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장, 새번역
2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3 물어 보게 하였다.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4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5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7 이들이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을 두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를 보려고 나갔더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다. 그는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다. 이 사람을 두고 성경에 기록하기를,
10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닦을 것이다' 하였다.
11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런데 하늘 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 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
스물두 살, 막 입대해 강원도 인제의 훈련소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갔고,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내가 알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의 찬 공기는 체온으로 데워진 실내 공기와 부딪혀 뽀얀 김을 만들었고, 나는 손바닥으로 차창을 문질러 가며 바깥을 내다보았습니다. 그곳은 너무도 낯설었고,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온 듯한 두려움이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낮에는 긴장 속에서 훈련을 받았고, 저녁이 되면 당직사관이 생활관에 들어와 편지가 도착했다며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름이 호명되는 훈련병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말없이 그 장면을 바라봤습니다. 그때만큼 간절히 편지를 기다린 적도, 내 이름이 불리기를 바란 적도 없었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그곳에서 편지는 내가 아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거의 유일한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 하루를 정신없이 흘려보냈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고 모든 활동이 멈추면, 피할 수 없던 질문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그 질문들은 어둡고 고요한 밤마다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세례자 요한에게도 비슷한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와 회개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는 결국 감옥에 갇혀 더 이상 사람들 앞에 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쁘게 사역할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공허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를 찾아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외쳤지만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고, 불의는 굳건해 보였습니다. 요한 역시 의심과 무력감 앞에 서 있었을 것입니다.
“오실 그 분이 당신이십니까?”
이 짧은 질문에는 요한의 흔들림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둠은 여전히 짙었고, 세상은 그의 외침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고 우리는 종종 희망을 잃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질문에 단정적으로 그렇다거나 아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고,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이사야서 35장에 기록된 하나님 나라의 풍경입니다. 거대한 소리나 눈부신 변화는 없습니다. 눈 먼 한 사람이 눈을 뜨는 일은 누군가에겐 미미해 보일지 모릅니다.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 하찮고 사소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새로 열리는 사건입니다. 한 사람이 다시 보게 되는 일은, 그에게 우주가 다시 태어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씨앗처럼 작게, 눈에 띄지 않게,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어둠을 밀어내며 자라납니다. 당장 세상이 달라지지 않아도,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 곁에 숨 쉬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을지 모릅니다. 다만 작고 느린 변화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자라고 있음을 믿으며, 그 곁에 머무는 게 필요합니다. 어둠이 깊어 보일수록, 빛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다가옵니다. 오늘 우리의 자리에서 그 빛을 기다리며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작은 변화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일에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