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 초고령산모의 출산

D-day

by 태지인

5월 21일, 드디어 디데이가 정해졌다.


제왕절개 수술 날자가 잡히자, 맘이 웅장해졌다. 이전 두 번의 자연분만 경험만 있던 나는 언제 애가 나오는지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맘이 한결 편안해졌다

2010년대 초반 첫 출산 당시만 해도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의 비율이 7:3이었으나,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정확히 반대가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세를 따른다. 그것이 가장 많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고, 불안도를 가장 낮추는 방법이다. 그렇다고 해도 하필 내가. 82년생 김지영보다 한 살 더 많은 내가, 굳이 노산이라는 대세를 따를 줄이야.


천만 다행히도 출산 직전까지 역아나, 양수부족 같은 특별한 이슈는 없었다. 오직 내 나이를 빼고서는. 단지 내가, 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전처럼 언제 양수가 터질지, 언제 아이가 내려올지, 언제 가진통에서 진진통으로 바뀔지, 온갖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자연분만을 잘 해낼 자신이 도통 없었다. 간혹 첫째 둘째를 모두 자연분만으로 낳고 이번엔 제왕절개를 한다니까 '너무, 아까우시겠어요'라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뭐가, 어디가 아깝다는 것일까. 자연분만의 장점이야 아이가 산도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유익균샤워를 통해 아기면역력에 좋다고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질에게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할까. 십 년 만에 애기가 또 내려온다고? 미쳤어?


수술 날자가 잡히고 맘 편해진 것도 잠시, 다시 불안이 몰려온다. 혹시라도 그전에 자궁이 열리고, 진통에 걸려 자연분만하게 되는 우주 대참사가 일어날까 매사가 조심스러운 와중에도, 5년 차 소상공인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해야 했기 때문이다. 냉정한 자영업의 세계는 초고령 산모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보통 임신 중반 이후 나타나는 '환도 선다'는 증상이 임신초기부터 있었는데, 골반이 늘어나며 좌골신경이 압박돼서 나타나는 엉덩이통증으로, 어떤 새끼가 하루 종일 계속 내 꼬리뼈를 걷어차는 느낌이다. 아파서 앉기도 걷기도 힘든 그런 상태로 카페손님들을 응대해야했고, 하나도 힘들지 않은 척하느라 너무나 힘들었다. 이로 인해 수시로 자궁경부가 급격히 짧아지는 건 아닌지, 양수가 새지는 않는지, 이러다 길바닥에서 애가 나오는 건 아닌지 너무나 불안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출산이 임박할수록 점점 비대해진 자궁이 장기들을 압박하니 이러다가 애 낳기 전에 호흡곤란으로 먼저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숨쉬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아무리 힘들어도, 애가 뱃속에 있을 때, 가장 편하다는 것을.


수술 당일, 중딩과 초딩을 차례로 학교에 보내고, 집안정리를 하고, 가볍게 샤워를 마친 후 미리 싸둔 캐리어를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시간에 맞춰 분만실에 도착해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코로나 검사를 받고,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제모를 하고, 항생제테스트를 하고, 소변줄을 꽂고 대기했다. 초산 때 갑자기 자궁이 4센티가 열려서 남편에게 살려달라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한밤중에 분만실에 도착했던 걸 생각하면, 출산이 이렇게 케쥬얼 할 수가 있나. 모든 게 예상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이, 기분이 이리 산뜻할 수가 없다.


따끔따끔하다. 따끔따끔한


세 번째 출산이지만 제왕절개는 처음이라 유튜브를 통해 수없이 시뮬레이션해 보았기에 만점 맞을 자신 있는 수험생처럼 자신 있게 수술대위에 올라갔다. 하지만 수술 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하반신마취가 제대로 된 건 맞는데, 서서히 겨드랑이가 서늘해지더니 팔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내 조선시대 역모를 꾀한 죄인이 능지처참당하는 형벌마냥 팔 양쪽에서 각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것처럼 팔때기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울면서 팔이 너무 아프다고 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애기 나오는데 울면 안 되다고 하셨다. 더 크게 울었다. 그랬더니 마취과선생님이 겨드랑이를 주물러주셨다. 그렇게 팔이 아파서 엉엉 울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 목청 큰 아기가 울면서 내 옆에 눕혀졌다. 애기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생각보다 기쁨과 환희의 순간은 아니었다. 난 제왕절개 수술중 팔이 갑자기 떨어져 나갈 듯 너무 아파 당황했고, 아가는 아직 때가 아닌데 세상에 나온 것 마냥 서로 당황한 채 불편하게 우리는 처음 만났다. 그리고 이내 신생아실로 병실로 각자 담백하게 헤어졌다.


서로 다소 불만이 있어 보인다

수술 후, 그 악명 높은 제왕절개 후불제 고통이야 익히 들어 각오하고 있었다. 자연분만이 ‘나는 그저 한낱 짐승일 뿐이구나’ 하는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고통이라면, 제왕절개의 고통은 그래도 인간적인 고통이라 느껴졌다. 하지만 자연분만 후, 바로 일어나서 병실로 걸어 들어가 미역국을 원샷 때렸던 것과 비교하면 제왕절개의 회복속도는 날 정말 우울하게 했다. 각종 진통제와 약으로도 해결 안 되는 기분 나쁘게 짜증스러운 복부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노산이라 더 아픈 건가 회복이 더디나 싶어 괜히 더 서러웠다. 하지만 병실에는 내내 나 혼자였다. 남편은 몸만 컸지 14살짜리 아기와 11살짜리 아기에 멍멍이까지 건사하느라 대통령보다 더 바빴다.

드디어 소변줄을 빼고 수술 후 처음으로 침대에서 일어나는 그 순간, 흔히들 장기가 쏟아져 내릴 것 같다는 그 순간, 너무나 외로웠지만 외롭지 않았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충분히 지금 혼자 있어 두어야 한다는 것을. 곧 아무도 없는 행성으로 혼자 떠나고 싶어질 때가 온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직도 다소 불만이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