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 막부는 어떻게 멸망하게 되었는가
사람은 안정을 추구한다. 노력 끝에 얻은 보상을 얻었다면 도전보다는 안주를 선택하는 게 편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안함에 익숙해지다 보면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우리의 몸의 근육이 뼈를 보호하고 뼈가 내부 장기들을 보호하고 있듯, 근육 단련을 하지 않으면 작은 외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지고 내부 장기가 손상되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지금 문제를 겪고 있다면 걱정보다는 기뻐해야 한다. "왜 나한테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야. 정말 재수 없는 인생이지 않을 수 없다!"와 같은 절망적인 생각보다는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위기 상황이 생긴다는 현상의 본질은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인생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주기 때문이다. 만약 위기 경보음이 사방에서 울리고 있는데도 편안함에 익숙해져 점점 더 안전한 곳으로 숨어 들어간다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멸망 밖에 없다.
멸망할 것인가? 생존할 것인가? 한 가지 예시를 살펴보자. 홍길동 부장은 나이가 50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회사에서 높은 직책까지는 힘들게 올라갔다. 이제는 내려올 시기 밖에 없다. 자식들은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고 모아둔 돈은 별로 없다. 회사에서는 임금피크제를 몇 년 전부터 도입해서 퇴직금이 줄어드는 시기가 되기 전에 퇴사를 해야 그나마 퇴직금이라도 지킬 수 있는 상황이다. 퇴직을 앞두고 있는 정년의 모습, 왠지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게 되어 있고 지금 신입사원이든 대리든 과장이든 결국 퇴직을 하고 회사를 떠나는 시기는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홍길동 부장에게 있어 퇴직은 위기일까 기회일까. 현실을 분석해 보면 자신의 업무 커리어 상으로 회사에서 더 이상 홍길동 부장의 노동의 가치를 연봉을 주면서 교환할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홍길동 부장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생각 1은 "내가 이 회사를 위해서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데, 이런 대접을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사팀에 가서 제대로 따져봐야겠어!" 이 생각은 위기를 품에 꼭 안고 불바다로 뛰어드는 일처럼 보인다.
반면 생각 2는 이렇게 말한다. "회사가 주는 연봉과 내가 제공하는 노동의 교환 관계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되었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가치에 나는 얼마나 기여하고 있고, 지금 회사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회사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제공할 수 없다면,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온 능력과 자산으로 회사를 넘어 세상에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그럼 나는 어떤 능력과 자산을 가지고 있을까? 만약 시장이 필요로 하는 가치와 자산이 없다면 어떻게 만들고 배울 수 있을까?". 생각 1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위기는 단지 현상일 뿐이다. 순간적인 감정과 단순한 판단으로 위기를 봐서는 현상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는 작동했지만 더 이상 작동이 불가능한 머릿속의 결함이 발견된다. 즉, 나의 생각의 운영체제에서 버그가 발견된 것이고, 어떤 오류인지 특정이 되어야 수정이 가능하다. 따라서 나에게 발생한 위기는 디버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일본은 섬나라이므로 외부의 공격을 받은 경험이 많지 않다. 그중에서 대대적인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으니, 가마쿠라 막부의 시대 몽골의 습격이다. 가마쿠라 막부에게는 분명 위기상황이었고, 문제의 본질이 수면 위로 떠올랐으나 막부는 현실을 회피했고, 호조 가문은 스스로의 권력을 쥐고 놓지 않았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인과관계는 멸망이었다.
세계적 지도자 칭키스칸은 중국을 넘어 인류 역사상, 단일 국가로서는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한 몽골 제국을 세웠다. 한반도부터 시작해서(고려도 몽골에 항복하고 조공 관계를 맺는다) 동유럽, 중앙아시아까지 포함한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다. 칭기즈칸에 이은 쿠빌라이칸은 원나라를 세우고 고려와 함께 일본을 공격한다. 거대한 원의 시스템에 주변 국들을 포함시키는 정복의 시기였다.
당시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가 세워지고 8대 섭권 호조 도키무네(北条時宗)까지 이어져오던 시기. 먼저 원나라는 일본에게 부하(家来、けらい)가 되어라고 문서를 보내온다. 겉으로는 화친을 말하고 있었지만 만약 부하가 되지 않으면 군대를 일으켜 일본을 점령한다는 협박이었다. 당시 일본은 고려와 교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려가 30년 동안 항전하다 결국 사위의 나라(부마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만약 원나라와 화친을 맺으면 일본이 조공관계로 전락한다는 걸 고려를 통해 파악하고 있었다. 원나라의 편지에 호조 도키무네는 놀랍게도 그냥 무시해 버린다. (아무리 그래도 외교문서를 그냥 무시한다는게 쉽게 상상이 되질 않는다.)
