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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 Mar 24. 2024

농사여행 in Spain #6

Happy new year walking!

여행을 와서 평소보다 많이 하는 일 중 하나는 걷기다. 한국에 있었다면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차타고 갔을 거리도 여행와서는 일단 걷게 된다. 매번 버스를 탈 때마다 현금 결제를 해야하는 일이 번거롭긴 하지만 걷다가 마주치는 생경한 장면들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에는 슈퍼마켓에 가기 위해 끝이 없어보이는 타리파의 해변을 걸었고 새해 첫날엔 caños de meca 근처의 절벽을 보러가기위해 해변 앞의 소나무 숲을 걸었다.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인 Barbate의 한 해변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는데 해변의 모래 유출을 막기위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곧게 뻗은 소나무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자라고 있는데, 멀리 위에서 보면 소나무들이 뭉게구름처럼 보이는게 장관이다. 이 소나무 숲은 생태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세워진 안내판을 따라 가면 몇 군데의 해변이나 절벽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리는 처음엔 큰 도로를 따라 걷다가 사람들이 곳곳의 숲길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있는 듯 없는 듯한 숲길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대부분이 모래흙이라 길이 푹신한 편이고 숲이 그리 울창하지 않았다. 사람도 벌레도 거의 없고 적당한 간격으로 식물들이 자라고 있으니 쾌적한 밀림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수분기 하나없는 모래흙에서 이렇게 식물들이 잘 자라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내가 살던 한국은 언제나 물이 많아 풀도 무성히 자라고, 벌레도 많은데. 완전한 양극의 생태계가 흥미로웠다.



중간 지점에 넓은 주차장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공간이 있어 쉬어갈겸 구경하기로 했다. 너른 공원같은 곳이었는데 앉아서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심지어 바베큐를 할 수 있는 시설도 있었다. 한 테이블에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는 숙소에서 챙겨온 초콜릿과 오렌지를 먹으며 체력을 보충했다. 작은 사륜자동차를 타고 아이와 아빠,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 뛰는 사람 등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caños de meca

한 시간 반정도 걸어서 드디어 도착한 절벽. 정말 바로 앞이 절벽인 곳에 서있으니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듯 했다. 조금만 옆으로 가면 또 새로운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절경은 두시간 걸려 모두 감상할 수 있는데 그러기엔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않아 금방 돌아가기로 했다. 짧은 시간이라 아쉬웠지만 다음에 또 올 생각을 하니 덜 아쉬웠다. 가는 길은 포장도로도 있고, 단단해진 모래길도 있고, 완전히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길도 있었다. 해변 옆 모래길은 따뜻하고 차가워서 맨발로 걷기 참 좋다 생각했는데, 신발을 신은채 걸어야 하는 모래길은 상당히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다(송충이 때문에 신발을 벗을 수 없었다). 이처럼 완벽한 길은 없다고 생각하며 어떤 것에 대해 한가지로만 단정짓지 말자고 생각했다. 완전히 좋은 것도 완전히 싫은 것도 없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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