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을 쌓을수록 불안해지는 이유

지위가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

by 조강

이력서는 점점 화려해져 간다

경제성장률은 정체되어 가고, 취업의 문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남들보다 뛰어난 경쟁력을 보여줘야 회사에 취업을 하고, 입사 후에도 승진 경쟁을 위해 경쟁해야 하는 시대다. 이력서에 한 줄 더 적어 넣는 일이 쉽지만은 않지만 길어지는 이력서만큼이나 마음 한편에는 불안감이 커져만 간다. 스펙 인플레이션 시대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할 자리가 없고 토익, 자격증을 줄줄 채워 넣어도 원하는 취업자리는 찾기 힘들다. 이력서에 한줄 더 늘어난다고 바뀌는게 있을까?


인공지능, 블록체인, 정보보안 등 새로운 산업에 대한 필요가 커져가면서 관련된 자격증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 자격증을 취득함으로써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는 걸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생각의 근거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된다. 과연 그럴까? 우리가 다 알다시피 운전면허증을 딴다고 해서 F1 드라이버들처럼 운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은 없어도 맛있는 밥을 만들어주시는 어머니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격증이 넘쳐나고 이력서에 써 내려갈 자격증이 증식하면서 역설적으로 더 불안해져 가는 시대에 실력의 본질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진짜 전문가인가. 전문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실력은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일까. 일본 역사의 한 장면에서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자.


1221년 조큐의 난(承久の乱)

겐페이 센소로 권력을 잡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는 1199년 사망하게 된다.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의 직위를 받은 요리토모의 아들 요리이에가 2대 쇼군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요리이에가 암살당하면서 요리토모의 아내인 호조 마사코(北条政子) 그의 둘째 아들인 미나모토노 사네토모(実朝)를 3대 쇼군의 자리에 올린다. 어린 나이의 쇼군에 오른 사네토모를 대신하여 호조 가문이 섭권(執権) 정치를 하게 된다. 호조 가문은 가마쿠라 막부의 행정(政所)과 군사(侍所)를 담당하며 가마쿠라 시대의 주인이 미나모토(겐지)에서 호조 가문으로 권력이 이동하게 된다.


하지만 3대 쇼군 사네토모가 후사 없이 사망하게 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당시 교토의 조정에서도 텐노를 넘어선 상왕이 원정(院政)을 하던 시기. 고토바 상황(後鳥羽上皇) 또한 텐노를 앞에 두고 뒤에서 조정의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이다. 고토바 상황은 눈에 가시였던 가마쿠라 막부의 권력공백을 그냥 두고 넘어갈 수 없었다. 무사들은 황족들의 다툼을 해결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실질적인 권력은 조정이 쥐고 있어야 했고 그게 당연한 시기였다.


고토바 상황의 눈에는 근본도 없는 무사 나부랭이들이 칼의 힘을 믿고 설쳐대는 것으로 봤을 것이다. 권력이란 순수한 혈통에서 나오는 것이며, 일본 그 자체인 텐노와 그 위의 상황의 말은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심지어 가마쿠라 막부를 실제로 이끄는 가문은 황족의 혈통도 아닌 호조가문이었다. 마침 요리토모의 후사가 끊겨버린 이 기회에 조정의 권력을 다시 세우자는 결심을 하게 되고 거병을 일으키게 된다. 조큐 3년에 일어난 조큐의 난(承久の乱)의 시작이다.



권력은 지위가 아닌 실력에서 나온다

쇼군을 중심으로 한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는 이미 겐페이 센소 이후로 무사들의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었다. 지방 무사들을 소모품 취급하던 교토의 텐노와 달리 막부는 무사들에게 영토를 제공(신포지토-新法地頭)하는 고온(御恩)과 그들로부터 죽음을 불사하는 충성심(奉公)을 제공받는 모종의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다.


또한 조정 군이 가마쿠라로 거병했다는 소식을 들은 요리토모의 아내 호조 마사코는 무사들을 모아두고 요리토모의 은혜를 상기 시키는 연설을 통해 무사들을 가마쿠라 막부의 이름으로 강하게 결집시킨다.



