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의 병가 기간이 끝나는 날,
수술을 하고 2개월의 병가 기간이 주어졌다.
그동안 했던 것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산책하기, 그리고 수시로 누워있기였다. 다행히 부모님이 등하원과 집안일까지 다 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감사했다. 엄마는 워낙에 감정표현을 많이 하지 않고 담담한 분이시지만 가끔 전화로 얘기할 때 이 과정에서 많이 속상하셨던 것 같다. 그래도 착한 암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전이된 곳이 없어서 항암치료를 하지 않았고, 항암치료를 하며 많이 힘들어하던 분들의 기록들이 기억에 남으며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가장 많이 신경썼던 부분은 체력이었는데 확실히 체력이 많이 떨어지긴 했었다. 크게 활동을 하지 않아도 졸리거나 중간 중간 쉬어주어야했다. 내 소식을 듣게 된 지인들이 죽, 과일 등 여러 기프티콘들을 보내주었고 나 역시 그 분들을 통해 많이 배웠다. 마음을 표현해주는 방법, 긴 말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고 고르고 보내는 것. 큰 병도 아닌데 과분하게 받았던 사랑 덕분에 위로가 많이 되었다. 그 두달의 시간 동안 했던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목을 절개 했던 상처가 잘 아물기를 바랬고, 체력이 많이 올라오길 바랬다.
혼자만의 시간이 참 그리웠었는데 그 짧은 두 달의 시간에 조금씩 심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병원 진료가는 날, 간호사나 언어치료사(음성 확인) 분들을 만나면 계속 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열심히 얘기하고 그 분들은 이분이 왜 이렇게 많이 물어보지(?) 라는 표정으로 살짝 나를 바라노는 것 같은 느낌은 나만의 착각이길 바래본다.
두 달이 지나고 복직을 하기 하루 전, 우리 반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전교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였다. 하루 일찍 학교로 복귀하게 되었고 그동안 아이들이 게시판에 쓴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는데 찡했던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 확진이 된 친구가 “얘들아 미안해, 내가 코로나에 확진이 되어서 너희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 같아” 라고 하자 답글로 쏟아진 위로의 글들.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지마 우린 니가 아플까봐 걱정될 뿐인걸.”
“괜찮아, 건강하게 잘 돌아와야해”
그 글을 읽으면서 콧끝이 찡해졌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고 나는 그런 공동체에 드디어 다시 돌아왔다. 그동안 나는 혼자있는 시간이 심심해서 누군가에게 말 많은 사람의 모습으로 비쳐졌던 것 같은데, 이제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이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선생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 아이들은 나에게 학종이 천마리를 선물해주었다. 내 몸이 빨리 낫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업시간에 혼나가면서(?) 접었다고...
내가 어디서 이런 사랑을 받아볼까, 정말 아이들과 오랜만에 만난 그 날은 감동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