말로만 협박하는 원나라가 아니었다. 1271년 고려가 원나라의 시스템에 통합되었고, 1274년 고려와 원나라의 군대(여몽연합군)가 일본을 공격한다. 분에이노에키(1274, 文永の役)다. 일본은 원나라의 전투방식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의 전쟁을 할 때는 "나는 어디의 아무개 고케닌(御家人)이다!"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나노리(名乗り) 의식이 있었다. 막부로부터 고온(御恩)을 받아야 했으므로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몽연합군은 무례하게도 곧바로 대포(鉄炮, てつはう)를 쏘면서 막부군을 공격했다. 활로만 싸우던 일본군을 제압한 여몽연합군은 후쿠오카의 하카타(博多)에 단 하루 만에 상륙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서 일본의 기습을 우려하여 함선으로 돌아가 체계를 정비하던 여몽연합군에 강력한 태풍이 몰아치면서 퇴각하게 된다. 그렇게 위기가 지나갔지만 위협을 느낀 막부는 규슈 지역의 고케닌들에게 방어벽을 세우라고 지시하며 다시 있을 위협을 제거하고자 했다다. 하지만 이것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절치부심한 여몽연합군은 7년 뒤 다시 한번 14만의 대군을 이끌고 일본을 공격한다. 코우안노에키(1281, 弘安の役)다. 막부는 이미 높은 망루를 지어 일본을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카타에 상륙조차 못하고 있었던 상황. 3개월을 대치하던 여몽연합군을 기다린 건 또 한번의 강력한 태풍이었다. 기상천외한 자연현상으로 전력의 60% 이상을 상실한 여몽연합군은 일본을 포기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대규모 전쟁을 준비했지만 성과 없이 퇴각하면서 원나라 내에서 쿠빌라이칸의 정치적 입지는 좁아진다. 결국 코우안노에키 이후 80여 년 뒤 원나라는 명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반면 가마쿠라 막부는 입지가 더욱 탄탄해진다. 일본을 지키기 위한 신이 불어준 바람, 카미카제(神風)가 막부를 지켜준다는 여론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막부는 조정의 권력도 아니고, 단지 지방의 무사 연합체일 뿐이었다. 충성과 은혜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영지 분할을 조건으로 한 계약관계일 뿐이었다. 여몽연합군을 몰아내는 데는 막부에게 고온을 받기 위해 전쟁에 빚을 내서 참여한 고케닌들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겼다고 해도 몽골이나 고려의 영토가 일본에 편입되는 것도 아니다. 이겨도 본전인 상황이었다. 막부는 전쟁에 참여한 고케닌들에게 추가로 고온을 내려줄 새로운 땅이 없었고, 고케닌들은 분노하며 막부 타도를 외치게 된다. 이 중에서 빚을 내서 전쟁에 참여한 고케닌들의 파산이 뒤따르자, 막부는 덕정령(徳政令)을 내려 빚을 전액 탕감해 준다. 이번에는 막부에게 뒤통수를 맞은 카시아게(貸上, 고리대금업자), 도소(土倉, 전당포업자)들은 시중의 자금줄을 다 끊어버리게 되는 부작용을 야기했고, 일본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런 불만의 상황에서 누가 가장 득을 볼까?. 그렇다. 막부에게 권력을 강탈당했던 텐노다. 고다이고 텐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킨다. 텐노의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교토에 파견된 인물이 호조가문의 충성스러운 고케닌,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였다. 하지만 다카우지가 본 것은 막부의 생명연장이 아닌 무너져가는 고케닌들의 개인적인 인생이었다. 더 이상 고온~호우코의 관계로는 막부가 유지될 수 없다고 판단한 다카우지는 교토의 조정을 감시하기 위한 막부의 로쿠하라 탐다(六波羅探題)를 공격하며 전세는 조정으로 기울게 되었고 가마쿠라 막부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고다이고 텐노와 함께 새로운 일본을 세웠지만 가마쿠라 이전의 문제가 동일하게 발생한다. 여전히 텐노는 헤이안 시대의 귀족들을 중심으로 권력을 나눠가졌고, 무사들은 일회용품으로 이용당했다. 다카우지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와 유사하게 막부를 세우지만 관계의 공식에 변화를 준다. 무사들이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실력은 여전히 갖추고 있었지만, 무사들을 통제할 수 있는 고온~호우코의 관계를 개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마쿠라 막부가 고케닌들에게 하사한 고온은 크게 2가지 형식을 가진다. 첫째는 본령안도(本領安堵)다. 고케닌들의 영지에 대해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본인의 영지에서 나오는 수익을 얻고 영지를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다. 두 번째 고온은 신포지토(新補地頭)다. 조큐의 난 이후 새로 생긴 고온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후 새롭게 얻은 영지를 고케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여몽연합군에게 승리했지만 새로운 영토가 없었으므로 신포지토 고온 시스템이 작동 불능에 빠지는 상태가 되었다.