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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고침

by 후추
이사야 32장, 새번역
16 그 때에는, 광야에 공평이 자리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이다.
17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
18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집에서 살며, 안전한 거처, 평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 것이다.


타국에 포로로 끌려간 디아스포라 이스라엘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길고 긴 유배 생활이 끝나는 희년이 도래하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를 뜻하지만,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이 이루어지는 해로 의미가 확장되기도 합니다.


희년이 되면 사람들은 자기 조상이 살던 땅으로 돌아가고, 농경지는 휴경을 하며 노예 해방과 채무 탕감이 이루어집니다. 희년은 시간이 지나면서 불평등해진 사회 자원을 재편성하고 공정하게 재분배하는 역할을 합니다. 부루마블 같은 보드게임을 예로 들어 봅시다. 처음에는 모든 플레이어가 자원을 균등하게 받고 시작하지만, 점차 한두 명의 플레이어에게 자원이 쏠리게 됩니다. 게임이 종반부로 향할수록 하나둘씩 플레이어가 파산하게 되고, 결국 소수에 의해 자원이 독점됩니다. 보드게임에서 승률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저로서는, 자원을 재분배하고 게임을 리셋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갖게 됩니다.


하물며 현실 사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50년이라는 시간은 한 세대가 점유한 사회 자원을 리셋해야 하는 최대한의 주기처럼 느껴집니다. 50년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소수에게 편중된 사회 자원을 재조정해야 하는 유효기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종의 생애주기처럼 태동과 성장, 성숙과 쇠퇴의 사이클과 같습니다. 50년 동안 이어져 쇠퇴한 사회의 생명력을 연명치료로 연기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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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날의 안식일이 하나님 나라를 선경험하는 시간이듯,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도 하나님 나라의 정의로움을 경험하는 창이 됩니다. 희년은 세상이 갱신되고 새로워지는 하나님의 재창조와 같습니다. 희년은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사회 제도인 것입니다. 가이사의 나라가 좋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가 오는 걸 지연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부족한 일자리 문제와 불안정한 주거 문제는 청년 세대가 사회에 자리 잡는 데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편중된 사회 질서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지 않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세우는 데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희년 정신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정의로운 주거권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사야서 말씀처럼 모든 사람이 평화로운 집에 거하며 평온히 쉴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며 말입니다.


사회 제도와 정책으로 희년법을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축소판이라고 한다면, 교회 안에서도 실행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는 전세 사기 피해자 이철빈 씨의 인터뷰를 함께 본 적이 있습니다. 전세 사기가 임차인의 부주의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공인중개사나 은행, 지자체 등의 검증 시스템이 있었음에도 전세 사기 피해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임대인이었던 김대성은 '빌라왕'으로 불리며 피해자 1,699명에게 3,289억원의 피해를 안겼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땅을 자산 증식의 수단이 아니라 평온히 쉴 수 있는 삶의 터전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 교회도 평화롭고 안전한 주거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라며,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년의 정신을 실천할 방안을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여력이 된다면 주거권이 불안정한 가정의 공과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도 시작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더욱 큰 상상력이 필요하고, 공동체가 가진 힘도 필요하겠지요. 희년 정신이 각 가정과 일터, 모임, 그리고 교회 안에 뿌리내리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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