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그릇의 철학

탁발승의 역동적 영성

by 후추
누가복음 10장 1-11절

1 이 일이 있은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일흔[두] 사람을 세우셔서, 친히 가려고 하시는 모든 고을과 모든 곳으로 둘씩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4 전대도 자루도 신도 가지고 가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아라.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거기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내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너희는 한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거기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지 말아라.
8 어느 고을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에게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리고 거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10 그러나 어느 고을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든, 그 고을 거리로 나가서 말하기를,
11 '우리 발에 묻은 너희 고을의 먼지를 너희에게 떨어버린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라' 하여라.


누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운명하셔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10장에 이르러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재한 상황을 예행연습하듯 예수님의 사역을 대신할 일꾼이 됩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세계 곳곳에 70개 민족과 언어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창세기 10장에서 인류를 셈족, 함족, 야벳족이 분화하여 70개 민족으로 분포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 나라 복음이 일흔 명의 제자들에 의해 세상 곳곳에 전파되어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SW_CCITC_CCC_PCF131A-001.jpg Gabriele Castagnola, "The Mendicant Friar"


예수님은 일흔 명의 제자들에게 절대적 청빈을 강조한 탁발승들의 방식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면서 사람들의 호의와 선행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탁발이란 사람들에게서 음식을 빌어먹는 독특한 수행법 중 하나입니다. 수행자는 대접받은 음식을 통해 타인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교만을 버리게 됩니다. 교만은 타인이 베푼 호의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도움을 베풀지만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은 교만의 또 다른 모양새입니다. 타인에게 선행을 요청하는 방식이 탁발승들의 수행법이라는 것은 생각해볼 지점입니다. 자비를 베푸는 것만큼 조건 없이 자비와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건없는 은혜를 받을 줄 알아야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 수도 있습니다. 칠십 제자들의 전도 방법은 탁발수도회 운동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탁발수도사들은 타락한 교회에 절대적 청빈이 필요하다고 믿었고, 교회개혁의 일환으로 탁발수도회를 만들어 활동했습니다. 수도사들은 더 이상 수도원에 머물러 있지 않고, 거리 곳곳에 나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가르쳤습니다.


일흔 제자들이 전한 하나님 나라 복음은 세상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할 소식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정주되어 있지 않고,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운동과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조직체보다 운동체에 가깝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방식은 탁발 전도 방식이라는 데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성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음 전파는 소유와 권력을 내려놓고 타인의 선의에 의존하는 겸손한 자세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단순히 전도 방법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본질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받는 것과 주는 것이 순환하는 관계 속에서 복음은 살아있는 운동이 되어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갑니다. 70인 제자들이 보여준 이 모델은 오늘날에도 교회가 어떻게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고정된 조직이 아닌 움직이는 운동으로서, 겸손한 수용과 넉넉한 나눔이 어우러진 공동체로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