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책임은 내게 돌아왔다
중학교 1학년의 여름.
아마 내 인생 최악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동생과 그곳에 있었다.
인생은 잘 풀리기 시작할 때 조심해야 한다.
순조롭다는 것은 방심하기 쉬워진다는 것이고, 방심은 나를 무방비하게 만든다.
어제까지만 해도 희망찬 내일을 그리다, 다음 날 절망하고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라며 현실을 부정하는 그 기분은 다신 느끼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언젠가 또 찾아오겠지.
인생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외할아버지는 술주정이 끔찍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
그걸 보며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술 처먹으면 퍼질러 자는 게 낫다. 너넨 저러지 마라"
이것 또 한 맞는 말이다.
같은 말을 몇 시간씩 반복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정신적으로 굉장히 피곤해진다.
똑같은 내용의 일들을 30분 동안 길게 늘어뜨리고 그걸 몇 번이고 반복한다. 중간에 끊거나 무시하면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른다.
술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동시에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행동을 더욱 과감하고 격하게 만든다.
아버지가 난장판을 냈을 때도 술에 취해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우리를 때리려다 외할머니를 다치게 한 것도 술에 취했을 때였다.
성인이 되어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을 때
"마시긴 하되 적당히."
항상 이 생각을 명심했다.
떠올릴 때마다 구역질이 난다.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끈적한 바닥,
잡아도 잡아도 기어 나오는 파리와 바퀴벌레,
소리치는 외할아버지,
더워서 땀에 절어 괴로웠던 밤과 서러워서 흘렸던 눈물들은 그 시절의 감정과 함께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이후 엄마가 오고 많이 달라졌다.
엄마한테 혼날 때면 술을 마신 외할아버지가 끼어들어, 편들어주니까 좋냐며 더 혼나는 날이 늘었지만,
집은 이전에 비해 깨끗해졌다. 그럼에도 더러운 건 사실이었다.
우리는 작은 방에서 지냈다. 그 좁은 방에서 우린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지냈다. 에어컨은 없었다.
항상 더웠고 답답했지만 그럼에도 난 엄마가 있다는 안정감만으로 그 시절을 버텼던 것 같다.
그렇게 중학교가 끝남과 함께, 나라의 지원으로 우리만의 집이 생겼다.
우리의 집은 엄마의 화를 식혀주었다.
깨끗했고, 눈치 보며 9시가 되기 전에 불을 끌 필요도, 숨죽여말 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내 성적은 평균이었다. 나름 노력해서 그 정도.
기술을 배워보자 생각했다. 그렇게 간 공고에서 나는 새로 시작했다.
그 후론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흘렀다.
고등학교 3학년.
엄마와 큰 갈등이 있었다.
문제는 대학인지, 취업인지.
의견이 갈렸다.
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일하기 위해 우리 과에서 딸 수 있는 자격증을 모두 땄다.
엄마도 처음엔 내 의견에 동의하는 듯했으나, 마음이 바뀐 것 같았다.
"네가 일하면 나라에서 돈이 안 들어와. 그냥 대학 가"
결국 또 돈이다.
엄청나게 강요당했다.
"네가 취업하면 학교에서 공부 안 하고 논 애들이랑 똑같아지는 거야"
항상 그랬다.
내 의견을 듣는 척만 하고 결국은 자신의 마음대로 강요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성적은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수시로 충분히 갈 수 있었다.
나는 원서를 넣었고, 학교에서도 취업과 진학이 모두 결정될 무렵이 되어서야 엄마는 말했다.
"그냥 네 마음대로 해!"
이미 모든 게 끝났다.
또다시 난 휘둘려 버렸다.
언제나 내 주관을 끝까지 밀고 가지 못했다.
내 선택을 의심하고, 무서워서 확신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강요된 선택이었다곤 하나, 결정적인 선택은 내 몫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 중 하나가 되었고,
나는 아직도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자책감에 자신을 책망하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릴 적부터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엄마의 허락이 필요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더라도,
어느 날 과자가 먹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질 않았다.
"엄마 과자 먹어도 돼요?"
"......"
그날 나는 결국 엄마가 일어나는 밤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내가 하는 행동은 엄마의 심기를 건드린다. 그렇다면 모든 행동에 허락을 구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난 판단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대학이 확정되었고 나는 술을 마시고 잔뜩 놀았다.
다른 친구들이 일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친구들과 게임이나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건 해봤자 실습 위주, 갑작스레 대학을 간다 해도 이론을 따라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대학생활은 최악이었다.
기숙사에 갈 돈도 없었기에 통학은 4시간이 걸렸고, 공부해야 할 것들은 차고 넘쳤다.
거기에 병까지 얻어 더욱 힘든 일상이 지속되어 나는 결국, 버티지 못해 포기해 버렸다.
나는 무력하다.
언제나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하느라 현재를 보지 않는다.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다.
난 불쌍하지 않다.
지금껏 내가 써온 내 이야기는 그렇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왜 조금 더 노력하지 않았지?"라는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어쩌면 나는 힘든 삶을 버텨왔으니, 이젠 쉬운 길만 남았을 거란 보상심리 때문에 나태해진 것일지 모른다.
결국 방심했고, 무방비해져선 대처하지 못했다.
이걸 읽는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보는가?
나는 선택의 책임으로부터 언제나 도망치기만 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언제나 휘둘렸고, 타인이 그 선택의 책임을 져주길 바랐지만 항상 그건 온전히 나의 몫이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샌가 알게 되었다.
타인의 탓으로 책임을 돌리는 것은 그 무엇보다 쉬운 일이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합리화하고 타인을 깎아내린다.
어쩌면 그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 일 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내가 아무리 부모의 탓으로 돌려도, 강요된 선택 때문이었다고 합리화해도, 그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내 결여된 인격과 부족한 부분은 탓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리 믿는다.
지금껏 아무도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으니까.
현 상황도 마찬가지다.
언제까지 남 탓으로 세상을 살아갈 순 없다. 내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워나가고, 보완해야 한다.
여기서 나는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자신을 책망하며 살아가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작은 것부터 고쳐나가야 한다.
맞는 걸맞다고, 틀린 걸 틀렸다고 확실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부터 나는 시작해야 했고 그렇게 해나가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것 또한, 지금껏 당당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 나름대로의 최선의 방법으로 표현한 작은 시작이다.
자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게 있어 가장 힘든 일이다.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내 사고는 그것을 내 행동과 어떻게든 연관 짓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고쳐야 할 것들을.
자책의 늪에서 빠져나오면 부모에 대한 원망이 있다.
그런 부모를 이해하면 나를 이해할 수 있다.
이제야 나는 나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