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가 불편한 건 나뿐인가?
처음 보는 사람과 만나면 의외로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나는 해본 적도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라고 얼버무리고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리려 한다. 그 주제 자체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인간이 70억 명이 넘게 살고 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은 단 16개의 타입으로 구분하면 상대방의 모든 걸 파악할 수 있는 건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그 정도로 파악하면 되는 작은 존재인 건가?라는 불편한 질문들이 계속 생겨나기 때문이다.
MBTI는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의 전란 중에 탄생한 이해의 도구다. 남성은 전쟁에 나가 싸웠고 여성은 남성의 빈자리를 채우며 산업 현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가야 했던 여성들은 본인에게 잘 맞는 직업을 찾아 개인의 역량을 높여야 했다. MBTI의 개발자인 캐서린 쿡 브릭스는 칼 융의 '심리 유형론'을 참고하여 인간의 특성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캐서린은 인간을 더 잘 이해하고 화합을 도모하고자 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발한 MBTI는 그 자체의 목적은 많이 희석되어 가는 것으로 느껴진다. 최근에는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목적보다는 '판단'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타인을 원활히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쉽게 판단하는 요술 방망이가 되어 버렸다. 마치 MBTI의 4가지 조합이면 상대방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해도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이렇게 행동하는 거 보니 당신은 F구만!"
"부장님은 T라서 안돼요!"
"I들이랑은 대화가 안돼"
뭐 이런 식이다. 사실 나는 이런 대화를 불편하게 생각한다. 자주 그리고 깊이 있게.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건 이성의 능력이다. 그럼 이성은 뭔가? 상황판단을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도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상황판단을 하게 되면 인간은 감정과 생각을 생산한다. 생산해야지!라고 해서 생산하는 게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고 빠른 속도로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생산한다. 감정과 생각 중 감정은 우리 집 고양이도 생산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 배가 고픈 상태인데, 주인이 집에 돌아왔다. (상황판단)
- (야! 옹~ 야!!!! 옹~)(감정)
- 밥을 얻었다. (새로운 상황판단)
- 야!! 호!(새로운 감정)
반면 인간은 전혀 다른 생각을 생산해 낼 수 있다.
- 배가 고픈 상태인데, 점심시간이 되었다.(상황판단)
- 나는 점심시간에 음식을 챙겨 먹어야 생존할 수 있고, 행복도를 가장 높이는 음식을 선택해야 한다.(대전제)
- 어떤 메뉴를 고르는 게 나의 행복도를 가장 높여줄까? (새로운 생각)
- 유튜브에서 보니 마라탕 먹방을 재밌게 봤으니 오늘은 마라탕이다.(소전제)
- 마라탕을 얻었다. (결론)
인간은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본인이 기존에 어떤 대전제를 가지고 있었냐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만약 "나는 점심시간에 가장 저렴한 음식을 먹어야 행복해질 수 있어"라는 대전제를 가진 사람이라면 편의점 도시락을 먹거나 사무실의 비품을 먹는 걸로 점심을 때울 것이다. 대전제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움직인다. 대전제에 기반해서 감정과 생각을 새롭게 생산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원리 중 하나가 된다.
MBTI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F와 T를 나누는 걸 보고 앞뒤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T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 F는 감정적이고 공감을 잘하는 사람으로 구분한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T는 논리적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잘 공감하지 못하고, 반대로 F는 감성적이므로 이성적인 논리가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을 발휘하는 '논리적인' 사람(T)은 누구보다 상대방에 공감을 잘하는 사람(F)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논리적이라는 말은 대전제 -> 소전제 -> 결론에 이르는 문장이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공감을 잘한다는 말은 상대방의 행동에 같은 감정을 느끼고 위로를 해주는 것이다. 즉, 논리적인 사람은 상대방의 행동과 말을 보고 그 밑에 깔려있는 생각의 원천이자 원칙인 대전제를 역방향으로 유추해보고 본인 스스로 상대방의 대전제에서부터 소전제와 결론을 세워보면서 현재의 상대방의 행동과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즉, 논리적인 사람은 본인이 평생 가지고 있었던 대전제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상황을 목격하면 새로운 대전제를 만들어보면서 상황을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동일한 의미로 완전히 다른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자신의 대전제가 세상의 유일한 대전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타인의 대전제에서 행동을 도출하며 최종적으로는 타인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 만든 대전제가 유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본인의 지식, 행동, 판단, 의견, 감정, 신념, 믿음이 다를 수도 있고 심지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2500년 전 그리스의 한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대전제의 유연성은 타인의 대전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을 길러준다. 이런 생각의 연장에서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악행을 일삼는 사람을 '용서'할 수 힘을 길러준다. 법규를 위반하여 처벌받는 것 또한 법(대전제)의 범위 내에서 범죄사실을 판단하고 법에 따라 결론(처벌)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논리적인 사람은 포용력이 넓고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며, 감정에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MBTI에서 T로 분류되는 사람이 결국 가장 F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논리가 깊어지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깊어지면 공감이 된다. 지금 필요한 건 T냐 F냐로 구분하고 쉽게 판단해 버리는 효율성이 아니라 어렵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생각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끌린다.
경계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판단을 한다는 건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생각을 한다는 건 개념을 연결하는 것이다. 개념을 연결한 다는 것은 수집된 단어를 상황에 맞게 조합한다는 것이다. 그럼 판단과 생각과 연결에 필요한 단어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한국어를 할 수는 없다. 배움을 통해 단어를 얻을 수 있고, 배움이란 곧 경험이자 관찰이다. 유심하게 보고 세심하게 들으면서 단어를 얻어야 한다. 단어를 조합해서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반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섬세한 감각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면서(경청) 단어를 습득한다. 단어를 연결하고 행동의 원인을 유추해 보면서 상대방의 잘못을 이해하고(용서),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는(포용) 논리력이 필요하다.
당연히 넌 T야!라고 짧은 시간과 불충분한 경험을 근거로 상대방을 멋대로 판단해 버리는 건 아주 쉽다. 효율적이다. 하지만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시간을 절약하더라도 상대와 나의 사이에 튼튼한 관계의 다리를 놓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잘못 지어진 다리는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는 만큼 시간이 걸린다.
오늘부터 만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어렵게,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상대방이 하는 말과 행동을 유심하게 관찰하자. 혹시 모른다. 좋은 사람을 한 명 더 만나게 되는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MBTI의 의지하지 말고 상대방의 생각에서 생각해 보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