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 없이 쓰러지는 공포 속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성인이 되었고 술을 잔뜩 마셨다.
이상하게 취하지 않았다.
묘한 고양감은 들었지만, 기억을 못 하거나 실수하는 일은 없었다.
"PC방이나 갈까"
그날은 친구와 함께였다.
우린 술을 마시고 밤새 게임했다.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했으니까
아직 학기가 시작하기 전
20살의 2월이었다.
솔직히 그때의 난 행복했던 것 같다.
앞으로의 일 따윈 제쳐두고 지금 앞에 펼쳐진 즐거움에 빠져 설렘이 멈추질 않았으니까.
그렇게 다음 날 9시가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PC방의 찌든 내를 씻어 내리고 졸린 몸을 침대로 끌고 와 누웠다.
눈꺼풀은 무엇보다도 무거웠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10시간은 되었을까,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을 보며 멍을 때렸다. 왠지 모르게 눈꺼풀이 흔들린다.
"왜 이러지.."
세수와 함께 정신을 차리고 습관처럼 컴퓨터를 켰다.
딱히 할 것도 없었다.
결국 또다시 게임을 하게 되었고,
엄마는 뒤에서 수건을 개며 열심히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대충 흘러 넘겼다.
"어제 밤새하고 온 거 아니야? 또 해?"
엄마는 동생과는 달리 나에겐 게임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다른 친구들이 공부를 안 해서일까, 조금만 노력하면 1,2등의 성적은 나왔다.
자격증도 모두 땄다.
나름 큰 대회에서 입상도 했다.
성적이 낮은 동생에 비해 노는 것엔 너그러운 편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시선이 움직인다.
내 의지가 아니다.
오른쪽 눈이 점점 돌아간다.
얼굴의 반쪽이 마비된 듯 일그러진다.
제어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증세를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의 여름.
운동삼아 걷던 중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1분 정도 몸을 떨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악했던 일이 있었다.
아픈 곳은 없었고, 가끔 잘 때마다 비슷한 증세가 있었지만 금방 풀렸기에 무시했다.
하지만 그날은 뭔가 달랐다. 평소보다 날 잡아당기는 느낌이 심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 힘으론 거스를 수 없다.
아무리 머리를 제자리로 돌려도 다시 돌아간다.
우스꽝스럽게 흔들며 몸을 바들바들 떠는 꼴이 되어버린다.
누구나 그런 상황이 덮치면 당황할 것이다.
한 번도 엄마 앞에선 이런 적이 없었기에,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정신을 차리라고 오른쪽 뺨을 때려봐도, 오히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좁아짐과 동시에, 어두워진다.
숨을 쉬고 싶지만 호흡을 할 수 없었다.
놀란 엄마가 패닉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하는 목소리를 뒤로한 채,
눈앞이 깜깜해져 나는 정신을 잃었다.
꿈을 꿨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거실에서 이리저리 몸부림치며 움직였다.
괴로운 꿈에서 헤어 나와 정신을 차렸다.
모르는 천장이다.
어디 누워있는 걸까?
흔들린다.
모르는 사람이 보인다. 구급대원인가?
몸이 찝찝하다.
바지가 젖어있다.
쪽팔림이 몰려오지만, 애써 어쩔 수 없었다며, 태연한 척했다.
"정신이 드세요?"
묻는 질문에 대답하려 입을 열자 통증이 밀려온다.
내가 혀를 세게 깨문 것 같았다.
피 맛이 섞여나고, 혀를 움직일 때마다 찌릿하다.
그렇게 응급실로 실려가 다행히 별 일이 없어 바로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온몸이 아팠다.
팔, 다리, 어깨, 제대로 서는 것조차 힘들었다.
경직된 근육이 풀리면서 근육통이 미친 듯이 몰려온 것 같았다.
세수라도 하려 화장실에 가, 혀를 살펴보니, 혀 테두리에 내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두통, 근육통, 찢어진 혀 거기에 지렸다는 수치심까지...
그날의 밤은 상황을 판단하기엔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집에 가는 조용한 택시 안.
공기는 차갑고 침묵만이 이어졌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눈치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랄" "땡깡" 이 두 단어는 이 병을 가리킨다.
"뇌전증" 흔히 간질이라고 불리는 이 병은 꽤나 귀찮은 병이다.
증세 자체는 생명에 큰 지장이 없지만,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떨어댄다는 것은 충분히 위험하다.
처음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을 때,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최근 인생이 물 흐르듯 잘 흘러갔기에, 이제 슬슬 이런 일이 한 번쯤은 일어날 것이라 체념하고 있던 것 같다.
"또 꼬였네..."
이젠 좌절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힘든 일은 충분히 있었고 그럴 때마다 결과적으론 잘 넘겨왔다.
그냥 길을 가다가 높은 산을 만난 것뿐,
저걸 올라가야 한다는 압박감만이 남고 더 이상 한탄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냉정하게 판단하기로 했다.
