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생일 미역국
두 번째 달 넷째 주 화요일. 민희는 평소처럼 새벽에 출근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특별한 날이었다.
유미가 어제 전해준 메모가 생각났다.
'내일은 영미 씨 생일입니다.'
영미. 말수가 적고 조용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그녀. 당뇨가 있어서 항상 식단 조절을 해야 하는 영미.
민희는 생각했다. 영미를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생일에는 미역국을 먹어야 하는데, 당뇨 때문에 평소보다 더 신경 써야 했다.
주방에 들어서니 정희 씨가 이미 와 있었다.
"오늘 영미 생일이죠?" 민희가 물었다.
"네, 오늘이 영미 생일이에요. 근데..."
정희 씨의 표정이 어두웠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영미 어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민희는 놀랐다.
"작년에요?"
"네, 그래서 작년 생일부터는 영미가 생일을 안 챙겼어요. 미역국도 안 먹고."
"왜요?"
"엄마가 해주던 미역국이 아니면 먹기 싫다고..."
민희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영미에게 생일 미역국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엄마와의 추억이었던 것이다.
"그럼 작년 생일에는 어떻게 했어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영미가 방에만 있었어요. 하루 종일 울고..."
민희는 결심했다. 올해는 달라야 했다.
"제가 미역국을 만들어볼게요."
"하지만 영미가 안 먹을 거예요."
"그래도 만들어야죠. 생일인데."
민희는 정성스럽게 미역국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영미를 위한 특별한 미역국이었다.
먼저 미역을 정성스럽게 불렸다. 그리고 참기름에 볶았다. 소고기는 당뇨를 고려해서 기름기가 적은 부위로 선택했다.
간을 맞출 때도 신중했다. 소금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국간장으로 은은하게 맛을 냈다.
"선생님, 이 미역국 정말 정성스럽게 만드시네요." 정희 씨가 말했다.
"영미를 위한 거니까요."
"하지만... 영미가 먹을까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시도는 해봐야죠."
아침 식사 시간. 거주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영미도 조용히 나타났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표정이 어두웠다.
"영미야, 생일 축하해!" 혜진이 먼저 외쳤다.
"영미 언니... 생일... 축하해요..." 수정이 작게 말했다.
영미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미소를 짓지 않았다.
민희가 영미 앞에 미역국을 놓았다.
"영미 씨, 생일 축하해요. 특별히 영미 씨를 위해 만든 미역국이에요."
영미가 미역국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안 먹어요..."
"영미야..." 정희 씨가 말했다.
"엄마가 해준 거 아니면... 안 먹어요..."
영미의 목소리가 떨렸다.
민희는 영미 옆에 앉았다.
"영미 씨, 제가 만든 미역국이 영미 엄마가 만든 것만큼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민희가 영미의 손을 잡았다.
"영미 엄마가 영미를 사랑했던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한 번만 먹어볼래요?"
영미가 민희를 바라봤다.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엄마... 보고 싶어요..."
"알아요. 엄마가 정말 보고 싶을 거예요."
민희가 미역국을 한 숟가락 떠서 불었다.
"영미 씨, 영미 엄마도 영미가 생일에 밥을 먹지 않으면 슬퍼하실 거예요."
영미가 조금씩 입을 열었다. 민희가 조심스럽게 미역국을 떠먹였다.
영미가 천천히 씹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맛... 어때요?" 민희가 물었다.
"엄마 맛... 아니에요..."
민희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영미가 계속 말했다.
"따뜻해요... 엄마처럼... 따뜻해요..."
영미는 스스로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미역국을 한 숟가락 더 떠먹었다.
"엄마가... 저한테... 늘... 따뜻하게... 해줬어요..."
영미가 말하면서 계속 미역국을 먹었다.
"선생님도... 따뜻해요... 엄마처럼..."
민희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다른 거주인들도 조용히 지켜봤다. 민수가 작게 말했다.
