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크 레카(לך־לְךָ)

너 자신에게로 가라

by 후추
창세기 12장, 새번역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나이는 일흔다섯이었다.



랍비들은 땅과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아브람의 여정을 세 단계로 구분해 이해했다고 합니다.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번역되었는데, 이 표현이 단계적 여정을 잘 보여줍니다. 땅에서 친척, 아버지의 집으로 이어지는 순서는 점점 더 개인적인 영역으로 연결되는 과정입니다. 땅은 사회적 기반을, 친척은 관계망을 상징하며 아버지의 집은 자신의 근원과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사회적 기반과 사회적 관계망, 나아가 자신의 기원, 곧 정체성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렇게 흔들리는 토양 위에서 아브람은 비로소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너는 가라”라고 번역된 창세기 12장 1절의 히브리어 “레크 레카"를 직역하면 "너는 너 자신에게로 가라", "너를 위해 가라”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흔들리는 바람 속에서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털어내고 실존적 자아로 거듭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거듭남의 신비도 존재의 전환으로 읽는다면, 정체성의 변화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우리는 흔들리고, 때로는 죽어야 합니다. 익숙한 환경, 낯익은 사회, 안전한 아버지의 집을 떠나지 않고서는 발견할 수 없는 신비가 있습니다. 상실과 방황 없이는 정련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보편적 진리입니다. 떠남과 모험은 자기 본질을 깨닫는 인류의 보편적 서사 구조에 가깝습니다.


아브람의 이야기 직전, 창세기 11장에서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으며 자신들의 이름을 날리자고 모의합니다. 이 사건은 도시를 세우는 일이기도 한데, 살인자 가인이 도시를 짓고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 불렀던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 기사는 후손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는 근원적 욕망을 고발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사람들은 온 땅에 흩어지게 됩니다. 만일 아브람 역시 바벨 사람들처럼 스스로 이름을 세우려 했다면 같은 실패를 맞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아브람은 복의 근원이 됩니다. 도시에 정주하지 않고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나는 순간, 그는 이미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존재 자리와 소명을 찾습니다.


이처럼 역사 속 전환점에도 예기치 못한 표류가 있었습니다. 7세기경, 당나라와 교류하던 일본의 사신이 표류하여 탐라국에 당도했고, 이를 계기로 탐라의 왕자 아파기가 일본에 입조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회가 맞은 전환기가 무계획에서 시작되었듯,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도 예상치 못한 표류, 자신의 뜻과 계획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아브람이 도시 우르를 떠나면서 그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나 또한 설명하기 어려운 초월의 경험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부디 이러한 표류의 경험 속에서 나의 실존도 조금씩 다듬어지고 정련되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