皆、よく聞け。

모두 잘 들으라.


故右大将軍頼朝公の恩は、

고(故)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공의 은혜는


山よりも高く、海よりも深い。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


その恩に報いようと思う者は、

그 은혜에 보답하려는 자라면


心を一つにして幕府を守れ。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이 막부를 지켜라.


もし朝廷に味方し、

만약 조정 편에 서서


恩を忘れる者があれば、

그 은혜를 저버릴 자가 있다면


ただちにこの場を去れ。

지금 이 자리에서 물러나라.


『아즈마가카미吾妻鏡 조큐3년 5월』


결정적으로 가마쿠라 막부를 공격하는 조정의 편에 서게 되면 전쟁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이익이 없었기 때문에 막부는 조정 군을 단 한 달 만에 제압해 버린다.


전쟁에서 패배한 조정은 교토의 공가들을 포함해 서쪽의 영지들도 전부 몰수당한다. 막부는 로쿠하라 탄다이(六波羅探題, ろくはらたんだい) 기구를 설치하여 교토의 조정을 감시하는 것과 동시에 전쟁에 참여한 무사들에게 서쪽의 영토를 하사하면서 지지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조큐의 난 이전에는 동쪽의 가마쿠라 일대의 작은 세력이었으나 서쪽까지 관리하게 되는 분기점이 된다. 이제 텐노는 정치적 실권을 모두 잃어버리고 상징적인 존재만 남았으며 고토바 상황은 시마네현의 외딴 섬으로 유배 된다. 막부의 세상이 도래했고 권력의 중심에는 요리토모의 후사가 끊긴 상태였으므로, 호조 가문이 섭권(執権)으로 일본을 지배하게 된다.


2대 섭권이었던 호조 요시토키에 이어 3대 섭권 호조 야스토키(北条泰時)는 고세이바이시키모쿠(御成敗式目)라는 무사들의 법전을 제정한다. 이제 일본의 무사들은 칼만 휘두르는 무력집단이 아닌 행정과 법치를 수호하는 통치권자가 되는 길을 실정법으로 명시하게 된 것이다. 결국 지위에 가려져있던 일본의 실력자들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다이라 가문에 굴복하지 않고 거병을 했으며, 겐페이센소 이후에도 교토에서 태정대신을 역임하지 않고 가마쿠라 막부를 열었던 것, 그리고 쇼군이라는 직위를 '새로'만들어 자신만의 시스템을 만들었던 것과 일맥상통한 결과라 볼 수 있다.



Doing에서 Being의 시대로

이력서에 한 줄을 더 추가하기 위해서 부단히 움직이지만, 점점 더 불안해져만 가는 건 실력이 아닌 상징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상징을 인정해 주고 기대한 가치를 제공해 주는 시대였다면 불안함 보다는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그 속에서의 개인들은 상징이 주는 안정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지금은 안정감을 주는 지위나 상징 보다 실질적인 일의 본질을 물어봐야 하는 시기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자격증만 따면, 학벌만 따면, 인맥만 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공식은 점점 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의 본질을 앞에 두고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춘다면 안정감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넘어 나만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직업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사업이 될 수도 있다. 실력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통제력 또한 올라갈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호조 요시토키가 본 가마쿠라 막부 시대의 진짜 권력은 지방의 무사들에게서 나왔다. 무사들에게 하사할 영지를 관리하는 고온(御恩)과 봉사(奉公)야 말로 시대를 평정할 수 있는 일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을 물어봐야 하는 시기다. 만약 일을 시작하지 않고 있더라도 진짜 일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고 실력을 갖추며 자신만의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이 정통성에 기반한 지위를 뛰어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부모의 잘못으로 이즈에 유배되어 실패자로 살았던 귀족 꼬마에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실질적인 실력을 갖춰 가마쿠라 막부라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일본을 평정했던 요리토모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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