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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산일보 Feb 09. 2022

‘찰칵’ 도토리의 정원은 위로·용기를 준다

[정달식의 공간 읽기] 부산 기장 장안 ‘카페 도토리’

카페 도토리 전경. 묵직한 덩어리(매스) 3~4개가 높이를 달리하며 관계 맺고 있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건축사진가 윤준환 제공


다양한 볼거리 유도하는 공간 구성

중정을 중심으로 ‘순환’되는 느낌

테라스서 보는 정원 모습 환상적

사색하기 좋은 ‘미술관 같은 카페’


부산 기장군 장안사를 가다 보면 상장안 마을을 왼쪽으로 끼고 장안천이 흐른다. 그 장안천 건너편에 삼각산 방향을 바라보며 제법 큼지막한 카페가 하나 들어서 있다. 지난해 10월 개장한 카페 도토리(道土利·부산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다. 대지면적 4755㎡에 카페동(지하 1층, 지상 2층)과 사무동(지상 3층)이 나란히 있는 형태다. 설계는 강기표(아체 ANP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가 했다. 카페 건물은 알파벳 영어 대문자 A의 상단부를 위에서 살짝 눌러 놓은 모습이다. 묵직한 덩어리(매스) 3~4개가 높이를 달리하며 관계 맺고 있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철골조에 건물 외장은 잿빛 골강판이 감싸고 있다. 강 건축사는 “카페 땅이 본래 갖고 있던 자연 지형을 살리는 설계에 주력했다. 카페 건물 모양은 특별히 무엇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게 아니지만, 완만한 능선의 자연 지형에 맞추다 보니 A자형 모양이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건축사의 설명을 듣다 보니, 오히려 A자형보다는 카페를 찾아오는 고객을 향해 팔 벌려 안으려는 모습 같이 느껴진다. 첫인상의 출입구가 따스하다고나 할까.

도토리란 카페 이름이 귀엽고 앙증맞다. 어떻게 도토리란 이름을 짓게 됐을까? 건축주는 카페 주변 자연환경에서 따왔다고 했다. 카페를 짓기 전부터 주변에 도토리나무가 많아 자연스럽게 도토리라는 이름을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도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도토리나무 수 그루를 카페 정원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건축주는 도토리에는 ‘하늘(道)과 땅(土), 모든 만물을 이롭게(利) 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한데 영어와 한문은 있는데, 한글 표기가 없는 게 살짝 아쉽다.


카페 도토리의 연결(브리지) 공간. 건축사진가 윤준환 제공


■지루하지 않은 공간                

카페 도토리에선 지겹지 않은 다양한 공간이 고객을 반긴다. 기와지붕이 있는 대청마루에 다락 같은 공간, 테라스에 브리지 공간, 수(水) 공간까지. 건물을 빙 둘러 보석 같은 공간이 채워졌다. 다양한 볼거리를 유도하는 공간 구성의 배치랄까? 강 건축사는 “중정을 중심으로 도는 구조다. 때로는 한 층 올라가 하늘을 보고, 때로는 자연을 느끼는 ‘공간의 순환’에 중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공간마다 앉았을 때의 느낌도 제각각이다. 브리지 공간은 햇볕을 온몸으로 느끼며 ‘멍 때리고’ 앉아있기에 안성맞춤이다. 침묵의 공간이 아닌데, 침묵하고 싶다. 1층 수공간은 날씨가 더워지면서 고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 됐다. 이곳에선 연인끼리 ‘꽁냥꽁냥’ 할 수도 있다. 고객들은 대체로 볼거리가 많고 머무르기에 좋은 공간이 많다는 반응이다. ‘사색’, ‘느림’, ‘쉼’과 같은 말과도 썩 잘 어울리는 공간도 많다.


