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모와 완분사이

D+7

by 태지인

예정일이 한참 지나도록 생리가 시작되지 않자, 폐경 전 몇 년 동안은 생리주기도 엉망징창이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 이렇게 폐경에 한발 들여놓는 건가?’ 싶던 찰나, 순간, 설마설마하면서도 설마...!! 했던 것은 첫째와 둘째 두 번의 완모를 통해 얻은 몸의 기억 같은 것인데, 아기에게 수유해야 될 시간이 되면, 가슴에 젖이 돌기 시작하는 그 느낌! ‘지잉’하는 바로 그 느낌을 느꼈기 때문이다. 소름이 확 돋았다.

애써 그 느낌을 무시했지만, 무시하면 무시할수록 점점 무시할 수 없는 그 무시무시한 느낌에 결국 임신테스트기를 샀고, 결과는 보다시피 이렇게 신생아실 앞 유리벽을 너머에서 내 이름 카드를 흔들며 인생 세 번째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


안녕하세요 물만두에요


지금은 중학생인 첫째와 같은 여성병원에서 13년 만에 아이를 출산했다. 13년 전, 신생아로 가득했던 그 신생아실에 아가가 단 셋 뿐인걸 보고 너무 놀랐다. ‘지금은 절대 아이가 바뀔 일은 단연코 없겠군’

세상에 말로만 듣던 '체험 저출산의 현장'. 태어나자마자 아가가 혹시 외롭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 넓은 신생아실이 황량했다.


모유수유실도 마찬가지였다. 산모는 나 혼자뿐이었다. 유축기도, 도넛방속도, 수유쿠션도 그대로인데, 모유수유실 의자에 일열종대로 앉아서 다 같이 한쪽 가슴을 드러낸 채 신생아를 안고 쩔쩔매던 초보엄마들, 그 수많은 산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때는 그게 참 싫었다. 까라면 까야했던 것도 싫었고, 이 사람 저 사람이 가슴마사지 하는 것도 싫었고, 아가가 젖 빠는 게 익숙하지 않아 잘 물지 못하고, 유두가 뜯기고, 피나고, 오로지 아가가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아이의 것.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내 가슴. 난 누군인가, 젖소인가. 또 여긴 어딘가?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 집에 돌아가니 모유수유가 점점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아가도 엄마도 모든 게 처음이라 시간이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그렇게 첫째는 1년을, 둘째는 반년을 완모 했다. 그리고 만성 목디스크, 굽은 등을 얻었다.

다시 또 완모를? 이미 피와 뼈를 갈아 셋째를 출산하면서 10센티는 줄어든 느낌이다. 가뜩이나 난 단신인데 여기서 더 작아질 키가 없다. 절레절레 고개가 저어진다.


셋째도 아니나 다를까, 젖꼭지를 잘 물지 못해서 신생아실 선생님이 유두보호기를 이용해 보자고 하신다. 십 년 만에 출산하고 나니 신문물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세상에, 유두보호기라니! 아니 요즘은 그럼 젖꼭지가 뜯기고 피 보면서 수유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셋째는 어지간히 고집불통이었다. 유두보호기를 사용해도 젖꼭지를 잘 물지 못하더니 이내 거부하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초유를 유축해서 먹였다. 예전에는 모유수유 못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도 달라졌다. 마흔다섯, 초고령산모는 세 번째 출산만으로도 이미 늙고 지쳤다.

게다가 세 번째 모유수유는 내 가슴 입장에서도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수천번을 커졌다 작아졌다 하더니 결국 마이너스 A컵이 되었다. 가슴입장에서 얼마나 열받을까? 미쳤어? 여기서 더 작아지려고?

조리원에서 단유하고 나왔다는 게 남의 얘기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점점 내 얘기가 될 것 같다.


지독하리만치 인체는 신비롭다. 이제 곧 젖몸살이 올 테니 맘 단디 먹으라는 경고가 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또 아플까. 얼마나 아픈지 알아서 너어무 불안했다. 제왕절개한 지 일주일이 지났고, 이제 조금, 아주 조오금 괜찮아지려는 참이었다. 제왕절개는 수술이 잘못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수술은 정말 잘 됐음!) 답답하리만치 회복속도가 늦었다. 차라리 선불제 자연분만이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리원에 올라가 이제 좀 살 것 같다 싶은 순간, 본격적인 젖몸살이 시작됐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았다. 완전한 이별을 위한 질척거림 같은 것이라 생각됐다. 이제 진짜 안녕이다. 사그라들기 전 가장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온몸에 열이 오르고 가슴이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목이 말라도 물을 벌컥벌컥 마실 수 없었다. 젖을 마르게 하려고, 수분을 줄이게 하기 위해서 미역국도 안 먹었다. 가슴과 겨드랑이에 얼음팩을을 갖다 대면 바로 녹아버렸다. 그렇게 불타오르는 불면의 밤을 며칠 보내고 나니 나오는 모유 양이 점점 줄어들었고 그렇게 완분의 길로 무사히 들어섰다.


젖몸살에서 해방되자, 몸이 날아갈 것 같았지만, 몸무게는 그대로였다. 원래 출산하면 딱 아기 몸무게만 빠지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왕절개는 애 몸무게조차 빠지지 않아서 깜짝 놀랐다. 진짜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하네. 제왕절개의 지독함에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나는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돌아간다는 것을. 산모가 아닌 원래의 나 자신으로, 나의 몸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그 속도가 너무 느려 답답할 뿐이지.

허나,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여전히 맘은 불안한 초고령 산모는, 조리원 체중계에서 너무 놀라 차마 내려오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발만 동동거리는 자신을 다독이며, 더욱더 열심히 반신욕기를 하면서 그 긴긴, 답답하지만 나가긴 싫고, 지긋지긋한 천국 같은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조리원 생활에 그 어느 때보다 충실했다.


자면 깨우고 싶고, 깨면 재우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