다시 배움을 이어간다.


엄마는 전라남도 구례에서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농부로 살았다. 그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느낀 나는 더 많은 배움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1976년 배화여자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벌 중심의 세태에 따라, 개인의 성향과 자질에 상관없이 모든 공부가 대학입시에 집중되었다. 60명이 넘은 좁은 교실과 고리타분한 교과과정은 재미가 없었다. 많은 급우들은 방과 후 학원으로 나가 똑같은 공부를 또 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서점으로 가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책방 책벌레가 되어 학교 교육의 지루함과 강요성을 벗어날 수 있었다. 문학을 좋아했고 소설에 더 빠졌다. 외국소설을 읽으며 먼 나라들의 거리, 가정,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다. 내가 있는 장소와 시간을 떠나 자유롭게 다른 세상으로 여행했다. 문화와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만의 인간수업이었다. 문학을 공부해서 시야를 높이고 싶었다. 특히, 영미소설은 번역서가 아닌 원서로 읽고 싶었다. 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미국문학사와 소설에 관심이 더 갔다. 그래서인지 회화 실력은 크게 향상되지 않았다. 다른 언어를 배우고 그 문학을 이해하는 데는 아주 많은 시간과 그 문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졸업 후, 취직이 안 돼서 좌절과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실력대로 당당하게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88 올림픽을 맞을 준비로 영어 가이드 자격증을 땄다. 조금씩 기지개를 켜며 일어날 수 있었다.


관광가이드를 하면서 여러 나라 사람을 만났다. 나와는 다른 삶에 대해 듣고 보면서 한국 밖 세상을 맛봤다. 그들과의 대화는 외국소설을 읽을 때 느꼈던 자극과 동경심을 키웠다. 원서를 직접 독해하고 싶었던 것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도 스스로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올림픽이 대성공으로 끝난 후 사회가 변하고 있었다. 서울은 국제도시가 되었다. ‘잘 해냈다’는 긍지로 가득 찬 분위기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줬다. 코리아는 유명해졌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한국을 보러 몰려들었다. 그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외국에 직접 가보길 원했다. 3년이 넘은 필드 경험을 쌓은 뒤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매니저가 되고 싶었다. 야간 관광경영 대학원에 입학했다. 직업상 호텔을 자주 방문하며 힐튼호텔 같은 곳에서 일하는 나를 그려보았다. 호텔은 관광버스보다 더 럭셔리하고 근사해 보여 끌렸다. 호텔리어가 되기 위해서 호텔산업과 교육의 중심지인 미국으로 가고 싶었다. 인생 항로를 바꾸는 아주 큰 길목에 서게 되었다.  ” Do not be afraid to give up the good to go for the great,” (더 좋은 것을 쫓기 위해 좋은 것을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존 록 펠러. 이 말을 지표로 삼아 더 나은 미래를 찾아 떠나기로 결정했다. 호스피탈리티 매니지먼트 (Hospitality Management) 과목을  선택했고 원서를 냈다. 이  2년간의 공부는 호텔리어가 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가르쳐 줄 것이라 예측했다. 한 달 뒤, 1990년 4월,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유니버시티(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 대학원으로 부터 입학 허가를 받았다. 내 인생의 기둥을 세우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관광지 마이애미는 호스피탈리티 매니지먼트를 배우는데 적격이었다. 마이애미는 12개가 넘는 해안, 드넓은 습지인 에버글레이즈, 수많은 호수와 운하로 꽉 찬 물의 도시였다. 열대기후 안에 사방에서 하늘로 치솟은 야자수와  땅으로 뻗어간 형형색색의 꽃들이 도시를 단장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끌려온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훌륭한 호텔, 모텔, 레스토랑으로 꽉 차있었다. 도시 전체가 서비스 산업으로 바쁘게 돌아가며 활기 찬 에너지를 뿜었다. 근처 대형 호텔 매니저들이 게스트 스피커로 자주 대학원을 찾아왔다. 책으로 공부한 뒤 바로 학교문 밖에서 실전 경험을 했다.  ‘레스토랑 개업’이라는 프로젝트를 위해 유명한 식당들을 찾아가 시식을 했고 매니저와 인터뷰를 했다. 자유를 만끽했다.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건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실한 대인관계가 나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은 미지의 땅, 미국에서 모든 꿈과 희망이 이루어질 것 같았다. 졸업 후, 파운틴블루 힐튼호텔 (Fontainebleau Hilton Hotel)에서 1년간 인턴십을 했다. 그 뒤에 정식 직원이 되어 주체적인 삶을 이루었다. FIU 대학원 교육 과정은 나의 성장과 풍부한 삶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최선을 다해 공부했던 이 시절에 집의 뼈대를 갖추고 벽을 세웠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20년간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손실 없는 최고의 투자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혜택을 누려왔다. 사는데 필요한 많은 행위와 수단을 배웠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 나를 세울 수 있었다. 자아실현을 이루었다. 그 뒤, 자식들 교육과 생활에 신경 쓰느라 나의 발전은 멈추었다. 이제, 세 아이를 키웠던 둥지와 마음이 휑해졌다. 그 빈둥지에 책을 들여 시원섭섭함을 배움의 즐거움으로 바꾸리라. 어렸을 때 접었던 영문학을 다시 공부할 걸 생각하니 가슴이 마구 설렌다. 나의 창의성이 어디에 더 있는지를 찾을 때이다. 급변하는 세상에 맞추어 배워야 한다. 앞으로 20년 정도 남은 삶을  배움으로 채워야 한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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