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 <아파기 표류기: 물과 바람과 별의 길> 을 관람하며
누가복음 2장, 새번역
41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갔다.
42 예수가 열두 살이 되는 해에도, 그들은 절기 관습을 따라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43 그런데 그들이 절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의 부모는 이것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생각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 뒤에 비로소 그들의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그를 찾았으나,
45 찾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를 찾아냈는데, 그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하였다.
48 그 부모는 예수를 보고 놀라서,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였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49 예수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50 그러나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51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면서 지냈다. 예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지난 목요일, 제주도립미술관 관람을 했습니다. 미술관에서는 <아파기 표류기: 물과 바람과 별의 길>이라는 주제로 제주비엔날레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옛날에 일본 사신이 당나라로 항해하는 도중 표류하는 바람에 제주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당시 제주에는 탐라국 왕자 아파기가 살고 있었고, 그가 일본 사신을 따라 일본에 갔다는 이야기를 모티프로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은 표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의식한 순간 이전에 이미 우리는 태어나 있고, 태어나 있는 존재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삶의 본질이 무엇이고, 어떤 기획과 의도를 갖고 살아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마치 난파당해 표류하는 사람처럼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향해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때때로 자신의 소명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그 수가 매우 적습니다. 그야말로 운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사람들 다수는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서 바람과 조류에 휩쓸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로 헤매고 있습니다.
신의 계시를 받은 마리아와 요셉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더욱 잘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겠지만,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기 예수를 낳았고, 요셉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을 돌보았습니다. 아기 예수의 출생부터 양을 치던 목자들과 동방의 박사들, 헤롯 대왕에게 주목을 받은 까닭에 마리아와 요셉의 육아 부담은 상당했습니다. 고향 지역의 또래 아이들의 죽음과 엄마들의 울음을 목격한 이상,험난한 육아가 시작되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도심지 한복판에서 소년 예수를 잃어버리기까지 했습니다. 뒤늦게 일행 가운데 아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사흘 뒤에야 금쪽이를 찾게 된 일화는 아찔합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아이를 잃은 것과 비슷할 겁니다.
인류 역사상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육아한 부부는 그들 부부가 유일하지만, 그럼에도 그들도 아이를 잃고 헤맸습니다. 소명이 명확했던 그들조차도 때때로 인생을 표류하는 것 같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 삶의 본질, 내 삶의 이유를 몰라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네 나이가 몇 살인데, 뭐 되려고 그래?"라는 말이 무척이나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시기별로 대학 입학과 취업 등의 과업을 수행하느라, 삶의 본질은 묻지 못한 채로 표류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표류가 의미 없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예기치 않은 표류가 새로운 땅을 발견하게 하듯, 우리의 방황도 의미 있는 여정이 될 수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를 찾아 성전으로 돌아갔듯이, 우리도 때로는 우리의 근원이 되는 곳으로 돌아가 방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이 우리에게 성전과 같은 안식처가 되어줄 것입니다. 우리의 표류는 단순한 방황이 아닌, 자신을 발견해 가는 여정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