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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Jun 27. 2023

[1] 신입사원으로 회사생활에 출전하다

미숙했던 시절의 열심과 좌절에 대하여

# 프롤로그 : 오로지 나를 위한 연대기 


2021년 10월, 나는 8년 9개월간 다닌 회사를 퇴사했다. 2013년 1월 입사 이후, 육아휴직과 복직을 제외하면 8년 가까이 나는 회사라는 곳에 몸을 담고 있었다. 길어야 일주일의 휴가를 아주 가끔 떠난 것 외에는, 매일 아침 나의 일과를 시작했던 곳.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지만, 사무실은 늘 내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 퇴사하고 한동안은 출근하지 않는 것이 홀가분하면서, 동시에 허전했다. 회사생활을 잘 정리하고 싶었지만, 내가 온전히 떠난 것이 과연 맞는지 늘 헷갈렸다. 입사 후 10년이라는 시간을 채우고 나서야, 내가 정말 회사를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억마저 나를 떠나기 전에, 지난 10년을 복기해보고자 한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해서. 이 글은 입사부터 퇴사까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연대기가 될 것이다.


# 의욕으로 충만했던 신입사원 전반전 : 2013년 1월~2014년 4월


2013년 1월 1일.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었고, 신입사원 연수 시작일이기도 했다. 인력팀 담당자는 충주의 한 호텔로 가기 위해 잠실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고 했다. 치마정장을 입고 눈을 헤치며 캐리어를 끌고 버스에 탑승한 날, 나의 신입사원 전반전 시작 휘슬이 울렸다.


연수기간은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일을 하지 않고 월급을 받는다는 점은 엄청난 즐거움이었고, 시키는 일을 억지로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괴로움이었다. 대면과 비대면을 섞어서 수업하는 방식에 익숙한 지금의 신입사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과정들도 많았다. 그룹에서 관리하는 산을 눈을 헤치며 올라가는 과정이 제일 괴로웠다. 일종의 패기훈련이라는 것인데, 그룹 연수가 끝나고 나서 회사별 연수에서도 한라산을 등반하는 과정이 있어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얼떨결에 축구선수가 되어, 경기에 참전한 사람처럼 나는 허겁지겁 산을 올랐고, 때로 낙오되기도 했다. 물론 이때만 해도, "내가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렇지 원래는 골 넣고도 남을 사람이야!"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아마 신입사원 때 내 모습은 이렇지 않았을까. 나도 골 넣을 수 있다고!

초보선수의 자신감을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는 씩씩한 자신감으로 버티기에는 너무 복잡다단한 곳이었다.  그 당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금도 공감하기는 힘든 상사의 스타일이나 회사의 암묵적인 규율이 나를 조금씩 시들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이라면 시들어버린 나에게 물을 주고, 맛있는 음식도 주며 "힘들었지? 잘 쉬고 일어나서 다시 뛰면 돼"라고 말해줄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나 자신에게도 그런 휴식을 주지 못했다. 회사생활도 어려운데, 더욱 어려운 것은 대외관계였다. 홍보팀에 있었던 나는 기자들을 점심시간에 만나는 일이 잦았다. 라떼타령을 하자면, 2013년에는 아직 식당 내에서 흡연이 가능한 시기라, 팀장과 기자가 함께 구름연기를 피워 올리는 일도 있었다. 어느 날엔 팀장과 기자가 함께 피어 올리는 연기에 식당 앞 카페로 도망친 적도 있다.


안 좋은 기억도 많지만, 다행히 나에겐 나를 잘 이해해 주는 남자친구(구 남자 친구, 현 남편)도 있었고, 좋은 동료와 선배도 있었다. 본래 홍보팀 업무를 지망하기도 했고, 흥미로운 업무들도 꽤 있었다. 기사의 리스크를 분석하거나,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결과를 모니터링하는 일은 흥미로웠다. 어쨌든 싫어하는 숫자보다는 글을 가까이할 수 있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힘들 때마다 손에 맞는 일을 하고, 좋은 사람들에게 힘을 얻으며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라며 회사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맞이한 봄에 그 사건이 일어났다.


# 부상으로 시작된 신입사원 후반전 : 2014년 4월~2014년 9월


2014년 봄이었다. 당시 남편과 나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상시처럼 데이트를 하고 남편의 차를 타고 돌아가던 날, 교통사고가 났다. 터널 안에서 1차 충돌이 있고, 엔진이 꺼진 차에서 나와 대기하던 내가 2차 충돌로 튕겨나간 것이다. 2차 충돌 시 작은 트럭이 우리 차를 들이받았는데, 우리 차가 다시 나를 치는 사고였다. 응급실에 실려간 나는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사고가 너무 크게 나서, 내일 출근이 어렵다고. 팀장이 에이 무슨 사고가 그렇게 났어?라고 웃는 순간, 뇌진탕 증세로 내가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전화가 끊겼다. 사고의 여파로 4주간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복직 후, 나 대신 업무를 담당해 온 동기와 선배가 나를 반겨주었다. 하지만 내 몸상태는 반가운 상태가 아니었다. 너무 큰 사고였기에 복직을 하고 나서도, 퇴사를 하는 게 맞는지라는 고민을 할 정도였다.


