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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네모 May 23. 2024

사회적 민감도 100 나온 사람

나의 기질은 무엇일까? 눈물의 TCI 검사 후기

 최근에 TCI 검사라는 것을 받아봤다. 나의 타고난 기질과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검사라고 했다. 이 검사에서 '기질'이란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것이며 바뀌지 않는 것이고, '성격'이란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며 변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대충 MBTI 심화 버전 같았다. 백여 가지가 넘는 항목들에 매우 그렇다, 아니다 등으로 차근차근 답을 골라나갔다. 어떤 질문은 쉬웠고 어떤 질문은 어려웠다.


 결과지를 받아보니 유달리 들쭉날쭉한 것 같은 그래프가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기질' 항목 중에 어느 것도 평균치에 드는 것 없이 다 극단적인 점수가 나온 게 맞았다. 그 안에서도 눈에 띄는 항목이 있었으니 바로 '사회적 민감도' 부분이었다. 백분위 상 무려 100%였다. 왠지 좀... 착잡했다.


 원래 자기가 되고자 하는 모습과 실제 자기 자신의 모습 사이에는 괴리가 있는 법이다. 내 경우엔 옛날부터 둔감한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다.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강단 있고 무덤덤한 사람이고 싶었다. 실제로는 주위 눈치를 많이 살피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쉽게 영향을 받는 편이라 그랬다. 하지만 TCI 검사 결과는 내가 선천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상담사는 기질이란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이라 절대 변하지 않는 거라고 거듭 강조했다. 젠장. 애초에 둔감한 사람은 못 되는 거였나 보다.


 상담사 선생님은 좋고 나쁜 것은 없다고 했다. 불리한 기질, 유리한 기질은 있을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 나가느냐가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불리한 기질이라는 게 결국 나쁜 것 아닌가 싶기는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바꿀 수 없는 거라고 하니 긍정회로를 잘 돌려보는 수밖에.


 사회적 민감도가 높으면 장점도 많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회성이 높고 인간관계를 쌓기 좋다고 했다. 까짓 거 사회성 좀 낮아도 속 편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만 말했듯이 기질은 바뀔 수 없는 거라고 하니 별 수 없다. 장점을 더 생각하는 수밖에. 세상에는 나 말고도 사회적 민감도가 높은 예민쟁이들이 많을 테니 그들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도록 내가 더 눈치껏 샥샥 잘해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 밖에 다른 기질 항목으로도 자극추구 매우 높음, 위험회피 매우 높음, 인내력은 매우 낮음으로 나왔다. 어쩜 모든 항목들이 평균값에서 한참 떨어져 있을 수가 있는지 놀라웠다. 나와는 반대로 모든 항목이 평균치 안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겠지. 아마 그게 '유리한 기질' 아닐까. 부러운 일이다.


 자극추구와 위험회피 항목도 사회적 민감도와 마찬가지로 단점이 있는 만큼 장점도 크다고 했다. 자극추구가 높은 것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에너지를 준다고 했고, 위험회피가 높은 것은 위험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다만 이 둘은 서로 상반된 성향이어서 나의 기질로 말하자면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고 있는 거라고 했다. 자연스레 내면에 충돌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나. 아니, 내가 양발운전자였다니. 그것도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난 거라니 조금 충격이었다.


 사실 조금 더 뼈저린 결과는 '성격' 쪽 항목들이었다. 성격은 크게 자율성, 연대감, 자기 초월 세 가지 항목으로 나뉘었는데, 이 중에서도 자율성만 매우 낮게 나왔다. 설명을 듣다 보니 자율성이란 것은 결국 자존감을 나타내는 지표 같았다. 또 조금 착잡했다. 자존감이 이렇게 낮을 줄이야. 항상 이런 심리 검사 같은 것을 하면 비슷한 결과가 나왔기에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어느 정도 나아진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 실망스러웠다. 나는 나를 나쁘게 볼까.


