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좌절
‘26년 새해가 밝았다. 아내도 진작에 퇴원했고, 이삿짐도 도착해 우리 가족의 생활은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다만 고양이의 빈자리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고, 베란다 한편에 아직 조립하지 못한 캣타워 상자는 볼 때마다 고양이를 생각나게 했다. 간간이 B가 보내주는 사진과 동영상으로 그리운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혹여 그리움이 옅어질까 봐, 우리 가족은 12월부터 휴대전화 배경화면을 모두 같은 사진으로 바꾸었다.
1월 1일이 되자 새로운 휴가가 생겼고, 일상에도 여유가 생겨 슬슬 비행기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굳이 미국에 가야 한다면 날이 따뜻할 때 가서 지인들과 골프라도 치고 오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상황이라 하루라도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미국에 가면 며칠을 머물러야 할까, 숙소는 어디로 정해야 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던 그때, B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인이 1월 30일(금) 00시 03분 비행기로 한국에 가는데, 그 사람이 고양이를 데려다줄 수 있대요. 제가 건강검진 증명서를 발급받아 그 친구에게 공항에서 전달할게요. 이제 고양이도 집에 가야죠.”
내 사정을 잘 아는 B는 이번만큼은 꼭 데려다주겠다는 결연한 목소리였다.
“정말?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래도 너무 미안해. 내가 가서 데려와도 되는데.”
기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뒤섞였다. 자꾸 여러 사람에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여기 오는 비용이며 휴가며… 그게 한두 푼도 아닐 텐데요.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거죠.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엔 꼭 보내드리겠습니다.”
너무도 고맙고 든든한 말이었다.
“고마워. 이 은혜는 꼭 갚을게.”
그렇게 우리는 다시 고양이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출국일이 다가오던 1월 26일 월요일(한국), TV와 유튜브에서는 불길한 뉴스가 연신 특보로 흘러나왔다. 미국 전역에 겨울 폭풍이 닥쳤고, 22개 주가 비상사태 지역으로 선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B와 통화해 보니 건강검진은 이미 마쳤고, USDA의 도장이 찍힌 서류만 우편으로 받으면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요일 저녁(미국), 뉴저지에는 30cm가 넘는 눈이 내렸고 그칠 기미 없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출국일인 목요일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 서류를 받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 3년간 뉴저지에서 지내며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며칠씩 교통이 마비된 적은 없었기에, 나 역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 상황은 심상치 않았다. 눈은 계속 내렸고, B는 출근조차 하지 못했다.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져 화물칸 운송이 거절될 수도 있다는 말도 들려왔다. 그래도 아직 며칠의 시간이 있었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 화요일(미국)에는 눈이 그쳤고, 출퇴근이 가능할 정도로 교통도 정상화되었다. 희소식이었다. 이번에야말로 고양이를 데려올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미 가족들의 그리움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는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됐다. 간절함이 클수록 실망도 커지는 법이니까. 또다시 실패한다면, 나는 결국 양치기 소년이 되고 말 것만 같았다
그러나 출발 당일인 목요일(미국)까지도 서류는 도착하지 않았다. 조회 화면 속 운송장은 여전히 플로리다에 멈춰 있었다. FedEx에 수차례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이번 주 안에는 배송이 어렵습니다.”
플로리다에는 눈이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서류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파의 여파인지, 제설 작업 지연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비행기 출발 시각은 점점 다가오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서류만 제자리에 묶여 있었다.
한국 시간으로 29일 밤 10시, B와 마지막으로 통화했다. 혹시라도 기적처럼 서류가 도착하지 않을까 끝까지 희망을 붙들어 보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단 내가 직접 갈 때까지… 조금만 더 부탁할게.”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기다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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