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영지를 분할해 주는 보상시스템으로는 막부 유지가 어렵다는 현실을 눈으로 목격하고 새로운 보상시스템으로 새로운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를 세운다. 여기서 무로마치(室町)는 교토의 지명으로 조정을 통합하는 막부를 세워 막부의 이름으로 불린다.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텐노를 완전히 자신의 통제아래 두고 막부의 명령이 텐노의 명령으로 보일 수 있는 막부를 설계했다. 겉으로는 텐노를 수호하는 충직한 쇼군의 지위였지만, 막부는 텐노의 행정과 의례 전반에 개입하며 일본을 지배하는 실제 통치권자가 될 수 있었다.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새로운 고온은 물리적인 차원에서 권한과 수익의 확대로 해석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지방의 슈고(守護)를 중심으로 지역의 고케닌들을 결집시킨다. 고온은 크게 3가지 방식이다. 첫째 한제령(半済令)는 슈고의 영지에서 나오는 수익 중 귀족에게 가는 세금의 절반을 가져갈 권리를 인정해 준다. 새로운 영지를 얻지 않아도 슈고의 수익은 증가한다. 둘째 슈고우케(守護請)는 슈고가 세금을 다 징수해서 일정 부분만 세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모두 본인의 수익이 되는 걸 인정해 준다. 단순관리직에서 지역의 경제권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막말로 슈고가 세금 내기 싫어서 "올해는 쌀 경작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둘러대면 귀족에게 세금을 안 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세 번째는 사절집행권(使節執行権)으로 기존에는 막부의 허락을 받아야 했던 중대사건과 강제 집행권을 슈고들에게 넘겨준다. 이로써 지역의 슈고들은 경제권과 사법권을 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수익의 증가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사회지위가 높아지는 보상체계였다.
무로마치 막부가 시작되면서 주요한 변화가 생기게 되는데, 새로운 고온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지역의 고케닌들이 충성해야 할 대상이 저 멀리 교토에 있는 쇼군(将軍) 아니라 당장 자신의 생존권(地頭職)을 쥐고 있는 슈고(守護)로 바뀌게 된다. 또한 고다이고 텐노가 권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고다이고 텐노 대신 고묘 텐노를 새로 세움으로써 막부의 정당성을 확보 하게 된다. 일본에서 텐노가 2명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고, 남북조 시대가 시작된다. 아래로는 충성의 대상이 변경되었고, 위로는 텐노가 2명이 되었던 급격한 변화와 전쟁의 시기,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가마쿠라 막부처럼 중앙집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슈고들에게 권력을 분배하여 지방분권을 강화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쇼군과 막부를 중심으로 한 질서가 유지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던 것이다. 결국 지방의 권력강화는 오닌의 난을 발생시키고 일본 열도는 전국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가마쿠라 막부의 존재 이유이자 질서유지의 핵심은 고온(御恩)과 호우코(奉公)의 덕목이었다. 귀족들의 갈등을 봉합하는 해결사 노릇만 하던 무사들이 역사의 중심에 떠오르고 무사 중심의 권력이 막부가 되면서 생긴 질서체계였다. 요리토모가 쇼군의 지위에 오르면서 약 100년 동안은 무리 없이 시스템이 작동했다. 고케닌들은 목숨과 재산을 다 걸고 쇼군이 내려주는 고온에 베팅해 왔던 것이다. 당연히 "쇼군을 위해 가산을 다 털어서 전쟁에 참여하는 건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며, 고케닌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라는 게 상식이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여몽연합군의 공격을 받으면서 100년간 철저하게 지탱되어 오던 고온과 호우코의 원칙에 치명적인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다. 예외처리가 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오류였다.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가마쿠라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는 세계관 너머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전쟁에 승리했는데 내가 하사 받을 땅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지금의 폰지 사기(Ponzi Scheme)와 유사한 시스템이었다.
