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기 시작한 순간

버려지지 않기 위해

by HS

내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날이 쌀쌀해질 때 즈음

엄마는 늘 두통을 호소하셨다.

쉬는 날엔 침대 위에서 머리가 아프다며 힘들어하셨다.

"병원 가봐요 엄마"

이렇게 말해도 귀찮다는 듯 대충 흘러 넘기셨다.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기침도 하고, 안색도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늘 담배와 술은 매일같이 하셨다.


설 명절 연휴.

외할머니댁에서 우린 다른 가족들과 함께 모여 있었다.

인생에서 내가 가장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삶 자체가 어긋나 버린 날이었다.


아침 공기는 상쾌하고, 어른들은 잠을 자지 않은 건지 시끌벅적했다.

나와 동생은, 사촌동생과 함께 작은 방 모여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긴 연휴가 너무 행복했다.

그 해 우린 엄마와 약속했다.

서울로 놀러 가자고, 우리 가족 셋이서 가는 여행이라고

집엔 새로 산 교복과, 신발, 가방이 있었다.

아버지가 없어도 삶은 순조로웠다. 힘들었지만 고비를 잘 넘겼다. 이젠 우리끼리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나도 중학생이 되었고 빚도 거의 다 갚았다.

이젠 힘든 일이 다 지나갔다고, 앞으로 천천히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구급차 소리가 크게 들렸지만 난 대수롭지 않게 동생들과 게임을 계속했다.

그 구급차에 엄마가 실려간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까.

몇 시간이나 지난 걸까, 밖을 나와보니 어른들이 없다.

할아버지만 남아있어 급하게 엄마가 어디 가셨냐고 물어보았다.

"할아버지, 엄마 어디 갔어요?"

"네 엄마 실려갔잖아."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손을 떨리게 만든다.

아직도 소리를 지르고 싶게 만든다.


후로 계속해서 기다렸다.

어디가 아프신 거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나는 느꼈다. 이건 큰일이라고.

불안함은 극도로 심해지고 숨이 찬다. 다리가 떨리고 눈물이 난다.

갑자기 세상이 넓어졌다. 내가 점점 작아진다.

고독감이 날 짓누른다.

엄마의 차에 들어가 울었다. 소리 질렀다. 안된다고 그럴 리 없다고 현실을 부정하고

떨고, 제정신이 아니다. 미친다는 걸 처음 느꼈다.


"뇌졸중"

어른들의 말로는 수술하기도 힘든 곳에 피가 터져 힘들다고 말했다.

이제 14살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나도 알 수 있었다.

우리 셋이서 살던 그 집으로 다신 못 돌아간다는 걸.


다행히도 엄마는 살았다.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중환자실로 면회를 갔다.

그날도 펑펑 울었다. 눈물이 뿜어져 나왔으니까.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일그러진 얼굴, 어눌한 말투로 언제인지 모르는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놓고,

본인은 여기 있을게 아니라며 간호사들에게 화를 냈다.

우리를 보자마자 엄마가 꺼낸 말은

"집에 가자"였다.

그 뒤로 여행 가자던 이야기, 학교에 가야 한다 등등 앞 뒤가 안 맞는 말만 늘어놓는 엄마를 보며

도저히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결국 우린 외할머니가 사는 동네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밤이 되면 깜깜하고 버스도 한두 시간에 하나 있는 촌동네.

밤만 되면 천장 위에서 쥐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에 놀라서 깨고,

우리가 자는 방에 뜯어진 벽지에선 바퀴벌레가 잔뜩 기어 나왔다.

습해서 핀 곰팡이, 엄청나게 꼬여드는 파리.


그럼에도 치료받는 엄마가 보고 싶어 참았다.

40대, 뇌졸중에 걸리기엔 이른 나이.

회복이 빨라서 금세 제정신으로 돌아온 엄마를 보고 고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직도 몸 반쪽이 마비되어 감각이 없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움직일 순 있다.


엄마가 재활병원에서 나오고 바로 후에 일이다.

"너희는 이제 다른 집에서 살아야 돼."

그 순간 아득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았다.

엄마는 위탁가정을 알아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에게도 연락을 해봤지만 무시했다는 듯했고

도저히 아픈 몸으로 우리 둘을 키우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외할머니도 애들은 다른 집에 보내고 혼자서 잘 살라고 설득하셨었다고 후에 말씀해 주셨다.


"배신감"

내가 느낀 감정은 분명 배신감이지만, 난 매달렸다. 버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같이 살고 싶다고 애원했다.

그 더러운 집에서 몇 개월을 버텼다. 돌아가고 싶은 집만을 꿈에 그리며 하루하루를 숨죽여 울며 버텼는데

돌아온 말은 다른 집에 가서 살라는 말뿐.


추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간절했고, 버림받기 싫어 지금껏 노력해 왔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 된 것 같았다. 말을 잘 듣고, 도와드리고 열심히 살아왔던 모든 순간이 통째로 버려지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엄마는 결국 마음을 바꾸었다.

다시 같이 살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원래의 집으론 못 돌아가게 되고, 외가댁에서 함께 살면서 엄마는 화가 더 많아졌다.

좁은 방에서 우리 셋이 함께 살았으니까.

엄마는 더러운 것에 더욱 민감해지셨고, 붙어살게 되니 우리에게 욕하는 일도 전보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그 시기는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한창 반항하고 말 안 듣는,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

나름의 반항도 했었다. 오는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는다던가, 집에 늦게 들어가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실은 차갑기만 했고 나에겐 좋지 않은 버릇이 생겼다.

불안함을 느끼는 상황에 놓이면 일단 사과한다.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그런 말을 내뱉는 내 마음은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것을.

그저 그 상황에서 도망치기 위한 "말"이 아닌 "소리" 였다는 것을.


아마 무의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버려질 수 있다."

엄마는 이제 이전처럼 건강하지 않다. 말 한마디로 인생이 또다시 바뀔 수 있다는 걸 나는 인지해버렸다.


그렇게 점점 날카로워지는 언어로 내 정신은 난도질 당해, 너덜너덜해졌다.

그렇게 나는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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