"영미 언니, 우리가 가족이잖아요. 우리도 누나 생일 축하해요."
"맞아요. 우리 다 같이 축하해요!" 혜진이 말했다.
동준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영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영미 누나... 생일... 축하해요..."
영미가 동준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다들... 고마워요..."
식사 후, 유미가 작은 케이크를 가져왔다.
"영미 씨, 당뇨용 케이크예요. 설탕 대신 대체 감미료로 만든 거예요."
"제가... 케이크... 먹어도 돼요?"
"물론이죠! 오늘은 영미 씨 생일인데."
영미의 얼굴이 밝아졌다. 작년에는 케이크도 먹지 못했었다.
모두가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렀다. 영미는 촛불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뭐 빌었어?" 혜진이 물었다.
"비밀이에요... 하지만... 행복한 소원이에요..."
영미가 촛불을 껐다. 그리고 모두가 박수를 쳤다.
케이크를 나눠 먹으면서 영미가 민희에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말씀드릴 게 있어요..."
"뭔데, 영미 씨?"
"제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셨어요..."
영미의 목소리가 떨렸다.
"'영미야, 엄마가 없어도 잘 살아야 해. 좋은 사람들이 너를 돌봐줄 거야. 그 사람들한테 감사하고, 그 사람들을 사랑하렴.'"
영미가 민희를 바라봤다.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에요... 엄마가 말한... 좋은 사람..."
민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눈물이 떨어졌다.
"영미 씨..."
"선생님... 고마워요... 저를... 사랑해 줘서..."
오후, 영미는 평소와 달리 밝았다. 다른 거주인들과 함께 텔레비전도 보고, 이야기도 나눴다.
"영미 언니, 오늘 진짜 예뻐요!" 혜진이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모두..."
저녁 식사 후, 영미가 민희에게 다가왔다. 손에는 작은 편지가 있었다.
"선생님... 이거..."
민희가 편지를 펼쳤다.
'민희 선생님께,
오늘 정말 행복했어요. 작년에는 생일이 너무 슬펐어요. 엄마가 없어서. 근데 올해는 달랐어요.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있어서.
선생님이 만든 미역국은 엄마 맛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엄마만큼 따뜻했어요. 선생님도 저를 사랑해 주는 거 알았어요.
이제 저는 괜찮아요. 엄마가 없어도 여기 가족들이 있으니까. 선생님이 있으니까.
정말 고마워요. 사랑해요.
- 영미'
민희는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영미가 이렇게 긴 글을 쓴 것도 처음이었다.
"영미 씨... 저도 사랑해요."
민희가 영미를 꼭 안았다. 영미도 민희를 안았다.
그날 밤, 집으로 가는 길에 민희는 생각했다. 생일 미역국의 의미. 그것은 단순히 생일을 축하하는 음식이 아니었다.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이 담긴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엄마가 아니어도 전달될 수 있었다.
민희가 만든 미역국은 영미 엄마의 미역국과 같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날 밤 일기에 썼다.
'열세 번째 깨달음: 생일 미역국은 레시피가 아니라 사랑의 상징이다. 엄마가 없어도, 그 사랑은 다른 사람을 통해 전달될 수 있다. 오늘 영미에게 배웠다. 가족은 혈연이 아니라 사랑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은 음식을 통해 가장 따뜻하게 전달된다는 것을.'
민희는 감사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영미의 웃음, 영미의 눈물, 영미의 편지. 그 모든 것이 사랑의 언어였다.
다음날 아침, 영미가 제일 먼저 식당에 나타났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평소보다 밝은 목소리였다.
"영미 씨, 안녕! 어제 잘 잤어?"
"네! 정말 잘 잤어요! 오늘 아침은 뭐예요?"
"오늘은 된장찌개야."
"좋아요! 선생님이 만든 거면 다 맛있어요!"
영미는 변했다. 엄마의 빈자리를 슬퍼하는 대신, 새로운 가족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따뜻한 생일 미역국 한 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