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에 찾아오는 분들이 많이 사용하는 용어 중에 내가 참 싫어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그중 첫 번째가 실업급여 대상자들의 이런 표현이다.
"실업급여 타먹을라고 왔는디 어디로 가면 되야?"
이건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오는 사람들이 센터에서 눈에 띄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는 말이다.
"얼마 전에 실업급여 다 타먹었응께 이제 취직해야쥬~"
이건 실업급여 수급이 끝난 사람들이 취업알선팀에 와서 하는 말이다.
"실업급여 다 타먹었는데 뭐 또 다른 혜택은 없어요?"
이건 실업급여 다 타먹고도 또다른 지원금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문의하러 온 경우다.
아니, 그 타먹겠다는 소리들 좀 안하면 안돼?
이건 센터 동료들끼리 나누는 우스개 소리인데, 아마도 그 표현에는 세금에 대한 도덕적 해이 같은 것이 느껴지기 때문에 드는 거부감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순박하거나 또는 사악하거나 둘 중 하나일 그들의 용어에 나는 딴지를 걸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저 물어봤을 뿐이지 나에게 무례하거나 위해를 끼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말보다 내가 더 싫어하는 표현은 이거다.
"여기 오면 공짜로 학원 다닐 수 있대서 왔는데요~"
내일배움카드를 통해 지원하는 직업훈련을 '공짜'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참 많다.
상담을 통해서 구직자들에게 적절한 직업훈련을 지원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실업급여를 타먹겠다는 발언보다 이 공짜 타령이 더 망발인 것이다. ㅠㅠ
"선생니임~, 공짜는요, 학원에서 즈그들이 학원비 한푼도 안받고 무료로 해주는거 그게 공짜구요,
이건 국비지원이에요, 국.비.지.원!"
나는 손으로 내 책상을 탁탁 내리치는 액션까지 취하며 기어이 그들에게 이렇게 한마디를 하고야 만다. 마치 새마을운동 시절의 부녀회장 처럼, 기필코 그들을 계몽시키고야 말겠다는 불타는 사명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러면 그들은 머쓱한 표정으로 내 앞에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다. 물론 이때 나의 말투에는 장난끼가 가득하기 때문에 그들이 불쾌해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아항, 그렇구나> 싶은 그런 표정이고,
어떤 분은 <그거시나 저거시나 어퍼치나 매치나 아녀?> 뭐 그런 표정이 살짝 드러나기도 한다.
최근에 사내 게시판에 혜성처럼 등장한 분이 있다.
그는 대전청 운영지원팀 소속의 방호서기 주무관이다. 그가 올리는 게시글은 네다섯 줄 이상을 넘지 않는다. 마치 우리의 노안을 배려하기라도 한 듯 아주 큼지막한 폰트에 알록달록 색깔도 입히고,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짧은 언어유희처럼 표현한다.
"코스피, 복지포인트, 시험성적, 고용노동부의 공통점은? 바닥이어서 더 떨어질 것이 없다는 긍정적 신호! "
이런 류의 그의 게시물에서, 그분이 얼마나 긍정적인 성향인지 지나가는 댕댕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목요일에 올라온 그의 게시글을 보고 나는 정말 박장대소를 했다. <어떤 민원>이라는 제목의 네 줄 전문은 이러하다.
그분 : 대신 받았습니다, 대전노동청 OOO입니다.
민원인: 아~ 그 뭐냐? 여보세요, 그거 있잖아요? 그 뭐시냐?
그분 : 아~ 선생님 혹시 타먹는 거유? 못받은 거유?
민원인: 이 그려 타먹는거! 그거 어떻게 타먹는겨? 어디서 타먹는겨?
이 글을 보는 순간, 나는 미친 듯이 소리 내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서 길에서도 또라이처럼 큭큭 거리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생각나서 큭큭 거리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클릭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날 퇴근길에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다가 나는 문득 현타가 온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깨달음이 밀려 왔다.
생각해보면, 그런 표현을 쓰시는 분들은 대개가 50대 이상의 중장년층들이다. 또한 그것은 분명히 고학력자의 어휘가 아닐 것이다. 그까짓거, 타먹겠다고 하시면 어떻고, 공짜인줄 알면 어떤가.
그말에 나는 무에 그리 예민할 게 있는가.
이제 나는 아주 쪼오금 더 유연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그람유, 공짠데 얼른 하셔야쥬~" 이렇게 까지 부추기지는 못하겠지만, 확실한 건 앞으로 그들의 표현에 좀더 관대해질 것 같다는 점이다.
덕분에 나의 짬밥 레벨은 이렇게 또 한 계단 상승한다. 감사의 화답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