 상담사 선생님은 양육 과정에서 기질이 잘 지켜지지 않으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예시로 드는 상황들이 점집에 온 듯이 척척 들어맞아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도 점점 나이가 들어갈 텐데 노인이 되어서까지 양육 방식 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만스럽지만 이제라도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잘 키워내는 수밖에 없겠다. 그나마 '성격' 항목에 나온 것들은 변화할 수 있다고 하니 위안이 되었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서도.


 사실 이 검사를 100퍼센트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타고난 기질과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성격을 어떻게 완전히 분리해서 검사할 수가 있을까. 내가 체크한 답변만으로 그걸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는 건 믿어지지 않는다. 물론 결과가 터무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애석하게도 설명을 들을수록 검사결과는 전반적으로 아주 척척 들어맞았다. 그러니, 결론은 그거다. 이 쓰레기 같은 기질들을 끌어안고 어떻게든 잘 살아봐야겠다. 사실 그 수밖에 없다. 달리 어쩌겠는가. 내가 나로 살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 글에 유난히 '~ 수밖에'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다. 결과가 썩 맘에 안 들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심정이라 그렇다.


 썩 뿌듯하게 생각되는 결과도 하나 있긴 했다. 성격 항목 중 '자기 초월'이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설명을 듣다 보니 재미있는 개념이었다. 말하자면 아주 나쁜 상황에 처했을 때, 그것을 극복할 힘을 얻을 수 있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시 세 가지 항목 있는데, 창조적 자기 망각, 우주만물과의 일체감, 영성수용이다. 나는 비종교인이기 때문에 영성수용은 거의 빵점이 나왔지만 창조적 자기 망각과 우주만물과의 일체감이 높게 나와 전체적으로 높은 점수가 나왔다.


 '창조적 자기 망각'은 '자의식'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창조적인 활동에 나를 잊어버리고 완전히 몰입할 수 있냐는 것이다. 상담사는 사고로 다리가 절단된 경우를 예시로 들었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은 내가 다리를 잃었다는 절대 사실을 잊을 수 없는 반면, 창조적 자기 망각이 높은 사람은 기타를 연주한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 하는 활동을 하는 동안만은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잠시 잊을 수 있다고 했다. 문학에서 위안을 얻었던 나의 학창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그래, 나는 아주 나쁜 상황에서도 어딘가에 몰입하며 그걸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바닥을 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우주만물과의 일체감'은 말 그대로 나라는 개인을 넘어서 세상 모든 것들과 얼마나 일체감을 느끼냐는 것이다. 상담사 선생님은 앞선 것과 똑같은 예시를 들었다. 이 일체감이 낮은 사람은 나에게 닥친 비극을 더 크게 느끼는 반면, 일체감이 높은 사람은 다리를 잃었어도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하나의 점일 뿐이야. 나의 비극도 작은 일이야' 라거나 '어차피 죽으면 썩어 흙으로 돌아갈 몸, 다를 것도 없다' 하며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내가 애써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방식과 매우 흡사해서 놀랐다.


 애초에 나쁜 일이 닥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사는 게 그렇지가 않다. 나쁜 일이 너무 많이 닥쳐서 내가 이런 쪽으로 발달하게 된 건가 싶기도 하다. 그동안 이 방식을 '정신승리' 내지는 '회피'라고 불러왔는데 '자기 초월'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스스로 납득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번외로, 남편도 함께 이 검사를 받았는데 이 사람도 사회적 민감도가 96이 나왔다. 세부항목에서의 패턴도 나와 비슷했다. 둘 다 정서적 감수성이 높고 친밀감과 의존성이 아주 높다. 우리는 종종 한 사람이 피곤하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다른 사람도 덩달아 눈치 보면서 기분이 다운되는 패턴이 잦았는데 이 검사 결과를 보며 그 장면들이 스쳤다. 그 밖에도 내가 잘 몰랐던 면모를 발견하고, 잘못 알고 있던 점도 새로 알게 되어 재밌는 점이 많았다. 연인이나 배우자와 데이트 겸 함께 받아보면 서로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는 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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