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이라는 울타리 넘어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는 현재 졸업을 앞두고 있는 간호학과 4학년 학생이다.
간호학과의 모든 일정을 마쳤고, 국가고시만 앞두고 있다.
국가고시는 볼 생각이지만 전공을 살려 간호사로 병원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간호사 취업 잘되지 않아?", "4년 동안 공부했던 게 아깝지 않아?", "한 번쯤은 해보고 정 안 맞으면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아"라고 한다.
내가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조언에도 간호학이라는 전공을 살리지 않고 다른 일을 하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재 전공의 파업 사태로 인해 병원은 간호사 채용 인원을 대폭 줄였고 올해 아예 채용 공고가 올라오지 않은 병원도 많다.
많은 대학병원이 매일 엄청난 금액의 적자를 내고 있고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간호사를 채용하는 것은 병원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병원의 일부 과가 통폐합되고, 뽑힌 간호사들도 웨이팅 기간이 1년이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최종 합격했는데도 합격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매년 취업 현황을 홈페이지에 올려주는데 작년과 재작년 취업 현황을 보면 대부분 수도권 대학병원에 취업했다.
그런데 지금은 학교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친구들 중에도 취업을 못한 경우가 많다. 중하위권의 상황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에서는 간호사의 퇴직, 이직률이 높다면서 계속해서 간호학과 정원을 늘려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졸업한 간호학과 학생 수는 점점 많아지고, 그만두는 간호사 수는 점점 적어지고 있다. 게다가 전공의 파업 사태까지 맞물리면서 지금 간호사 취업은 불 취업을 넘어 용암 취업이 되어 버렸다.
이제 간호사가 취업이 잘된다는 이야기는 옛날이야기다.
고등학생 때는 3교대에 대한 걱정이 크게 없었다.
그 당시 내 눈에는 오히려 3교대 근무가 좋아 보였다. 남들처럼 매주 토요일, 일요일에 쉬는 것이 아니고 평일 중에도 쉬는 날이 있으니 남들 일하는 시간대에 사람 몰리는 맛집도 가보고, 은행업무도 보고, 당일치기로 여행도 가고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철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수면장애를 얻었고 이로 인해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일정한 시간에 약을 먹고 잠을 자야 다음날을 피곤하지 않게 생활할 수 있는데 3교대를 하면 그게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평일에 쉰다고 해서 그때 뭔가를 할 수 있는 체력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실습으로 오전(데이), 점심(이브닝)에 병원 나갔을 때도 너무 힘들고 죽을 것 같았는데 3교대 근무를 하면서 쉬는 날에 놀러 다닌다? 불가능한 일이다.
3교대라고 하면 보통 24/3->8시간 근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근데 실제 현장에서는 1~2시간씩 일찍 출근하고 1~2시간 늦게 퇴근한다.
물론 간호사 업무의 특성상 그 시간대에 해야 하는 일이 있어 마무리하고 퇴근해야 하고, 다음 타임 간호사에게 환자상태에 대해 인계도 해야 하기 때문에 정 시간에 퇴근하는 것은 힘들다. 그렇다고 초과근무에 대해 수당을 챙겨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은 간호사 한명이 맡는 환자의 수가 아주 많은 편이다.
미국은 간호사 한명당 5명이내의 환자를 간호하는데 한국은 평균 8~10명정도의 환자를 간호한다.
과도한 업무는 간호사 본인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의료사고 발생 위험도 증가시킨다.
나는 이런 환경에서 일할 자신도, 일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큰 병원이든 작은 병원이든 상관없이 그냥 1~2년이라도 간호사 일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끝까지 간호사의 길을 갈 생각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나에게 맞는 다른 직업을 빨리 찾아보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내가 간호학과에 가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 보건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시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체력적 이유로 보건교사로 이직하셨다. 보건실에 가면 선생님께서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있었던 일화들을 말씀해주시고는 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간호사가 되면 보람도 많이 얻고 재밌는 일도 많이 생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를 계기로 간호사가 되기로 진로를 결정하였고, 인터넷으로 '간호사는 어떤 일을 하는지', '연봉은 어느 정도인지'등 간호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보건교사 선생님과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지인분께 여쭤보니 간호사는 초반에 업무에 적응하는 기간 동안 좀만 고생하면 그 이후로는 다닐만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1~3년 정도 병원에서의 임상 경력이 있으면 3교대를 하지 않는 다른 직종으로 이직도 가능하다고 하셨다.
내가 간호사가 되겠다는 말을 들은 부모님은 당시 반대를 많이 하셨다.
반대하신 이유는 간호사는 기본적으로 3교대를 하고, 육체적으로 힘든 직업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뉴스에서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를 괴롭혀 결국 자살을 했다는 일명 태움 사건들이 뉴스에 보도되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세상에 힘들지 않으면서 돈도 많이 버는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간호사들의 태움 문제에 대해서도 '나는 누가 나에게 뭐라 하든 크게 상처받지 않는 성격이라 괜찮아'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나는 뭔가에 꽂히면 깊게 빠져드는 편이라 그 당시 내 머릿속에는 간호사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당시에는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있었던 것 같다.
사실 아직까지도 '어떤 일을 해야겠다'라고 결정한 건 없다. 하지만 간호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명확하다. 그래서 일단은 평소 관심이 있었던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남들 눈에는 대책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직업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을 남들 이야기에 휘둘려서 섣불리 결정하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알아본 내용들을 글로 남겨두고자 한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나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여기 또 있구나', '학과는 다르지만 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구나'하고 공감을 할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라고 그들에게 조금 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