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좌절
미국에서 귀국한 후에는 빠르게 살 집을 구하고, 아이들을 전학을 시켰다. 짐은 두 달 후에나 도착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집에서 하루하루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며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신없이 바빠서였는지, 이사 준비로 스트레스가 많아서였는지, 와이프의 몸이 좋지 않았다. 병원에 갔더니 자궁 근종이 10cm가 넘는다며,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큰 수술은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는 한편, 근종의 크기가 너무 크다 보니 수술을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사가 권유했다.
40대 후반인 우리 부부는 산부인과에서 가장 최고령 환자와 보호자였다. 수술은 다행히도 잘 마무리 됐으나, 개복술로 수술이 진행되다 보니 5일 동안은 꼼짝없이 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거동이 불편해 보호자도 함께 곁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보통 병원은 멀쩡한 사람이 입원해도 병을 얻어서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산부인과의 분위기는 달랐다. 죽음을 상대하는 다른 병원과는 달리, 새 생명이 태어나는 산부인과는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이끄는 산모들은 어렵게 걸음은 떼고 있지만 그 표정만은 밝았다. 그 분위기가 한몫을 했는지 와이프의 회복도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A가 귀국하는 날도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고양이가 미국에서 출발하는 날이 되었다. 미국 아침 시간에 출발하니, 한국은 밤 10시 정도가 되는 시간이다. 한국시간 오전에 A와 필요한 서류들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했고, 이제 출발하는 일만 남았다. 와이프의 병상 침대 옆에 앉아, 고양이가 곧 우리 품으로 돌아온다는 마음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기대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출발시간이 다가오는 그때 갑자기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금 당장 통화 가능할까요?" A였다.
'입국 수속이 한창일 텐데, 무슨 일로 통화가 필요하다는 거지?' 불안한 마음으로 바로 전화했다.
"큰일 났습니다."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건강검진 증명서에 이름이 고양이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 탑승을 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서류에 고양이 이름이 들어가는 게 당연한 거 아냐? 근데, 왜 탑승이 안된다는 거야?" 내가 되물었다.
"검진 증명서에 Consignor와 Consignee에 제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데, 고양이 이름이 들어갔대요."
Consignor(보내는 사람), Consignee(받는 사람)에 A의 이름이 아니라 고양이 이름이 들어갔다는 얘기였다. "병원에서 작성해 준 거 아니었어?" 병원에서 이런 사소한 실수를 할 수 있는 건가 생각하며 A에게 물었다.
"네. 병원에서 작성해 준 증명서예요." 아차. 병원에서 실수했다.
그러나 지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전혀 중요하지도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정작 가장 큰 문제는 공항에 혼자 남아있어야 할 고양이였다. A는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에 올라야 하고, 고양이는 공항에 남아있는 상황, 진퇴양난이었다. 어떤 방법이든지 빨리 떠올려야 했다. 고양이만 공항에 남겨 놓을 수는 없으니.
"A야. 일단 우버를 불러. 그리고 목적지는 우리 뉴욕지사 주소로 찍어." 일단 고양이는 누군가의 손에 맡겨야 하기에, 일단 우버를 부르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지사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동생 B에게 전화했다. B는 한국에서도 고양이를 키웠던 친구고, 우리 가족이 장기간 여행을 갔을 때 고양이를 잠시 보호했었던 경험도 있었다. 가족끼리도 함께 몇 번 저녁도 먹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기에, 상황이 상황인지라 미안한 마음을 무릅쓰고 부탁했다.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도 흔쾌히 받아 주었고, A에게 다시 전화했다.
"B의 전화번호를 기사님한테 남겨주고, 도착하면 그 전화번호로 연락하라고 그래." A에게 다시 한번 부탁하고, 전화를 끊었다. 모든 통화를 듣고 있던 와이프의 얼굴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B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양이 잘 도착했습니다. 사무실에서 데리고 있다가, 제가 집으로 데려갈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너무 고마운 친구였다. 그렇게 우리 집 고양이는 다시 한번 떠돌이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