카페 도토리 2층 대청마루. 건축사진가 윤준환 제공


강 건축사는 “건축주가 많은 쉼터 공간을 원했다. 그러다 보니 각기 다른 공간들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앉은 위치에 따라 바깥 풍경도 180도 달라진다. 카페 설계상 지상 2층 구조지만, 건물의 좌·우, 그리고 중앙 객석의 높낮이가 각기 달라 고객의 눈에는 마치 3층처럼 느껴진다. 건축주도 3층 같은 2층이란다. 그러면서 “마당 정원을 카페에서 내다볼 수 있는 3층(설계상 2층) 테라스 공간이 너무 좋다”고 속마음을 드러낸다. 실제 3층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정원의 모습은 과히 환상적이다. 홀로 턱 고이고 사색에 빠져보는 것도 좋다.

카페는 여기에 내부 인테리어와 예술품을 더해, 따뜻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때문에 건물 외장재가 주는 딱딱함과 차가움, 경직된 이미지가 완화된다. 실내는 동·서양의 분위기가 조금씩 섞여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적인 것도 놓치지 않는다. 1층 카페 데스크와 2층 대청마루 위에 우리의 전통 기와지붕을 차용해 얹었다. 천장엔 별을 새겨 넣었다. 이게 조명과 만나, 마치 밤하늘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모습을 연출한다. 건축주는 “특히 저녁때나 비 오는 날 보면, 정말 운치 있다”고 거들었다. 고객들도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마치 호텔에 있는 듯한, 럭셔리한 느낌을 받는다.

다만 살짝 아쉬운 것은 2층 남쪽 면 유리창이 어른 허리 높이 위에 있어 조금 답답해 보인다는 점이다. 유리창 위치를 낮춰 좀 더 개방감을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건축주의 모친이 정성을 다해 가꾼 원림(園林) 같은 카페 도토리 정원. 건축사진가 윤준환 제공


■미술관, 그리고 원림(園林)

건축주의 부친은 미술 작품에 관심이 많았다. “처음에는 갤러리를 지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위치도 그렇고, 비영리적인 공간을 하기에는 좀 무리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갤러리 겸 카페를 건축사에게 부탁했죠.” 건축주의 말이다.

미술품은 카페 들어서기 전부터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기린, 개 모양의 하얀 동물 조각상부터 수많은 조각상이 카페 곳곳에서 고객을 반긴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프랑스 화가이자 조각가인 로베르 콩바(Robert Combas)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만이 아니라 카페 곳곳에 놓인 예술 작품을 찾아 감상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카페 도토리가 왜 복합문화공간을 추구하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그래서일까? 유독 카페 도토리에서는 사진 찍는 이들이 많다.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콩바 작품을 보고 ‘찰칵’, 정원을 배경으로 ‘찰칵’이다. 어디서 찍어도 멋지다. 건축주는 “카페에 전시된 예술 작품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체될 것”이라 했다. 전시할 작품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카페는 주로 경치 좋은 곳에 있다. 하지만 카페 도토리는 이와는 조금 다르다. 주변엔 탁 트인 바다도 기암괴석을 자랑하는 해안도 없다. 그렇지만 다른 게 있다. 바로 숲을 끼고 있고, 특별한 정원을 갖고 있다. 이게 카페 도토리의 특별한 장점이다. 녹색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주차장 쪽에서 카페 도토리로 들어오는 입구. 건축사진가 윤준환 제공


도토리의 정원은 그냥 정원이 아니다. 건축주의 모친이 정성을 다해 가꾼 원림(園林) 같다. 원림은 집이나 정원 주인이 나무와 꽃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심고 가꾼 정원을 의미한다. 원림은 세속에 얽매이지 않으려던 사람들에게 때론 은신처가 되어 주고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건축주의 모친은 도토리가 문을 연 이후 거의 매일 카페로 출근하다시피 와서 직접 나무와 꽃을 가꾸고 있다. 자연의 향기는 꽃에서 온다고 했던가? 도토리 앞마당은 어머니의 정성으로 만든 원림 같은 정원이다. 도란도란 속삭이듯 얘기하는 공간 말이다.

흔히들 한국 건축이 매력적이지 않는 이유를 자연과의 관계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카페 도토리는 자연과의 관계성에서 탁월하다. 이게 지속 가능한 힘이 된다. 이게 생명이 된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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