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궁 속의 하리보

D-274

by 태지인

두둥!!!

분명히 없었는데, 분명히 있었다!




산부인과에 오기 2주 전, 건강검진에서 자궁경부암 초음파검사를 할 당시, 자궁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6주라고 한다. 심장소리가 우렁찼다. 도대체 그 사이에 자궁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84제곱미터, 초품아 역세권 아파트에서 아들 하나 딸 하나의 4인가족, 거기다 강아지 한 마리까지. 가장 이상적이라 믿었던 가족의 형태로, 내가 꿈꿨던 그 모습대로 오손도손 살아가며 무탈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적당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도 힘든 세상. 그 평범함을 지키기 위해서 부단히 살아왔다. 그런데 그렇게 공고히 쌓아온 그 세상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의 임신은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나쁜 짓을 한 것이 아닌데, 나쁜 짓을 한 것처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몇 주인지는 알아야겠어서 산부인과에 왔다. 진료실이 들썩거리도록 호들갑을 떨며 막둥이 임신을 축하한다는 의사에게 아직 맘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니 태아등록은 하지 말아 달라고 매몰차게 말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엉엉 울었다.


슬픔의 눈물인지, 분노의 눈물인지 계속 눈물이 났다. 러닝을 하면서도 눈물이 났고, 개똥을 치우면서도 눈물이 났다. 세상이 날 속이고 있나.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어느덧 마흔의 중반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 아이들도 특별히 손이 많이 가지 않을 만큼 어느 정도 큰 데다 또래친구들과의 관계에 여념이 없는지라, 내 시간이 점점 더 많아졌다. 이제 좀 편해지는구나 싶었다. 코로나 때 개업해 고군분투하던 카페도 잘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몸도 맘도 여유가 생기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이런 때도 오는구나 하던 순간이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그 순간이 문제였다. 몸도 맘도 편해진 게 문제였다. 그 순간을 비집고 새 생명이 들어왔다. 불청객이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편은 온전히 너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래놓고는 주변모든 지인들에게 임신사실을 알려 세째탄생, 늦둥이 임신 온갖 축하를 다 받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난 아무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이미 수술을 위한 병원은 다 알아본 상태였다.


그러한 나의 맘이, 큰 스트레스가 되어 영향을 미친 탓인지 출혈이 보이기 시작했다. 난 이전 두 번의 계류유산을 겪었는데, 출혈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나쁜 소식도 아니었다. 어쩌면 자연스럽게 내 몸에 잠시 머물렀다 떠날 수도 있겠구나


-자궁근종이 많이 커지면서, 태반착상 부위에 위치하면서 일어나는 출혈이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만 있으세요.

-선생님, 아기는요?

-아기는 특별한 문제없이 잘 자라고 있으니까, 엄마는 가급적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만 있으세요.


아기는 자궁근종과 싸워가며 어느덧 하리보 정도의 크기로 자라 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나만 잘하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가만히 누워만 있으라는 말도안되는 임무를 받고 산부인과를 나섰다.


그리고 나도, 비로소 임신을 알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여기저기 축하를 받았지만, 나를 아는 모든 여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첫 번째는 충격, 그리고 이어지는 안타까움. 다들 나를 가여워했다. 아마 입장 바꿔서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가만히 누워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누워있을 생각은 절대 없었지만, 제발 가만히 누워있고 싶을 만큼 그 무렵 카페는 유달리 바빴다. 이상하게 바빴다. 자궁 속에 하리보 생각이 났다. 마치 아이가 손님을 몰고 온 것같은 느낌이 든다. 불청객이 아니라 돈을 벌어다 주는 복덩어리였던 건가. 그렇게 조금씩 초고령임산부라는 현실에 적응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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