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하늘의 유산

by 후추
누가복음 12장, 새번역

13 무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 형제에게 명해서, 유산을 나와 나누라고 해주십시오."
14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느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16 그리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다.
18 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19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20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21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



유산 분배를 두고 형제간에 갈등이 일어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흔한 일입니다. 형제자매가 유산을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이거나, 평생의 정을 저버리고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유산 문제 역시 땅과 관련되었을 것입니다. 농경사회였던 이스라엘에서 땅은 단순한 경제적 자산이 아니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민족 정체성으로도 깊은 의미를 지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하며 지파별로 분배받은 땅은 하나님의 약속이 구현된 거룩한 유산이었으니까요. 이런 의미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러싼 갈등의 기저에도 '조상의 땅'이라는 깊은 신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유산 분쟁에 개입하기를 거부하셨습니다. 단순히 중재를 피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대인들이 가진 땅에 대한 고정관념을 근본적으로 해체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l_2013091001001303200108591.jpg Pieter Claesz - Vanitas Still Life


바니타스는 허무, 공허를 뜻하는 라틴어인데, 바니타스 정물화라고 할 때는 해골과 책 등을 통해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해골로 대변되는 인생의 죽음, 책이 상징하는 지식의 허무함, 먼지처럼 사라질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산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큰 집을 사기 위해,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분명 소중한 가치들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우리 삶의 '전부'가 되어버릴 때 생깁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누가복음 12장 33절에 힌트가 있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예수님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유산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당부했습니다. 돈이 있다 한들 인색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하여 가난한 사람일 텝니다. 가산이 부족해도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부요한 사람입니다. 그냥저냥 살다 보면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살게 될 수 있겠다는 경각심이 듭니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던 걸 기억하며, 우리의 마음을 다잡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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