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서맨사 하비 「궤도」를 읽고
만장일치로 부커상을 받았다는 타이틀과 아름다운 표지에 끌려 펼친 책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최악 중 최악이었다.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선에 탑승한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들의 이야기인데, 이렇다 할 기승전결이나 내용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구와 우주 풍경에 대한 예찬론적인 묘사만 반복된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우주와 자연에 대한 고찰과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을 담아내려고 한 듯 하지만 크게 와닿는 구석이 없다. 인류사를 꿰뚫는 어떤 예리한 통찰이 있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과하게 현학적이고 오버스러운 표현들로만 점철되어 있어 알맹이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주, 지구, 자연, 인류사, 인간 존재라는 수없이 반복되어 다루어진 주제를 가지고서 딱히 이렇다 할 작가만의 방향성이나 주제의식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길고 장황한 묘사 속에서 힘들게 찾아낸 통찰은 어느 모로 보나 겉핥기에 불과한 수준이라 내가 이 생각을 들으려고 이 묘사를 이겨내고 읽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같은 주제를 이보다 예리하게 담아낸 작품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다. 보통 수작은 내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이런 면에서는 훌륭하다'는 감상은 드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수상을 한 건지 짐작할 만한 포인트가 보이지 않는다.
소설에 꼭 대단한 서사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지어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지 않은 소설들을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 책은 뭔가 더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담은 내용과 깊이에 비해 분량도 너무 길다. 자전하는 지구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모습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단편적인 생각들(지구는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 이 아름다운 우리 고향에서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게 서로를 해치며 살아가는가, 대자연에는 국경이 없는데 인간들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동물인지 등등)은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인 데다 반복이 너무 많다. 여섯 명의 우주 비행사가 딱히 어떤 개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시점이든 감상이 비슷비슷해서 한 명이었어도 똑같았을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의 이름과 특징이 헷갈렸다. 더하여,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은 얕은 통찰마저도 백인 중심적, 서구권 중심적인 생각에 갇혀 있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책을 10권쯤 읽으면 그중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한 권쯤 독후감을 쓰게 되는데 아무리 '가볍게 써야지' 생각해도 쓰다 보면 길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통 마음에 드는 책만 독후감을 쓰게 된다. 보통 이 벅차오른 마음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그런데 이번엔 반대로 이 책을 읽은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뭐라도 쓰고 싶은 마음에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끝까지 뭐라도 있을까 싶어 참고 읽었는데 없었다. 서점에서 사려다가 도서관 예약 순서가 돌아와서 대출해서 읽었는데 샀으면 화날 뻔했다. 책 표지는 예뻐서 오브제로는 쓰기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