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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코코 Aug 14. 2024

여름은 냉면이지

  나에게 여름의 음식은 물냉면이다. 최근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늘어났지만, 내게 냉면은 여전히 달콤하고 짭조름한 함흥냉면뿐이다. 그 중에서도 비빔냉면보다는 살얼음이 살짝 들어간 물냉면이 내가 여름을 가장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음식 중 하나다.




  나이를 먹은 만큼 다양한 냉면집을 찾아봤지만 아직도 내게 ‘냉면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어릴 때 즐겨 찾았던 단골가게이다. 압구정에 있는 빨간 간판의 함흥냉면집. 어느순간부터 맛이 변해서 가지 않았지만, 워낙 자주 찾았었고 갈 때마다 즐거운 기억이 많았었기 때문에 아직도 냉면집하면 내 머리 속엔 그 집이 떠오른다. 내 안에서 냉면집의 이데아(?)가 되었다.



  냉면집의 풍경은, 글쎄 왁자지껄하고 정신이 없다. 물냉 비냉 하나요 하고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 정신없이 먹고 우르르 자리를 뜨는 사람들의 모습, 분주하게 움직이며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 냉면집은 대체로 회전율이 높다보니 우아하고 차분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원래 냉면집은 으레 그런것이라는 걸 알고 방문하는 것이니 우리도 다닥다닥 붙은 좌석들 속 빈 자리를 찾아 몸을 구겨 앉는다.



  자리에 앉자마자 서빙되는 양푼 주전자 속 따뜻하고 짭쪼름한 육수는, 냉면을 먹기 전에 꼭 마셔줘야 할 냉면집의 애피타이저이다. 메인 요리 전에 육수를 마시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몸 속으로 차가운 음식이 들어가기 전에 속을 미리 달래주는 것일까? 아니면 차가운 음식을 더 차갑고 맛있게 먹기 위한 준비운동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굶주린 손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빠르게 육수를 홀짝홀짝 다 마시곤 한다.



  드디어 메인 요리가 나온다. 살얼음이 동동 낀 물냉면. 면 위에는 납작한 고기와 삶은 계란 반조각, 채썬 오이, 채썬 배, 양념 소스등이 올라가있다. 오이향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냉면에 있는 오이를 싫어하는 나는 오이만 슬쩍 들어 올려 반찬 그릇에 덜어둔다. 그리고 나머지 음식들을 가위로 정확히 열 십자로 자른 뒤 젓가락으로 고명과 양념이 훌훌 풀어지게 한다. 식초도 한 두방울만 살짝 뿌려준다. 이제 먹을 준비가 다 끝났다.



  냉면 한 젓가락을 들어 올려 후루룩하고 먹어준다. 급하게 먹으면 냉면 국물이 똑똑하고 턱 아래로 흐르기도한다. 흐르는 국물을 닦으며 면을 입으로 넣어주고, 중간중간 냉면 그릇을 들어 냉면 국물도 마셔준다. 차가운 걸 갑자기 많이 마셔서 내 위장이 놀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는 급하게 따뜻한 육수를 입에 넣는다. 그러면 차가운 것과 따뜻한 것이 융화가 되는 느낌, 편안한 기분이 든다. 한참 면을 먹고 난 뒤 엔 계란 고명과 고기 고명도 먹어주며 면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도 채워준다.



  후다닥 냉면 한 그릇을 비우고 다음 손님을 위해 자리를 피해준다. 냉면집을 나오자마자 뜨거운 여름의 햇볕과 습기를 마주한다. 아까와 같은 더위지만 그래도 차가운 냉면을 듬뿍 먹고 나와서인지 불쾌감이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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