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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Oct 25. 2022

먹튀와 방관자

오늘은 좀 불편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2015년 9월에 고용노동부에 입사해서 '취업성공패키지' 업무를 담당했다.

취업성공패키지는 박근혜 정부에서 만들어진 실업자 지원 사업으로, 저소득층에게 직업훈련을 무료로 지원하고 6개월간 30~40만 원의 수당을 현금 지원했다. 이 사업은 2020년 12월 말 기준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21년 1월, 문재인 정부에서 만들어진 또 다른 실업자 지원 사업인 '국민취업지원제도'가 시작되었다.

취업성공패키지는 지침 사업이고 국민취업지원제도는 법령 사업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내용은 똑같다. 저소득층에게 직업훈련을 무료로 시켜주고 6개월에 걸쳐 50만 원씩 돈도 준다.

한국형 실업부조를 표방하며 대대적으로 홍보되어 2021년 상반기에 직원들은 병가가 속출할 정도로 엄청난 격무에 시달렸다. 나 또한 목과 어깨에 심한 통증이 와서 한의원 야간진료를 받아가며 업무를 수행했다.


내가 생각할 때, 이런 사업들에 있어서 "저소득층"을 판단하는 기준이 과연 합리적인지 의심이 들 때가 많다. 특히 10년 넘게 운영된 취업성공패키지의 경우는 건강보험료만으로 저소득층 여부를 판단해서 참여를 시켰기 때문에 지역 내에 10억 넘는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도 가족의 피부양자로 등재되어 건강보험료 기준만 통과되면 저소득층으로 참여가 되었던 것이다.


국민취업지원제도는 건강보험료가 아니라 실제 보유재산과 가구원의 중위소득으로 참여 기준을 좀 더 현실화했지만, 처음 3억 원 이하이던 재산요건을 스리슬쩍 개정해서 4억 원으로 올리고, 거기서 또 스리슬쩍 개정해서 청년층들은 5억 원 이하까지 재산요건을 완화시켰다. 4억, 5억 재산 보유한 사람들이 정녕 저소득층인지 잘 모르겠다. 이러다 점점 10억 원 까지 올라가는 것 아니냐며 동료들끼리 자조한다.


뭐, 여기까지도 다 괜찮다, 사람들이 정말로 취업을 하려고 참여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절반 가까이는 사실상 수당 먹튀라고 보면 된다. 노련한 직업상담사들은 첫 상담에서 이미 취업의지가 있는 사람인지 먹튀인지 파악할 수 있다.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어 다니는 입법기관이라면,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창구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은사실상 세금을 집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세금이 얼마나 방만하게 낭비되고 있는지 목도하면서도 그걸 제어할 수 있는 아무런 권한도 능력도 없다.


취업성공 패키지 사업이나 현재의 국민취업지원제도에서도 가장 큰 문제점은 훈련을 위한 훈련, 공짜 훈련을 위한 참여자들이다. 사실 그 문제는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에서 더욱 심했다. 왜냐면 취성패에서는 직업훈련을 받는 사람들에게만 학원도 보내주고 훈련수당이라는 것도 줬기 때문에 애초부터 취업할 의사가 없는 사람들이 이때다, 하고 바리스타 학원으로 제과제빵 학원으로 달려갔다. 당시 우리 상담사들 사이에서는 이러다가 전 국민이 바리스타가 되겠다는 냉소가 팽배했다. 소위 말하는 경단녀들이 가장 많이 선호한 게 바리스타 학원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경단녀"라는 표현 자체가 때때로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경단녀란 말 그대로 경력이 단절되었지만 다시 사회로 진출하고자 하는 여성들을 의미하는데, 현장에서 내가 만나는 그녀들 대부분은 사실상 오래전부터 전업주부였고 앞으로도 전업주부일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처녀 시절부터 50대가 되도록 사회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전업주부가 이제 와서 취업을 하시겠다고 하면 기특할 노릇이지만, 그녀들은 마치 담합이라도 한 듯이 바리스타 학원으로, 제빵학원으로 직행하곤 했다. 하지만 경단녀로 포장된, 무늬만 경단녀인 허위 구직자임을 알아도 공공기관의 상담사 개개인은 그들을 제어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본인이 취업을 할 거라고 주장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일전에 글을 쓴 적이 있는 K주무관님의 경우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훈련을 승인해주지 않아서 일 년에 국민신문고를 50건 이상 받았다고 했다. 신입시절, 공직자 마인드로 똘똘 뭉쳤을 때는 나 역시도 나름 깐깐하게 훈련의 적합성을 검증하려고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헛발질인지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상담사들이 해당 훈련의 형식성과 취업의 허위성을 판단해서 불가 판정을 내려봤자, 신문고 민원에 대한 본부의 답변은 결국 승인해주라는 게 정해진 수순이다. 이 과정에서 무기력이 학습된 내부 직원들이 사실상 취미 목적의 직업훈련을 방만하게 승인해줄 수밖에 없는 것, 그건 절대적으로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구직자들의 책임일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들의 모럴해저드를 비난할 수가 없다. 구멍 숭숭 뚫린 정책이 그들의 모럴해저드를 양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공공기관 취업지원 정책의 특성은 한마디로 '따로국밥'이다.

