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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심히 Feb 05. 2021

멜론 1면은 여전히 유효한가

스포티파이 시대의 떴다방에 대한 추억과 고찰

열 살 무렵의 일이다.


학교 앞에서 집까지 가는 길에는 하교 시간에 맞춰 이런저런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짝퉁 만화책이나, 달고나나, 병아리를 팔러 주섬주섬 나와 앉아계셨다. 꼬불쳐놓은 한정된 용돈으로 무엇을 살지 고민하는 즐거움이 꽤 쏠쏠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에 비해 영 국내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유유백서의 짝퉁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귀한 채널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코너는 단연 달고나였다. 동네에서는 뽑기라고 불렀는데, 50원에서 100원이면 플레이 가능한 높은 가격 접근성, 좁은 좌판 하나로도 세팅 가능한 공간 효율성, 즉각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쾌감까지. 아이폰은 고사하고 게임보이도 미래이던 시절 반마다 한 명은 있던 달고나 고수가 뜨는 날은 그들의 가지각색의 신묘한 파훼법을 즐겁게, 넋을 놓고 지켜보곤 했다.


판 깔기가 어렵지 않다 보니 하굣길에만 두세 개의 달고나 아저씨가 계셨는데,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아저씨는 역시 교문 앞의 아저씨였다. 일단 학교만 나오면 눈 앞에 바로 있으니, 당연한 일이랄까. 유독 교문 앞 아저씨는 달고나를 파훼할 때 다리를 딱딱거리며 떠시곤 했는데, 돌이켜보면 달고나를 파훼하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조급하게 하여 회전율을 높이려던 나름의 스킬이 아니셨을까 싶다. 물론 그런다고 장래희망으로 달고나 아저씨를 꿈꿀 만큼 순수한 동심은 못 되었지만, 대충 어림잡아 보아도 교문 아저씨의 수익은 다른 변두리 아저씨의 그것을 압도할 법했다. (유독 교문 달고나의 크기가 작다던가, 별 모양 틀을 살살 누른 것 같다는 기억은 지금 아저씨가 된 내 스스로의 왜곡된 기억일 것이라 생각해본다.)


나름 평온했던 하굣길 좌판 상권의 기억은, 어느 날 벌어진 달고나 아저씨 간 폭력 사태와 함께 막을 내렸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소위 명당이라 할 수 있는 교문 앞을 혼자 오랫동안 독점한 대가였으리라. 씨름선수 같은 분들과 함께 온 다른 달고나 아저씨는 횡단보도 건너 상가 주차장 앞에서 간간이 뵈던 분이셨다. 달달 떨던 다리를 절며 부서진 좌판과 함께 벽으로 밀리던 교문 달고나 아저씨의 피 묻은 굽은 등은 소란 이상의 꽤 충격적인 장면으로 어린 기억에 남았다. 경찰들이 오고, 사태를 진정시킨 뒤, 교문 앞 잡상인 금지 팻말과 함께 교문 앞 달고나의 추억은 그렇게 허무하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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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세 살 무렵의 일이다.


옆 자리 음악 유통팀에서는 자정 무렵이면 분주하게 전화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졸음을 이겨내며 팀원들이 주섬주섬 그 날 자정에 발매되는 음악들을 챙기곤 했었다. 컨설팅 실사를 나갔을 때도 대개 전투력은 자정 무렵부터 솟아났지만, 자발적으로 야행성을 택한 당시의 나와 달리 유통팀을 자정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대개 기획사 사장님들 및 멜론으로부터의 전화였다. 대개 기획사들은 멜론 1면, 그러니까 멜론 앱 최상단의 최신 앨범 3장 중에 한 자리에 자신의 음악을 넣기 위해 유통팀에 부단히도 다양하게 접근하곤 했고, 유통팀은 독일군의 암호를 전달해야 하는 폴란드 이중스파이마냥 혼이 나간 절절함으로 멜론에 전화를 걸고, 톡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음악방송 주간이 시작되기 전날 아이돌 기획사들의 치열한 자리싸움과 눈치싸움을 옆에서 엿볼 수 있는 귀한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 가장 의아했던 건, 멜론 1면에 대한 업계 모든 이들의 일종의 신앙과도 같은 열정이었다. 시장 점유율이 60%를 넘는 멜론이 주는 상징성, 정산에서 체감할 수 있는 금액의 차이, 눈치싸움 끝에 빈집털이에 성공했을 때의 짜릿한 쾌감까지. 그때도 하루에도 수십 많게는 백여 건 이상의 새로운 음악이 등록되곤 했는데, 단 세 자리를 놓고 멜론의 서비스사인 로엔(지금은 카카오M)의 주력 음악이 나오는 날 SM, YG, JYP가 갑자기 발매일을 바꾸려 들면, 그 앞뒤로 각 기획사들이 이 밤의 끝을 놓고 유통팀을 괴롭히는 소리를 전화기 넘어 듣는 것이 꽤 기묘하면서도 오싹한 일이었다. 웹사이트 1면이니, 평일 정오로 시간을 옮기느니 하는 옵션들도 있었지만, 감히 자정 1면의 그 임팩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은 그마저도 각종 OST에 밀리며 귀한 자리가 되었다)


