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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네모 May 29. 2024

각자의 알고리즘

나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알고리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고의 작동 방식이랄까. 행동의 기본양식이 되는 알고리즘이 있다. 그걸 처음 느낀 건 직장 상사 한 분을 겪으면서였다.


 그분은 근심걱정이 많은 성격이셨다. 가끔은 이런 것까지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만큼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꽂히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게다가 엄청난 'J'여서 모든 것이 확실해야만 마음을 놓는 타입이었다. 규모가 큰 일을 진행할 때도 대략적인 틀을 잡기보다는 세부적인 사항들을 먼저 챙겼다. 진행할 일이 A부터 Z까지 있다면 a1, a2, a3를 완벽히 정하고 나서야 B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방식이 당황스러웠다. 이제부터 집을 지으려는데 어떤 문고리를 달지부터 고민하는 식이었다. 막 아이디어를 내놓는 단계에서부터 지엽적인 것들을 다 정하다 보니 진이 빠지기 일쑤였다. 중간에 아이템이 바뀌기라도 하면 간도 배로 들었다. 한 번은 그런 고충을 털어놓았는데 상사는 되려 그런 세부사항을 정하지 않은 채로 어떻게 결정을 내릴 수 있냐고 내게 되물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문고리 쯤이야 집이 어느 정도 지어진 다음에 고민해도 되는 문제 아닌가? 처음엔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괴롭히려고 그러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분을 좀 더 겪고 나니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사알고리즘, 즉 그의 사고방식 속에서는 그게 정말 당연한 흐름이었던 것이다. 문고리처럼 디테일한 사항까지도 완벽하게 정해야지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사람이었다. 걱정 많은 성격과 계획적인 성향, 큰 것보다는 세심한 것에 집중하는 스타일이 합쳐진 결과였다. 그런 성향은 업무 외적인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직원끼리 잡담을 하던 중에 '사무실에 화분 하나 놓으면 어떨까요?' 라는 말이 나오면 그분은 으레 심각해지곤 했다. '문제는 없을까요?'가 언제든 제일 처음 돌아오는 답변이었다. 벌레는 안 나올지, 어디에 둘지, 어떤 화분을 둘지, 어느 정도 크기를 둘지,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없는지 등등 체크사항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냥 뒀다가 문제 생기면 치운다'(애초에 문제 생길 게 뭐가 있겠냐마는)라는 선택지는 그분의 머릿속에 없었다. 결국 말을 꺼냈던 사람이 괜히 일을 크게 만들었다고 동료들에게 사과를 할 정도였다.


 이때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경우가 한 가지 있긴 했다. 바로 10년 정도 몸 담았던 그의 전 직장 사무실에 화분이 있었을 경우다. 그럴 때면 아무런 꼬리 질문 없이 순순히 '그럴까요?'라는 대답으로 이어졌다. 즉,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이 매우 큰 분이었다. 처음에는 왜 어떤 것은 어렵고 어떤 것은 쉽게 넘어가는지에 대해서 갈피를 못잡다가 그런 알고리즘을 깨닫고 나서 그나마 수월해졌다. 그 뒤로 우리는 무슨 일을 진행할 때면 그의 전 직장을 온라인으로 염탐하곤 했다. 아, 이건 여기서도 했었네. 그러면 보통 쉽게 통과가 됐다. 정확도는 체감상 95%에 달했다.


 직장 상사란 내가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떻게든 맞춰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끝없는 고뇌를 통해 그 사람을 움직이는 '알고리즘'을 보게 된 것 같다. 그 상사에 대해 파악한 바, 모두가 1배줌으로 세상을 볼 때 그분은 약 3배줌 렌즈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평생 3배줌의 세상을 살아온 그에겐 그것이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는 평범한 일들도 그에겐 거대하게 보이고 반대로 남들은 보지 못하는 작은 것들도 그에겐 쉽게 보인다. 장단점이 있다. 그렇지만 인간적으로는 정말 힘들겠다 싶은 때가 많았다. 뭐든 확실하지 않으면 불안한 그분에게 이 변수 많은 세상은 얼마나 어려운 것일까.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마다 걱정으로 잠을 못 잤다고 하는 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동시에 나의 알고리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남들에겐 별 것도 아닌 일들이 그 상사에겐 매번 엄청난 고민거리였던 것처럼 나도 실제론 별 것 아닌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겠지. 아니, 분명히 많을 것이다. 나는 나의 알고리즘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다른 길은 생각도 못하고 굳이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가면서 왜 이렇게 길이 어려운 거냐고 끙끙대기도 했을 것이다. 그 상사가 모든 일에 신기할 만큼 '문제는 없을까요?'라는 걱정을 먼저 하는 것처럼. 그 상사가 (아마도) 걱정 없이 태평한 삶을 모르 듯이 나도 내 알고리즘 바깥의 작동방식은 모른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지점은 어떨까. 요즘 적잖이 어렵다고 느껴지는데, 실제로는 쉬운 길일까?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 번씩 환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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