예를 들어보자. 상담사들은 대면 상담을 통해 구직자와 취업활동계획을 세운다. 그 과정에서 부득불 취업이 되지도 않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겠다고 우긴다. 바리스타 학원이 끝나면 천연발효빵이니, 파스타 학원으로 직행하여 지원되는 금액을 알뜰히 소비한다. 이런 과정을 마친 사람들 대부분은 거의 취업 따위는 나 몰라라 하고 심지어는 연락이 두절되기도 한다. 받을 거 다 받고 먹을 거 다 먹었으니 더 이상 연락할 일 없다는 거다.


학원을 모두 마친 후 전혀 연관성이 없는 직종으로 취업하는 사람들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애초에 다른 분야로 취업할 목적이 명확했지만 제도를 악용하여 사실상 취미 과정에 실컷 참여하다가 결국은 기존에 자기가 하던 분야로 재취업하는 경우, 그래도 이들은 취업이라도 하셨으니 쌩큐 한 걸까?


문제는 지금부터다. 그들이 처음에는 바리스타로 취업할 거예요, 제과제빵사로 취업할 거예요, 그렇게 상담사를 기만하고서 결국 전혀 다른 분야로 취업을 해도 그들에게 150만 원이라는 거액의 취업성공수당이 동일하게 지급된다는 점이다. 취업활동계획으로 수립했던 직종과 달라져도 현재로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최소한 취업성공수당의 지급요건을 그들이 참여한 훈련종목과 일치만 시켜도, 취업 따로 훈련 따로인 모럴해저드는 방지할 수 있다. 취업성공수당까지 목표를 두고 정말로 취업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직업훈련 선택을 훨씬 더 신중하게 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허용적 기준으로는 얼마든지 더 빨리 취업을 할 수 있는 사람들 조차 취미용 학원에 다니느라 실업기간이 길어지는 현상을 만들 뿐이다.


물론 그렇게 해도 처음부터 취업 따위는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은 걸러내지 못한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철저히 수당이나 받으면서 공짜 훈련을 받는 데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연락 두절되는 것은 자기들도 쪽팔려서 상담사 대하기가 거시기하기 때문 아닐까?


나는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취업성공수당의 지급요건을 직업훈련 직종과 취업 직종으로 일치시켜달라고 개선의견을 낸 적도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공기관들은 결국 보여지는 실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저찌됐든 취업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취업성공수당은 취업 유인제로서 훌륭히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금성 지원이 이루어지는 국가 기관의 제도들은 좀 더 엄격하고 세부적인 지침을 정해야만 한다. 세금은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최적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먹튀와 방관자들이 넘쳐 나는 한, 나랏돈은 줄줄 새어나갈 수밖에 없다. 운영지침이 느슨하면 먹튀는 끊임없이 양산되고 더 교묘해질 것이다.


"이 돈은 선생님이 내시는 세금, 선생님의 가족들이 내는 세금이기도 합니다."


도덕적 해이로 똘똘 뭉친 구직자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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