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다니 가정의 신앙 이야기
요한복음 12장, 새번역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셨다. 그 곳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에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곳이다.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마르다는 시중을 들고 있었고, 나사로는 식탁에서 예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 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4 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장차 예수를 넘겨줄 가룟 유다가 말하였다.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는 도둑이어서 돈자루를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것을 훔쳐내곤 하였기 때문이다.)
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8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의 집은 베다니 마을에 있었습니다. 베다니는 "가난한 자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이 가난한 마을에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 식사를 대접했다는 이야기는 예사스럽지 않습니다. 풍요로운 살림에 자선을 베푸는 것과 부족한 살림에 자선을 베푸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중산층 가정의 경제 수준에서는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당시 로마 도시인들의 절반 이상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경제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빈궁한 집에서 열린 이 잔치는 단순한 환대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비록 풍요로운 상황은 아니었을지 모르나, 예수님을 대접하기를 아까워하지 않은 그들의 신앙적 모습에는 깊은 감동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저는 요한복음의 일차 독자들인 초기 교회의 성도들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이야기를 서로 낭독하며 위로와 감동을 주고받지 않았을까요. 그 모습을 상상하면 뭉클한 마음이 듭니다. 주일마다 예수님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며, 서로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리아의 행동은 순간의 즉흥적 감정이 아닌, 깊은 사랑과 헌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인 남성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 정도였다고 하는데, 삼백 데나리온의 가치가 있는 향유로 예수님의 장사를 예언하는 마리아의 행동은 인상 깊습니다. 안식일 규정에 따라 예수님의 장례를 급하게 치를 수밖에 없었던 미래의 상황을 알 듯, 마리아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임 당하실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것만 같습니다. 실제로 며칠 뒤에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테니 더욱 그렇습니다. 이 가정에서 있었던 나사로의 부활 사건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일어날 부활에 대한 전조가 되기도 합니다.
매 주일,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예배합니다. 비록 각 가정의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기념하는 식탁에 참여하면 됩니다. 물질적 풍요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기억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우리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가난할지언정 고통을 함께 감내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풍요로운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