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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네모 May 20. 2023

혼돈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기

[북리뷰]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줄거리 포함

*스포일러 주의


 우주란 얼마나 넓고도 광활한가.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먼지보다 못한 존재다. 그 냉정한 진실을 떠올릴 때면 슬며시 고개를 드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이 넓고 차가운 우주에서 우리가 그토록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면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차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거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어떤 가치가 있나. 모두 한 번쯤은 품어봤을 의문이다.


 애초에 명쾌한 답이 나올 수 없는 이 물음에 우리는 나름대로 의미를 찾으며 살아간다. 종교가 있는 이들은 으레 신에게서 그 답을 찾는다. 신이 뜻이 있어 우리를 창조했으며 신의 섭리에 따라 사는 것이 곧 가치 있는 삶이라고. 나를 보살피는 전능한 존재가 있어 삶에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것은 분명 안온한 감각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믿음에 기댈 수 없는 자들도 있다. 과학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룰루 밀러가 그렇다.


 책의 저자, 룰루 밀러가 존재에 대한 의문을 처음 마주하게 된 것은 아버지와 습지로 휴가를 갔던 때다. 그는 광활한 습지를 바라보던 중 아버지에게 문득 묻는다.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그러자 과학자였던 아버지는 빙긋 웃으며 "의미는 없어!"라고 말한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어린 딸에게 들려주기엔 조금 가혹한 대답이지 싶다. 아마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라는 뜻에서 한 말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는 진리는 아버지에게는 자기 삶에 충실하면서도 자유로움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을 주었지만, 딸 밀러에게는 발이 허공에 뜬 듯한 공허함과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알 수 없지만 이후 밀러는 오래도록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 차가운 세계관(의미도 신도 내세도 운명도 계획도 없는, 혼돈만이 모든 걸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자신을 붙잡아줄 의미를 찾고자 몸부림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진리를 갈구하는 처절한 여정이다.

 

 밀러가 해답을 찾기 위해 몰두한 것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의 생애다. 그는 이 세상의 필연적인 혼돈(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엔트로피는 증가하기만 한다)과 대비되는, 질서를 추구하는 분류학자다. 수많은 강과 바다를 누비며 수많은 물고기들을 잡아 이름을 부여하고, 분류하고, 정의하는 그의 세상은 무척이나 명확하고 질서정연해보인다. 다만 이 질서는 조금 폭력적이다. 이는 그의 일생 후반부에 이를수록 심화되는데 '생명의 사다리'로 설명되는 위계질서가 그걸 보여준다. 생명의 사다리 높은 곳에 있는 생물은 우수하며 아래에 있는 생물은 열등하다. 단순명료하여 받아들이기는 편리하지만 너무 큰 비약이 느껴지는 논리다.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했던 다윈의 말에 위배된다. 그러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이 논리를 발전시켜 후에 우생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수많은 '부적합자'들을 강제로 불임화하는 미국 역사의 어두운 부분에 톡톡히 기여하기에 이른다.


 밀러는 그의 행보에 충격과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구축해낸 질서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하자면 혼돈에 맞서 기형적인 질서를 쌓아올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와 이를 추적하고 탐구하는 밀러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담 그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되는가. 그 대답은 다시 제목으로 연결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 그러니까 어류란 것은 실제로 타당한 생물 범주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미 1980년대에 분류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졌다고 한다. 말하자면 '물고기'란 산에 살고 털이 있는 동물들을 한데 묶어 '산고기'라 부르며 부엉이, 사슴, 멧돼지, 송충이를 하나로 묶는 것이나 다름 없이 무의미한 범주라는 것이다. 우리가 물에 살고 지느러미가 있는 겉모습을 이유로 물고기라 불렀던 생물들 중 다수는 사실 해부학적으로 접근했을 때 자기들끼리의 공통점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포유류와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평생을 바쳐 이룩한 질서는 사실 무의미한 것인 셈이다. 밀러는 이 사실로부터 그토록 헤매던 해답을 얻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뿐만 아니라 인간들은 모두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선을 그어 구분짓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생후 몇 개월이 지나면 아기도 강아지와 고양이를 구분할 줄 알게 된다고 하니 그것은 아마 생물의 본능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가상의 선을 지우고, 내가 믿고 싶은 직관의 스위치를 잠시 끄고 보면 진실로 펼쳐진 세상은 어떠한가. 자연에는 어떠한 구분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밀러에게 다시금 끝없는 혼돈을 뜻했을 것이다. 다시 원점인 셈이다. 밀러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고기란 것이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낯선 소식을 전한다. 마치 별이 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있는 지구가 도는 것이라는 사실이 처음 세상에 혼란을 주었을 때처럼 그건 인간의 직관에 반하는 발견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반응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인정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인정하고 누군가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것은 혼돈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일 것이다. '모든 것에 아무 의미도 없다'는 메세지가 밀러의 아버지와 밀러에게 다르게 작용했듯이.