그때부터였다.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나름의 작은 보람과 때로는 크게 느껴지는 괴로움으로 균형이 잡혔던 회사생활이 서서히 괴로움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내 몸 상태를 공감할 수 없는 팀장과 회사는 크고 작은 일로 나를 힘들게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 힘들어할 필요는 없었다. 스물아홉 살의 나는 누가 내게 괴로움을 던진다고 해서, 그 괴로움을 온전히 흡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몰랐다. 불현듯이 찾아온 큰 고통을 전부 흡수하고, 온전히 내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나를 독촉했던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은 그 독촉이 아니었을까. 몇 월 며칠까지, 마감기한 안에 해결해야 돼. 힘들더라도 네가 다 이겨내야 돼. 회복의 시간을 강요했던 나에게 새삼 미안해진다.


# 경기에서 퇴장당하지 않고 버티기 : 2014년 10월~2015년 12월


사고가 난 해, 2014년 가을에 결혼을 했다. 즐거운 신혼여행을 다녀왔고, 사고의 충격도 점차 잊어가기 시작했다. 결혼생활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회사 생활도 무난하게 흘러갔다. 부상으로 퇴장할 뻔했던 선수가 다행히 응급처치 후 무난하게 시합에 복귀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2014년 겨울, 다시 사건이 벌어졌다. 회사는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회사는 다시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구조조정 기사가 나왔는데, 왜 모니터링을 하지 못했냐는 질책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 탓이 아닌데도, 내 탓처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일들이 이어지며 팀장은, 그리고 나 역시 점점 날카로워졌다. 


2015년이 되자, 이미 두 번에 걸쳐 큰 부상을 입은 나는 경기에 의욕을 잃었다.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정리해고를 경험하며, 회사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에 직면했다. 그러나 질문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에 비해, 나의 인생경험은 너무 짧았다. 역시 안정적인 직장을 찾았어야 했나, 더 좋은 대기업이라면 이런 일을 없었겠지 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답을 스스로에게 내려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너는 왜 그런 곳을 가지 못하고 여기에 계속 머물러있냐는 묵언의 압박을 주었던 시간이었다. 사원시절의 마지막 해, 2015년이 그렇게 끝이 났다.


신입사원 후반전을 복기해 보면, 마치 낙담한 축구선수가 의지를 잃고 그라운드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경기를 완전히 포기할 정도로 지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경기장을 완전히 떠나버릴 만한 용기나 과감함도 없다. 다만 시간이 되면, 경기장에 나타나 분초 단위로 흘러가는 시간을 버티며 경기에 참가하고, 종료 휘슬을 기다린다. 그리고 휘슬이 울리면, 홀가분하지 못한 마음으로 경기장을 떠나고 아침이면 다시 습관적으로 경기장에 나타났다. 그때의 나에게 속삭여주고 싶다. 내 의지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분별해 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기꺼운 마음으로 하면 된다. 서른여덟이 돼서야 알게 된 이 마음을 스물아홉, 서른에 알았더라면. 아쉬움은 있지만 탓하지 않기로 한다.


# 에필로그 : 지난 시간을 잘 묶어낼 수 있는 사람


총 4번에 걸쳐 정리하기로 한 10년의 첫 번째 장은 여기까지다. 어떻게 시간을 잘라내야 맞을까 고민하다, 내가 사원에서 벗어났던 2015년을 기점으로 글을 정리했다. 신입사원 시절을 쓰면서, 구체적인 사건을 자세히 묘사해 내가 왜 그렇게 억울했고, 힘들었는지를 토로할까 고민했다. 억울한 일은 많았다. 힘든 일은 더욱 많았다. 객관적으로 너무한 일도 많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 일들은 대부분 버리기는 아깝지만, 갖고 있어도 쓸모가 없는 것들이 많았다. 미니멀라이프를 하려면 버리라는 충고를 받을지도 모르는 물건들과 비슷했다. 오히려 그때의 나라면 하루종일 한탄했을 그 일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그저 그런 사건들이 되었음이 새삼 감사하다. 지금의 나는 그저 그런 일들을 확대해서 들여다보는 것보다, 지난 시간을 잘 묶어내고 갈무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다. 오늘의 나를 위해 과거의 나를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첫 번째 이야기를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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