카미카제(神風)의 도움으로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신포지토 시스템 작동 불능 상태는 명백히 가마쿠라 막부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위기였다. 호조 토키무네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막부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했어야 할까? 기존의 약탈에 의존하던 고온~호우코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했어야 했다. 고케닌들의 충성의 본질은 호우코에 있으며, 영지를 더 나눠주는 게 아니라 고케닌들이 가져갈 수 있는 수익률을 높여야 했다. 귀족이나 사찰들이 장악하고 있던 경제권을 몰수하여 고케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한제령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호조 가문과 텐노의 재산을 털어서라도 국가 차원에서 고케닌들이 부당하게 져야 했던 전쟁의 빚을 탕감해줬어야 한다. 덕정령이라는 허무맹랑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강력한 채무 탕감 시스템을 돌려야 했다. 전쟁의 부담을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지도록 몰아붙이는 건 시스템 붕괴의 지름길이다. 잘 되면 내탓, 안되면 니탓을 하는 시스템은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세 번째는 호우코의 보상 체계를 경제권뿐만 아니라 사회적 권위를 높여줄 수 있는 행정권, 사법권까지 확대해서 나눠 줄 수 있어야 했다. 비록 호조 가문의 중앙 권력은 떨어지더라도 고다이고 텐노가 반란을 일으킬 명분을 만들어주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가마쿠라 막부의 멸망 과정을 보면 위기는 시스템의 치명적 오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걸 보여준다. 위기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오류에 대해서 막부의 대응은 임시 패치에 불과했다. 근본적으로 운영체제 가장 아랫단에서 디버깅 작업이 철저하게 진행했다면 비록 막부의 존립을 흔드는 소스코드라 할지라도 막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멸망하는 것 보다야 합리적인 선택이지 않을까.
다시 홍길동 부장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퇴직을 앞두고 생존권을 위협받는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만약 퇴직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오기 전에 돈을 모으고 주식과 부동산으로 돈을 불려서 안정적인 연금과 내 집마련에 성공했다면 갑작스러운 퇴직은 위기가 아니라 자유의 시작이다. 하지만 고정비용만 가진채 갑작스러운 퇴직을 해야 하는 위기를 직면한 홍길동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위기는 시스템의 오류를 발견하게 되는 하나의 사건이다. 따라서 현재 위기가 알려주는 시스템의 오류를 감정을 다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회사는 나의 노동에 높은 가치를 매기지 않는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나가는 고정비를 충당할 수 있는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다. 부장이라는 직위를 버리고 동네 아저씨로 돌아가야 한다. 홍길동 부장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과 자원을 살펴보고 새로운 업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홍길동 부장이 회사 내에서 부장의 직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기술은 무엇이 었을까? 상사에 아부하는 스킬, 하위 직원들을 몰아세워서 성과를 독차지 하기. 회사의 초창기에 필요했던 멀티플레이어 능력. 회사의 매출을 담당하는 핵심 기술 등이 있을 것이다. 그 어떤 능력으로 승진을 이어갈 수 있었고, 본인을 지지해주는 필살기였다. 하지만 영원한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바뀌면서 나의 기술의 감가상각은 필연적인 결과다. 과거에 나를 보호해줬던 기술이 미래에 나의 새로운 감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상을 제대로 분석한 홍길동 부장은 과거의 영광이 있던 회사를 떠나서 지금 돈과 정보가 넘쳐 흐르는 새로운 땅으로 거처를 옮길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낡은 정체성(회사내의 부장이라는 직위)를 과감히 버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전문가의 지위를 갖춘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그리고 그동안 본인의 경험에서 나온 기술과 안목을 담은 컨설팅, 집필, 강연, 창업을 통해 수익 모델을 월급에서 사업으로 바꿀 수도 있다. 기존의 질서가 나의 정체성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스스로 갑옷을 입고 성을 만들어 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생존은 생명체의 제1원칙이고, 거스를 수 없는 공리이기 때문이다.
홍길동 부장이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맥도널드를 창업한 레이 크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선택은 본인이 내리는 것이고 인생을 통제하는 출발선상이다.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말이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위기는 우리를 물가로 데려다주지만 물을 마실지 아니면 돌아설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다.