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거리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전봇대가 없다.
따라서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에 길게 늘어진 전선이나 전봇대를 통해 각각의 건물로 이어지는 거미줄 같은 전깃줄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다. 또한 도시의 미관이 전깃줄로 인해 망가지지 않는다.
그러면 스페인의 전봇대들과 전깃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스페인 도시의 각가정에 전기를 공급해주는 전선은 모두 땅속에 매설되어 있다.
예술가의 나라인 스페인은 전봇대와 전깃줄이 도시 미관을 해칠 것을 고려하여 땅속에 파묻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신도시들도 건물을 짓기 전 전선이나 가스 및 상하수도관과 난방배관 등 주거시설에 필요한 근간이 되는 시설물을 모두 땅속에 매설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신도시에도 전봇대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즉 신도시를 설계할 때 도시경관 및 안전을 고려하여 전선 등의 기본 시설물을 지중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구도시의 전선을 지중화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그래서 신도시와 달리 구시가지에선 여전히 전봇대와 가로수 사이로 늘어선 전깃줄을 볼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1960년대 말에서 70 년대초까지 제비들과 참새들이 전봇대 사이로 늘어진 전깃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당시 검은 칠이 되어 있던 나무 전봇대는 술래잡기의 술래가 눈을 가리고 서 있는 놀이의 구심점이 되는 장소였다.
그 전봇대에는 각종 광고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전봇대는 견공들의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기점이기도 했다.
또한 취객들이 노상 방뇨하기에 좋은 가림막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나의 기억 속에 있던 나무 전봇대는 비바람에 칠이 벗겨지고 밑동이 썩기도 했지만 고풍스러운 멋이 있는 거리의 소품이기도 했다.
그런 나무 전신주는 차츰 시멘트로 만들어진 원형의 전봇대로 바뀌었다.
그리고 오늘날 신도시에선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태풍의 영향을 덜 받는 동남아 일부 국가에선 네모난 전신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바람의 저항을 덜 받는 원형의 전신주보다 설치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네모 전신주는 우리나라와 다른 이색적인 풍경이라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 잡기도 했다.
내가 살았던 스페인은 대도시뿐 아니라 작은 시골마을과 수백 년 전에 지어진 구시가지에도 전기를 공급하는 전선은 모두 땅속에 매설되어 있다.
땅속에 전선을 매설하는 것은 지상에 전봇대를 설치하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을 비롯한 남부 유럽과 중부 유럽 국가들은 도시 및 자연의 경관을 해치지 않으며 감전 등의 각종 전기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전선의 지중화를 택했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전봇대가 보이지 않는다.
중남부 유럽 국가들은 비용이 더 들더라도 길게 멀리 보는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했다.
물론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바로 보이지 않는 이면의 안전이나 경관까지 고려하는 혜안을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신중하게 정책을 결정하는 태도는 본받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