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물에 들어갑니다

나아만의 신생(新生)

by 후추
열왕기하 5장, 새번역

7 이스라엘 왕은 그 편지를 읽고 낙담하여, 자기의 옷을 찢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렇게 사람을 보내어 나병을 고쳐 달라고 하니 될 말인가? 이것은 분명, 공연히 트집을 잡아 싸울 기회를 찾으려는 것이니, 자세히들 알아보도록 하시오."
8 이스라엘 왕이 낙담하여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듣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습니까? 그 사람을 나에게 보내 주십시오.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그에게 알려 주겠습니다."
9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와서, 엘리사의 집 문 앞에 멈추어 섰다.
10 엘리사는 사환을 시켜서 나아만에게, 요단 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장군의 몸이 다시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11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12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이스라엘에 있는 강물보다 좋지 않다는 말이냐? 강에서 씻으려면, 거기에서 씻으면 될 것 아닌가? 우리 나라의 강물에서는 씻기지 않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하고 불평하였다. 그렇게 불평을 하고 나서, 나아만은 발길을 돌이켜, 분을 참지 못하며 떠나갔다.
13 그러나 부하들이 그에게 가까이 와서 말하였다. "장군님, 그 예언자가 이보다 더한 일을 하라고 하였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다만 몸이나 씻으시라는데, 그러면 깨끗해진다는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14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이 시킨 대로, 요단 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었다. 그러자 그의 살결이 어린 아이의 살결처럼 새 살로 돌아와, 깨끗하게 나았다.
15 나아만과 그의 모든 수행원이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와, 엘리사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야 나는 온 세계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디, 예언자님의 종인 제가 드리는 이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는 메소포타미아 세계의 대표적인 도시로 4,000년 전부터 인류가 거주했다고 합니다. 다마스쿠스를 관통하는 바라다 강 유역의 구타 오아시스에는 더욱 오래전부터 인류가 정착했습니다. 바라다 강이 흘렀기 때문에 다마스쿠스가 역사적인 도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본문 12절에서 나아만 장군은 아마나강이나 바르발강이 이스라엘의 어떤 강보다 크다고 외치는데, 사람들은 두 강이 바라다 강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리스어로 크리소로아스, 즉 금강입니다. 시리아의 금강이라고 하니 좀 더 친숙한 느낌이 듭니다. 바라다 강의 내륙 하천을 따라 오아시스가 만들어졌고, 이곳을 에덴동산의 모델로 말할 정도이니 성스러운 강물처럼 느껴집니다. 생명수처럼 다마스쿠스에 흐르는 강물은 다마스쿠스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갠지스강이 인도인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인 것처럼, 다마스쿠스 사람들도 바라다 강을 신성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바라다 강을 둘러싸고 혼인이나 장례와 같은 예식뿐 아니라 종교 예식도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정화를 위한 예식을 강물에서 행했고, 마찬가지로 유대교인이나 기독교인도 정화의 의미를 담아 종교의식을 거행합니다. 그 때문에 바라다 강과 요단 강을 비교한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요단 강에 몸을 씻은 것은 훗날 요한이 요단에서 베푼 세례, 침례를 연상케 합니다.


나아만이 목욕을 통해 질병으로 상했던 피부가 새 살처럼 보드랍게 된 것은, 그에게 신생의 순간이었습니다. 어머니 양수에서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듯,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이 그를 감싸 안았습니다. 다시 소생되는 경험을 한 나아만은 경이로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서 배제되었던 외국인이자 전쟁과 폭력의 선봉에 서 있던 군인이 새로운 생명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에게 찾아와 요단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던 죄인, 외국인, 군인들이 생각나는 건 과장이 아닐 겁니다.


이따금씩 인생이 고되다는 생각이 들 때면 절망스러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아만처럼 생명력이 충만한 순간, 흘러넘치는 생기에 압도되는 경험입니다. 누군가는 오래전 경험했던 순간을 떠올릴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미래에 당도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추억을 곱씹기도 하고 미래를 꿈꾸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현재 흐르는 생명력을 묵상해야 합니다. 나치의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랑클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생기를 더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각자 살아가는 장소에서 살아있다는 느낌, 터질 듯한 생명을 경험하게 해달라고. 나아만이 요단강에서 새 생명을 얻었듯이, 하나님의 영이 우리 공동체와 개개인을 감싸 안아 생기를 회복시켜 주시도록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합시다. 나아만이 강물에 몸을 씻고 새로워졌던 것처럼, 오늘 저녁엔 따뜻한 물에 몸을 씻으며, 생그러운 생명력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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