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산층의 짝퉁 럭셔리, 페이즐리 이야기

by 김익규

백화점 명품관의 에르메스 악어 버킨백.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이 가방은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부와 계급을 상징하는 자산입니다.


그런데 19세기 유럽에도 이런 '끝판왕' 아이템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캐시미어 숄입니다. 당시 노동자 일당이 약 0.15파운드였던 시절, 진품 캐시미어 숄의 가격은 무려 200파운드(현대 가치 약 3억 원)에 달했습니다. 말 그대로 집 한 채를 어깨에 두르고 다닌 셈입니다.


하지만 명품이 있는 곳엔 언제나 짝퉁이 따르는 법. 19세 기판 S급 짝퉁인 페이즐리(Paisley)는 어떻게 진품을 밀어내고 패션의 역사를 바꿨을까요?

페이즐리 무늬(출처: paisley, Britannica)


나폴레옹 아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캐시미어 숄의 유행은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 황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녀가 히말라야 산양 털로 짠 부드럽고 가벼운 숄을 걸치자, 유럽의 모든 귀부인이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이 숄은 너무나 귀했습니다. 히말라야 고원의 산양 털을 아주 조금씩 모아, 인도 장인이 1년 넘게 수작업으로 짜야만 완성되는 귀한 물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동인도 회사의 독점 무역으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캐시미어 숄을 걸친 조세핀(출처: Kashmir shawl, Wikipedia)


19세기 판 동대문 짝퉁시장


이때, 스코틀랜드의 작은 방직 도시 페이즐리(Paisley)의 장인들은 중산층 여성들의 뜨거운 욕망을 읽어냈습니다. 진품을 살 돈은 없지만 유행은 따르고 싶은 여인들을 위해, 장인들은 재료를 타협하고 신기술을 도입한 보급형 캐시미어를 기획합니다.


먼저 장인들은 재료를 혁신했습니다. 비싸고 관리가 어려운 산양 털 대신, 그들은 실크와 양모를 섞었습니다. 진짜 캐시미어보다 다소 뻣뻣했지만, 실크 특유의 윤기가 흘러 겉보기에는 꽤 그럴싸했고 내구성은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결정적인 한 방은 바로 자카르 직기의 도입이었습니다. 인도 장인이 손으로 한 땀 한 땀 무늬를 넣을 때, 페이즐리는 현대 컴퓨터의 시초 격인 천공 카드(Punch Card)를 이용해 복잡한 패턴을 자동으로 찍어냈습니다. 3년 걸리던 작업이 단 며칠 만에 끝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산 페이즐리 숄(출처: Shaw,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자카르 방직기(출처: 자카르직기, Wikipedia)



450만 원의 행복


이렇게 탄생한 모조 캐시미어 숄의 가격은 단돈 3파운드(현대 가치 약 450만 원)로 진품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었습니다. 당시 신흥 중산층의 1~2달 치 월급 정도면, 꿈에 그리던 귀부인 흉내를 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복제는 불가능했습니다. 기계로 짠 페이즐리 숄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뒷면이었습니다.


수작업으로 짠 인도산 진품은 앞뒤가 똑같이 아름다웠지만, 기계로 짠 짝퉁은 뒷면에 실밥이 엉켜 지저분했습니다. 그래서 페이즐리 숄을 두른 여성들은 바람이 부는 날이면 전전긍긍했습니다. 바람에 숄이 뒤집히는 순간, 자신이 짝퉁을 입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페이즐리 숄을 걸친 여인(출처: Paisley shawls, Wikipedia)


맺으며: 가짜가 진짜의 이름을 뺏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짝퉁 숄이 전 유럽을 뒤덮을 정도로 팔려나가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숄에 새겨진 인도 전통 문양(보테, Boteh)을 본래 이름 대신, 짝퉁 생산지의 이름인 페이즐리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짜가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진짜의 이름마저 삼켜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에트로(Etro) 같은 럭셔리 브랜드가 사랑하는 그 우아한 패턴의 이름이, 사실은 19세기 카피 제품의 생산지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패션의 역사가 보여주는 가장 유쾌한 반전이 아닐까요?

에트로의 페이즐리 스카프(출처: Wool/Silk Paisley Scarf in Red, Santa Fe Tr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