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는 기도, 스며드는 기도

의례적 종교, 일상적 종교

by 후추
신명기 30장, 새번역

9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당신들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당신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땅의 소출을 풍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쁜 마음으로 당신들의 조상이 잘 되게 하신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당신들도 잘 되게 하실 것입니다.
10 당신들이 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이 율법책에 기록된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런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1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내리는 이 명령은, 당신들이 실천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당신들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12 이 명령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당신들은 '누가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받아다가, 우리가 그것을 듣고 지키도록 말하여 주랴?' 할 것도 아닙니다.
13 또한 이 명령은 바다 건너에 있는 것도 아니니 '누가 바다를 건너가서 명령을 받아다가, 우리가 그것을 듣고 지키도록 말하여 주랴?' 할 것도 아닙니다.
14 그 명령은 당신들에게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당신들의 입에 있고 당신들의 마음에 있으니, 당신들이 그것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영혼의 순례길>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는 티베트 불교 성지 라싸와 성산 카일라스산으로 향하는 순례단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생 소를 잡는 일을 하느라 너무 많은 살생을 저질렀다는 도축업자, 집을 짓는 과정에서 고인이 된 인부를 추모하려는 사람, 죽기 전에 순례를 떠나고 싶다는 노인, 임산부를 포함해 11명이 순례를 떠납니다. 그들은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를 하며 2,500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순례합니다. 삼보일배는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한 수행법이며, 오체투지는 자신을 내려놓는 수행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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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 동안 이어지는 순례 여정 중에 여러 일들이 일어납니다. 누군가는 낙석에 다치기도 하고 트랙터는 고장 납니다. 어린 생명은 태어나고, 함께 순례에 나섰던 노인은 목숨을 잃습니다. 영화는 순례단의 여정을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고 있었습니다. 특정 종교를 떠나 인간이 지닌 숭고함에 대한 외경심이 들었습니다. 다른 종교를 갖고 있지만 순례단의 여정에 대해 쉬이 평가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보인 신실한 종교심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0여 년 전에 중국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중국 여행에서 장족이라고 불리는 티베트 민족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불교 경전이 든 원통인 마니차를 돌리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는데, 경통을 돌리는 행위가 불경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쉽게 휴대용 마니차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천주교인이 묵주 기도를 하듯 마니차를 돌리며 길을 걷고는 합니다. 티베트 불교도를 보며 의례화된 종교와 일상화된 종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종교는 의식적 측면과 일상적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시 기도와 찬송, 설교 등을 포함한 예배 예식이 있지만, 기독교 정신이 일상과 분리되어 있지 않은 채로 깊숙이 일상 속에 녹아 있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기독교인은 기독교 세계관, 가치관에 따라 일상을 영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명기 성서에 나오는 율법은 일상화된 종교 진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종교의 진리는 하늘 위에서 혹은 바다를 건너서 찾을 수 있는 금은보화가 아닙니다. 종교 진리는 우리 삶에 밀착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다하면 실천가능하다는 것이 신명기 기자의 가르침입니다. 제의적인 율법뿐만 아니라, 율법의 정신과 본질을 알고 일상적 실천에 관심을 기울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종교 진리가 갖고 있는 양면성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종교 진리는 체득될 뿐 아니라, 체화되어야 하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순례길에서 보여준 의례적 수행과 마니차를 돌리는 일상적 신앙 모두가 종교의 완전한 모습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가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종교 진리와 정신 속에 둘이 통합되어야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제 안에서 종교적 제의와 종교적 일상을 통합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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