"나을 수 있는 건가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약 잘 먹고, 증세가 몇 년간 없으면 보통 완치 판정을 내리긴 해요."
그나마 다행이었다.
수술을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약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말했다.
거기서 의사 선생님은 "2년"이라고 말했다.
난 2년을 증세 없이 살아야 한다.
그리고 위험 요소를 말해주었다.
"첫 번째, 광 자극 피하기"
너무 반짝이는 빛들은 뇌를 자극하기 좋다. 그렇기에 최대한 피하는 것을 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두 번째, 과도한 흥분 피하기"
흥분은 호흡을 제대로 못하게 하고, 그런 상태에선 발작증세가 쉽게 나온다고 말씀해 주셨다.
"세 번째, 적절한 수면"
잠을 잘 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못을 박았다. 밤을 새우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말했기에 조심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금까지의 난 이 세 가지를 하나도 지키는 것이 없었다.
게임에 따라 다르지만, 당시의 하던 게임은 반짝임이 굉장히 많았다. 화면이 너무 밝고 깜빡였다. 난 이것 먼저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는 화가 많다.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었기에 감정의 컨트롤과 심호흡을 하는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수면. 한 가지 나와의 약속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8시간을 자기로.
그럼에도 나는 대학생이었다.
그리 쉬울 리가 없었다.
게임을 안 하는 것은 담배와 술을 하는 사람에게 하루아침에 끊으라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조절했다.
일단 밝기를 최대한 낮추었다. 그리고 반짝임이 덜한 화면이 덜 화려한 게임을 위주로 플레이하게 되었다.
엄마는 그냥 게임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로선 힘든 일이다.
내 성격 또한 하루아침에 바뀌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심호흡을 주기적으로 해준 덕인지 쉽게 흥분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수면. 핑계를 대보자면 이렇다.
나는 해야 할 공부가 굉장히 많다. 늘 쫓기듯 이걸 공부하고, 저걸 공부하고, 머릿속에 무언가를 가득 채워 넣는 일상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 통학은 왔다 갔다 4시간. 멀미가 심한 나는 버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집에 가면 쌓여있는 과제를 하고, 모르는 걸 공부한다.
늘 과제와 시험에 골치가 아팠다. 잠을 자야 하지만 학점을 내던질 순 없었기에, 새벽 4시까지 깨어있던 적도 많다.
버스에서 잠을 자고, 공강 시간에 잠을 잔다.
하지만 그런 생활패턴으로 병이 나을 리 없었다.
어떤 날은 버스 안이었다. 또 증세가 나타났다.
좁은 버스 안.
좌석 밑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했다.
그날 모든 수업을 가지 못했다.
친구도 거의 없기에,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엄마는 놀라서 병원까지 왔다.
다른 날은 강의 도중이었다. 전날 무리해서일까, 깜빡 졸았다.
자다가 움찔 거리며 깬 적이 있는가?
나도 그랬다. 다른 점이라면 나는 그 후 의자와 함께 넘어져 그대로 실려갔다는 것.
이건 최악이다.
다른 학생들 앞에서 오줌을 지리며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그날 이후 나는 밖이 무서워졌다.
가만히 있어도 문득 위화감과 함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혹여나 또 쓰러지지 않을까 긴장했다.
강의 도중 그런 일이 굉장히 많았다.
중간중간 밖에 나가 심호흡을 하고, 다시 들어오고를 반복했다.
공포감이 몰려온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다.
도저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이후로도 기절할 정도는 아니지만, 발작 증세는 굉장히 많았다.
잠을 제대로 자도, 게임을 하지 않아도, 가만히 멍을 때리다 나오니,
규칙성 없는 그 증세에 공포감과 불안함만을 느꼈다.
밖에 있을 때마다 발작하면 어떡하지 라며 불안에 떨고, 갑작스레 찾아오는 묘한 흥분은 혹여나 증세가 나오는 것 아닐까라는 공포로 이어진다.
그런 무서움은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강의를 듣던 중, 너무 무서워 떨리는 손으로 엄마에게 전화했다.
"저 강의 못 듣겠어요.."
"하.. 공부하기 싫어 별 지랄을 다하는구나? 개소리하지 말고 강의 들어라"
모든 것이 차갑고 날카롭게 느껴진다.
사람들의 시선도, 엄마의 태도도, 내 몸조차 내 것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원래부터 난 혼자였지만, 그때부터 내 고독감이 내 안에서 부풀어 나를 밀어내는 것을 확신했다.
"약을 먹으면 머리가 나빠져요."
원래부터 좋진 않았다.
난 그 말에 기댔다.
"내 성적이 나쁜 건 약 때문이야.."
"내가 이러는 건 다 병 때문이야.."
"차라리 취업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만을 기다렸다.
자책, 후회, 자기 합리화 등등 부정적인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찼고, 하루가 지나는 것만을 기다렸다.
정신이 피폐해져 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발작이 일어나면 나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발악했지만, 어느샌가 몸에 힘을 빼고,
기절하는 것을 기대하는 나만 남았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