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예수

도시의 의인을 찾아서

by 후추
창세기 18장, 새번역

20 주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 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다
21 이제 내가 내려가서, 거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이 정말 나에게까지 들려 온 울부짖음과 같은 것인지를 알아보겠다."
22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떠나서 소돔으로 갔으나,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23 아브라함이 주님께 가까이 가서 아뢰었다. "주님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
24 그 성 안에 의인이 쉰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 버리시렵니까? 의인 쉰 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그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보시는 것도,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6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에서 내가 의인 쉰 명만을 찾을 수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그 성 전체를 용서하겠다."
27 아브라함이 다시 아뢰었다. "티끌이나 재밖에 안 되는 주제에,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28 의인이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섯이 모자란다고, 성 전체를 다 멸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거기에서 마흔다섯 명만 찾아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29 아브라함이 다시 한 번 주님께 아뢰었다. "거기에서 마흔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그 마흔 명을 보아서,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30 아브라함이 또 아뢰었다. "주님! 노하지 마시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서른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거기에서 서른 명만 찾아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31 아브라함이 다시 아뢰었다. "감히 주님께 아룁니다. 거기에서 스무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스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32 아브라함이 또 아뢰었다. "주님! 노하지 마시고, 제가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게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열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성경에서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하나님이 인간사에 개입하시는 신호탄이 됩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에서도 동일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흥미롭게도 가인이 세운 에녹성, 시날 평야의 바벨탑,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는 모두 도시 문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고도로 발달했던 이집트 문명 속 울부짖음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서울의 예수」가 떠오릅니다. 서울은 도시화와 산업화, 근대화를 집약한 상징적 공간이고, 예수는 그 삭막한 도시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다움을 대변하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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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낚시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중략)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 먹고 싶다


도시화와 산업화는 때로 인간성을 잠식하는 괴물이 됩니다. 얼마 전 벽돌공장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주노동자를 벽돌과 함께 랩핑해 지게차로 들어 올린 사건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대통령조차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라며 강력히 규탄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이집트에서 벽돌 노동에 시달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버랩됩니다. 피해 당사자가 "마음이 다쳤다"라고 토로한 인터뷰는 또 다른 형태의 울부짖음처럼 들립니다.


도시에서 자행되는 악행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옵니다. 물론 도시에도 롯과 같은 의인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롯의 가족마저 소돔의 죄악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우리 역시 도시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도시에 만연한 죄악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성을 잠식하는 도시의 윤리에 대한 경계와 용기 있는 저항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보여준 손님 환대의 정신을 기억하며, 우리 삶을 다시 한번 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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