경쟁은 치열한데 명당 자리는 매일 3곳뿐이었다 보니, 일단 좋은 날 좋은 자리를 받는 게 모든 기획사의 지상 과제였다. 차트 순위를 올리기 유리한 자정 시간을 선점하기 위한 그들의 열정은 많은 유통팀 및 서비스팀 인원들을 밤샘으로 몰았고, 자정 발매가 폐지된 이후에는 저녁 6시 발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신기한 건 이 미신 같은 방정식이 오랫동안 적절하게 작동했다는 것이다. 우선 1면 자리에 올린 뒤 음으로 양으로 최선을 다해 스트리밍을 독려해 차트에만 올리면 꽤 천천히 차트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스타트 포인트로서 1면 확보는 유능한 기획사의 척도이자, 유통사와 서비스사의 권력의 중량이었다. 당연히 그 권력의 정점에는 멜론을 서비스하는 로엔이 있었고, 그 권력은 '차트 순서대로 듣기'라는 순종적인 감상 태도를 지닌 소비자들에 의해 꽤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유독 멜론에서 새벽마다 특정 아이돌 그룹들이 줄을 세운다던가, 실시간 검색어가 이상하다던가, 3곳의 자리에 왜인지 로엔 유통/투자 음악이 많아 보였던 것은 9년 여를 치이다 업계를 떠나 투자쟁이가 된 내 스스로의 편협한 기억일 것이라 생각해본다.)


사재기 논란을 일으킨 몇몇 음악의 등장과, 특정 아이돌 그룹 팬들의 줄 세우기와 스트리밍 품앗이를 통해 차트가 점점 단단해질 무렵, 멜론은 실시간 차트를 없애고24Hits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알고리즘의 차트로 대체하고 앱 첫 페이지에서 뒤로 보내는 등 점진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서비스 업체 간 경쟁이 격화되고, 멜론의 영원한 우군(이자 통신사의 편안한 소비자를 끌어와주던) SKT가 플로를 론칭하며 대립각을 세운 뒤 비로소 벌어진 일이다. 격화된 경쟁의 여파일까. 멜론은 여전히 시장 1위지만, 60%라는 아름다운 점유율을 차지하던 그때와 비교해서는 꽤 복작거리는 시장이 되었다. (물론 멜론이 무언가를 엄청 못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그 사이 소리바다는 망했고, 벅스는 지지부진해 보이고, 바이브를 보면서도 네이버뮤직은 그립고, 지니는 예전 모습 그대로인 게 멜론에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고 그렇기 때문에...)


나름 그런가 싶었던 멜론 1면의 기억은, 그러나 아직 추억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멜론은 1면에 걸리는 음악의 숫자를 6개로 늘렸는데, 좌상단 2개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2/5 정도가 애매하게 보이는 부끄럼쟁이의 게재 방식이었다. 분명 6개로 늘었는데 2개로 줄어든 것 같은, 마법 같은 레이아웃이랄까. 저 두 자리를 놓고 벌어질 치열한 몇 주 전부터의 눈치싸움과, 그나마 수줍은 네 자리라도 차지하려는 분들의 또 다른 리그, 기획사들을 설득하고 읍소하며 오늘도 멜론에 전화를 걸 유통사 팀장님들의 떨리는 손이 마치 그림처럼 그려졌다. 그 위를 대체한 것은 소위 '내가 좋아할 음악'이라고 하는 것들인데, 골라주는 위 페이지는 며칠 전 들었던 가수의 음악 리스트 정도였다. (굳이 이걸 스포티파이에 비교할 생각은 없지만, 별생각 없이 차트 순위대로 음악을 한 번 재생하고 나니 소위 감성 음악들만 한 주 내내 추천해줘서 수령님께 세뇌당하는 음식점 종업원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려니 하며 며칠 정도를 사용하다 오늘, '당신이 찾던 그 노래'라는 기묘한 배너가 최신 음악을 다시 아래로 내린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세상에. 이제는 앨범 자켓을 만들 때 모든 정보를 좌상단으로 몰아서 쓰지 않으면 새로 나온 음악을 제대로 알릴 수조차 없게 되었구나. 열 살 때 교문 앞 달고나 아저씨가 20년 간 교문 앞을 지배하고 있으면 달고나로 학생들을 정신지배해 피리 불던 사나이처럼 모두를 절벽 너머 강가로 보내버릴지도 모른다. 농담 같지만, 공중그늘의 새 싱글이 나온 것도 일주일 지나서야 간신히 찾아서 알게 되는 지금의 멜론이, 과연 서비스 업체로서 고객들에게 주고 있는 가치는 무엇일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애플뮤직이 한 때 그렇게 되어주기를 바랬고) 지금도 스포티파이가 교문 앞 독점에 균열을 내어줄 수 있는 건달 역할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삐딱한 마음속 계기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오늘 멜론 앱 1면을 보니 그게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선명해졌다.  


흡사 잡상인의 좌판대 위에서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달고나와도 같은 한국의 뮤지션들은, 오늘도 꽤 서글픈 존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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