 밀러는 비로소 혼돈을 받아들임으로써 삶에 정착한다. 사랑했던 곱슬머리 남자가 떠났음을 받아들이고 해변가에서 (동성인) 여성에게 키스했던 자신을 받아들인다. 지금의 아내와 만나며 자신의 삶의 형태를 받아들인다. 이름 붙인다는 것은 곧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편리함을 주지만 동시에 본질과는 멀어지게 된다. 동성애, 양성애라는 이름을 붙여 선을 긋지 않으면 사랑은 오직 사랑 그 자체다. 정의하지 않으면 밀러는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비로소 밀러도 무의미와 혼돈에서 자유를 찾는다. 물고기가 없어짐으로써, 자신을 가두는 가상의 질서를 벗어던짐으로써, 비로소 혼돈 속을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삶에 대해 누구나 가져봤을 본질적인 의문에 대한 열린 답이다. 삶의 이유에 대해 논하는 여러 담론을 접했지만 그중에서도 법륜 스님의 말씀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법륜 스님은 삶은 이미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왜 사냐'는 질문은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이유가 없어도 나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왜 존재하냐는 의문을 자꾸 던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며 애초에 잘못된 질문이라는 것이다. 즉, '어떻게 살까'가 생산적인 고찰이겠다. 삶의 이유에 대해 가장 와닿는 설명이었다. 실존주의라고 하면 옳을까.


 삶의 이유는 산 자로서는 영원히 답을 얻어낼 수 없는 문제다. 그러니 삶의 이유에 대해 고뇌하는 것은 차라리 허무주의를 불러오는 의식에 가깝다.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보다는 일찍이 법륜 스님의 말씀을 찾아보았더라면 방황이 짧았을까?


 물론 룰루 밀러의 방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삶에 이유를 찾는 것은 무용하다고들 해도 인간은 때로 한없이 나약해지는 순간이 온다. 누구나 그런 순간을 맞닥뜨린다. 그런 때엔 움켜잡을 동앗줄이 필요하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가족이고 누군가에게는 종교이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이겠다. 밀러는 그중에서도 과학에서 단단한 동앗줄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덕분에 비종교인 무신론자의 성경이 이렇게 만들어졌으니 독자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한편으로 책을 덮은 뒤에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악당을 찾는다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아니라 밀러의 아버지가 아닐까? 돌이켜보면 밀러의 모든 방황은 습지에서 들은 아버지의 대답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다시 습지 장면을 펼쳐보니 밀러의 아버지는 분명히 이렇게도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


 허무주의에 빠져 삶에 소홀하지 말라, 는 의미로 읽힌다. 아버지는 혼돈을 삶속에 조화롭게 받아들여 살아가는 법을 이미 터득했고 그것을 나름대로 밀러에게 전했던 것 같다. 다만 본인과 다르게 밀러가 매우 섬세한 사람이며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렸다는 점이 아버지가 놓친 점이겠다.


 많은 이야깃거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책이다. 종교나 다른 외부의 말에 기대지 않고 직접 과학과 자연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다. 이 혼돈과 무질서, 무의미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방법에 대한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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