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 유혹에 대하여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느냐

by 후추

고대 인도유럽어에서 “기어가다”라는 어근으로부터 뱀을 의미하는 snake와 serpent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땅에 몸을 댄 채,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그 움직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뱀의 움직임은 다른 동물들과 다릅니다. 그것은 걷지도, 뛰지도 않습니다. 마치 땅 위를 헤엄치듯 나아갑니다. 그 모습은 신비롭고, 어딘가 경계를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땅 위에 있지만, 물속의 생명처럼 유영합니다. 뱀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 완전히 속한 존재라기보다, 경계 위에 머무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동양에서도 뱀은 완결된 존재가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수행하여 용이 되기를 기다리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용이 되지 못하고 이무기로 남습니다. 용과 이무기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뱀은 그 사이에 놓인 존재입니다. 완성도 실패도 아닌, 변형의 가능성 속에 머무는 존재입니다. 선도 악도 아닌, 그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입니다.


뱀은 탈피를 통해 자신의 몸을 벗어냅니다. 그것은 단순한 성장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행위처럼 보입니다. 탈피는 자기 동일성의 유지가 아니라, 자기 초월의 상징입니다. 뱀은 언제나 지금의 자신을 벗어날 가능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창세기에서 하와를 유혹하는 뱀 역시 그런 존재입니다. 뱀은 사람처럼 말합니다. 뱀은 의심합니다.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느냐?” 그 유혹은 선악나무의 열매를 먹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탈피의 제안입니다. 하나님에게 종속된 상태를 벗어나라는 제안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라는 속삭임입니다. “그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대개 그런 속삭임은 바깥에서 오지 않습니다. 유혹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그것은 신앙을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까지 의존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지 않느냐고 속삭입니다. 그것은 자유에 대한 제안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제안은,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유혹입니다.


그 목소리는 합리적이기 때문에 설득력 있습니다. 그것은 성장처럼 보이고, 성숙처럼 보이며,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보여줍니다.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했던 인간은, 결국 하나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됩니다. 에덴에서 누리던 풍족함 대신, 인간은 땀을 흘려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생존을 위해 분투하지 않았던 인간은 노동해야만 생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유혹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유혹과 욕망을 분별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깊이 돌아보지 못한 채 지나갑니다. 교회 전통은 1년 중에 사순절을 통해 어떤 때보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도록 권합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고, 욕망을 바로잡는 시간을 보내도록 말입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값진 한 달여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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